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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re Fidelity O/96
명기의 예감이 적중한 새로운 스피커가 나타나다
글 코난 2018-12-01 |   지면 발행 ( 2018년 12월호 - 전체 보기 )




최근 하이엔드 오디오의 흐름이라면 잃어버린 음악적 코히어런스의 회복이다. 이미 인간의 가청 영역에서 변별력을 잃어버린 THD나 S/N비 추종에 대한 반격이다. 오히려 스펙 향상만을 위해 집요하게 매달리면서 잃어버린 음악적 뉘앙스를 찾아가고 있다. 디지털 분야에서는 델타 시그마 대신 멀티비트 R2R 래더 DAC가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으며 대출력 트랜지스터 앰프에 지루해진 오디오파일은 극소수의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들어 내는 진공관 앰프를 찾아다닌다. 하지만 인생의 쌍곡선처럼 현대 하이엔드 스피커는 대출력 트랜지스터를 원하고 소출력으로 제동 가능한 스피커는 과거의 명기들에서 골라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필자가 드보어 피델리티를 만난 것은 해외 리뷰에서였다. 리뷰 때마다 말 바꾸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과 달리 오직 자신의 취향을 고집하는 리뷰어의 글은 궁금증의 부피를 눈덩이처럼 커지게 만들었다. 기존 메인스트림 하이엔드 스피커의 저능률, 단단하고 무거운 캐비닛 및 종잡을 수 임피던스 특성을 벗어난 소리가 그리웠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런 스피커를 만드는 회사들은 광고 페이지에 좀처럼 실리지 않는다. 오디오노트 등의 스피커는 국내에서 구경할 수도 없다. 하지만 넓은 배플과 고능률에 더해 믿기지 않는 광대역의 스피커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바로 드보어 피델리티의 오랑우탄(Orangutan) O/96이다.


30년간 재즈 뮤지션으로 활동했으며 20여 년의 스피커 디자인 경력, 그리고 18년의 하이파이 산업 경험을 가진 존 드보어가 이를 실현한 장본인이다. 현재 스피커 디자인 상식으로 보면 언뜻 무모할 수도, 다분히 회고적인 설계로 볼 수 있지만 나는 이 스피커를 들은 후 과연 현대 하이파이 스피커의 보편적 설계 방식이 좋은 음질을 향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실제로 이 스피커는 겉으로 보기에 넓은 배플에 가장 간략한 형태의 2웨이 구성이며 무려 96dB라는 고능률이 과거 평판 스피커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본 작의 주파수 커버리지는 저역이 25Hz, 고역은 31kHz에 이른다. 3웨이 이상 대형 스피커에서나 구현할 수 있는 광대역을 구현하고 있다는 스펙 시트에서 잠시 아연실색했다.
높이는 전용 스탠드 포함 약 90cm, 전면 배플 넓이는 약 46cm, 깊이는 30cm 정도의 중형 톨보이 정도의 용적을 가지고 이런 대역을 선보이는 것은 이색적이다. 아니, 모든 것들이 현대 하이파이 스피커의 설계 방식을 역행하고 있다. 모두가 전면 배플 면적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현재에 O/96의 전면 배플은 마치 그 면적을 늘려 저역을 증강시키는 평판 풀레인지처럼 넉넉한 면적을 자랑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전면 배플에는 아름다운 무늬가 인상적인 자작나무 합판을 사용한 반면 나머지 면은 두 종류 두께의 MDF를 사용해 만들었다는 점이다.


유닛으로 시선을 옮기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마치 포스텍스 풀레인지 유닛을 달면 어울릴 듯한 캐비닛이지만, 최신예 광대역 유닛을 그들만의 방식대로 튜닝해 사용했다. 우선 유닛 배열은 풀레인지나 동축 드라이버와 함께 가장 정확한 위상 일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2웨이 방식이다. 트위터는 유럽의 소규모 유닛 제조사로부터 공급받은 1인치 실크 돔. 그러나 후면 마그넷 뒤에 특수 제작한 쳄버를 마련해 후면 방사를 원활히 하는 한편 전면 웨이브 가이드를 혼 타입으로 설계해 빠르고 원활하게 소리가 터져 나오도록 설계했다.
우퍼의 경우 이 스피커의 소재 중 카다스 바인딩 포스트와 함께 거의 유일하게 우리에게 친숙한 노르웨이 시어스의 유닛을 사용했다. 무려 10인치 유닛으로, 이 또한 페이퍼 진동판은 트위터와 마찬가지로 유럽의 유닛 제조사에서 만들고 나머지를 시어스에 의뢰하는 등 여러 공정을 거쳐 O/96 스피커에만 특별히 탑재했다.
독특한 레트로 스타일의 인클로저를 구축했으나 그 내용물은 특수하며, 구성은 2웨이 2스피커다. 그리고 후면 하단을 보면 두 개의 포트를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크로스오버는 아주 간략하게 설계했을 것으로 보이며 내부 선재도 빈티지 케이블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넓은 배플의 반사를 활용하며 10W만 흘려도 우렁찬 음압을 토해 낼 듯한 고능률, 하지만 저음 반사형에 특수 제작된 광대역 유닛들, 그 설계 면면만으로 O/96의 소리는 간만에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O/96는 고작 20W짜리 퇴레스 오디오의 845 진공관을 사용한 저출력 앰프의 지원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청취 거리가 무려 5m였음에도 퇴레스 프리앰프의 볼륨을 열시 이상 올리기 힘들 정도로 충분한 음량을 얻을 수 있었다. 그만큼 높은 능률을 펼쳐 냈으며, 그만큼 풍부한 배음과 함께 다채로운 하모닉스 표현력을 뽑아냈다. 예를 들어 엘라 피츠제럴드 & 루이 암스트롱의 ‘Can't We Be Friends’(45rpm, Analog Productions)에서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의 보컬 음색은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대비되며 각각의 매력이 살아났다. 두텁고 풍채 좋은 밸런스가 음악을 더욱 맛깔나게 한다.
이 스피커의 트위터를 만만하게 보았다가 큰코다칠 뻔했다. 스펙에서는 보여 주지 않은 고해상도의 악기 표현력과 보컬 텍스처가 싱싱하고 시원하게 뻗어 나온다. 특히 트럼펫 솔로 등 재즈 음악에서 이전에는 숨어 있었던 하모닉스 구조와 풍부한 잔향이 콸콸 쏟아지며 대단히 높은 에너지가 휘몰아쳤다.
이슈트반 케르테스 지휘의 드보르작 교향곡 9번(Esoteric)에서는 아날로그 라운지 시청실의 넓은 공간을 휘저으며 압도적인 스케일로 장악한다. 하늘에 닿을 듯 시원하게 뻗는 고역과 바닥을 두드리며 그르렁거리는 저역이 온 몸을 적신다. 한편 그 물리적 촉감은 깨끗하고 동시에 말랑말랑해 거슬리는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현악기는 한껏 기백을 품고 보잉하며 관악은 혼 타입의 트위터 개구부 덕분에 넓고 깊은 음색을 마음껏 뿜어낸다. 마치 날것의 생생한 숨결에 눈과 귀가 뜨이듯 악기들을 섬광처럼 빠르게 눈앞에 도열시킨다.


크로노스 프로 턴테이블에 직스(ZYX) 얼티메이트 오메가 카트리지로 깊고 풍부하게 읽어 낸 정보는 퇴레스 프리·파워 앰프를 통해 증폭된 후 쾌활하고 유연하게 공간을 물들인다. 무릇 어쿠스틱 악기뿐만 아니라 일렉트릭 악기 사운드에서도 마찬가지로 힘과 유연함이 공존한다. 예를 들어 스티비 레이 본의 ‘Tin Pan Alley’(45rpm, Analog Productions)를 들어 보면 강도 높은 손가락 힘으로 튕기는 매우 굵은 기타 스트링이 더욱 육중하고 힘 있게 들린다. 무척 진한 음영 대비와 질감 표현은 이런 음악에서 매우 몽환적인 울림을 만들어 낸다. 상당히 중독성 강한 사운드다.
많은 제조사들이 음악인 출신이며 자신의 음악 철학을 하드웨어에 투영하고는 한다. 그들에게 있어 하드웨어는 음악적, 음향적 총체를 아우르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평생 음악에 헌신해 온 존 드보어는 자신의 혼을 담아 O/96이라는 악기를 탄생시켰고, 그 방식은 기존의 보편적 하이엔드 오디오의 규칙이나 유행으로부터 자유롭다. 통시적 역사를 종횡한 기술적 구현은 흥미롭고 독창적이다.
O/96은 과거로부터 끈질기게 지속된 아날로그 사운드의 풍미와 현대 하이파이의 기술이 독보적인 방식으로 융합되어 탄생한 걸작이다. 측정치가 뛰어난 모니터 사운드를 듣고 싶다면 잘 세팅된 스튜디오 모니터 시스템을 찾아라. 하지만 그런다면 정말 독창적인 음악적 울림이 만들어 내는 미묘한 뉘앙스는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O/96을 들으면서 나의 손은 바쁘게 LP 라이브러리를 오갔다. 드보어 피델리티는 수십 년 전 과거 명기들의 먼지를 털어 낸 이후에야 얻을 수 있었던 소리를 광대역 스펙 시트 안에서 생생하게 되살리고 있다. 예상대로 명기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수입원 씨웍스 (02)400-9988
가격 1,500만원
구성 2웨이 2스피커
사용유닛 우퍼 25.4cm, 트위터 2.5cm
재생주파수대역 25Hz-31kHz
임피던스 10Ω
출력음압레벨 96dB/W/m
크기(WHD) 45.7×90.1×30.4cm(스탠드 포함)

 

<Monthly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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