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소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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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의 소리를 찾아서
  • 월간오디오
  • 승인 2009.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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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시 손의헌 씨

사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내가 과연 월간 오디오에 나의 글과 기기들을 올릴 정도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직 다듬어 지지 않은 오디오 조합과 음악에 대한 가치관도 그렇고, 수많은 경험과 함께 거기에 부합하는 좋은 오디오 조합으로 즐기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가 먼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아주 고가의 화려한 사양을 자랑하는 기기들의 조합은 독자들의 눈요기와 동경의 대상은 되겠지만 접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나 같은 사람이 이 정도의 경험과 지식으로도 이렇게 좋아하는 음악과 소리를 찾아가는 방식도 있구나 하는 더 현실적인 접근 방식의 한 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조금 자위에 가까운 바람으로 용기를 내 시작해 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약간은 엉뚱한 방향으로 오디오를 처음 접하게 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대부분이 그러했듯 나 또한 부풀어진 지적 수준과 누구의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기대를 한 몸에 받았었다. 그때부터 조기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던 아버지는 영수(英數)의 중요성을 역설하셨고, 그 일환으로 영어 듣기 향상을 위해 그리 풍족하지 못한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소형 카세트에서 탈피해 오디오로의 전환을 꾀하셨고, 그 결과 1988년 1월 어느 겨울 결국 인켈의 플래그십 정도 되는 시스템을 집에 들이기에 이른다. 요즘에도 중고시장에 자주 등장하는 이 기기는 당시에도 상당한 금액이었고, 기본이 MD2200 파워 앰프와 PD2100 프리앰프로 구성되어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히 CD 플레이어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보기 드문 자동 선곡 기능이 있는 턴테이블, 그리고 노래방 기능의 비트박스와 이퀄라이저가 포함되어 있었고, 스피커도 대형이어서 조금만 볼륨을 올려도 집의 유리창이 떨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의 기대와는 다르게 영어 듣기보다는 LP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고, 당시 유행하던 팝가수의 음반을 하나 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그 즈음 레코드숍에서 우연히 만난 같은 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나중에 나의 음악을 듣는 방식에 일대 전환을 가져다준 그런 인물이었다. 어느 날 그 친구는 나에게 어떤 음악을 주로 듣는지 물었고, 그는 넌지시 게리 무어의 ‘Wild Frontier’와 퀸의 음반을 소개해 주었다. 특히 ‘Wild Frontier’ 음반에는 천둥 같은 드럼 소리로 시작하는 ‘Over The Hills and Far Away’를 필두로 게리 무어가 절친한 친구인 필 리뇻의 타계를 즈음하여 슬픔을 가득 담아 연주한 ‘The Loner’와 전자 기타 소리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 ‘Johnny Boy’ 등은 록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했다. 이후 모든 록 애호가들이 외쳤던 ‘록의 정신은 죽었다’라고 일컫던 시절인 80년대 ‘팝 메탈’ 음반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사실 그 당시 나는 록의 정신이 어떤 것인지도 몰랐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지도 못했다). 일단 팝 메탈이 접근하기 수월했던 이유는 기본적으로 팝 음악 자체에 익숙해져 있었고, 아마도 반복적이고 쉬운 멜로디 라인이 접근하기가 편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후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록에 대한 취향은 60~70년대 록 음악으로 확장되었고, 동시에 슬래시 메탈에 매료되기 시작해 딥 퍼플, 레드 제플린, 씬 리지를 필두로 당시 새로운 조류였던 슬레이어, 메탈리카, 메가데스, 앤스랙스 등 여러 슬래시 메탈 그룹들의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즈음에는 주위에 음악을 가까이 두고 있는 사람이 없어 거의 라디오에 의존해 독학 아닌 독학을 해 가면서 소극적으로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음반을 모으는 것도 기존의 용돈을 아껴 한두 장씩 모으던 것에서 없던 보충수업비나 교재비가 생기거나 금액이 부풀려지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주말에는 음반 매장에 방문해 두세 시간씩 죽치고 앉아 음반을 고르고 차후 구매 목록에 올려놓기도 했었다. 또 나름대로 바람직한 목적과 정당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목돈을 마련해 양손 가득 LP를 사들고 반의 설렘과 반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던 그 때가 참 행복하고 좋았던 기억이 난다. 부모님의 늘어만 가는 영어 정복의 기대감과 더불어 늘어만 가던 LP를 보며 이 정도면 표가 나지 않겠지 하며 모아온 LP가 수백 장에 이를 쯤 두 분의 한숨 섞인 한탄을 방문 너머로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이때 음악 취미 생활에 있어 또 다른 작은 잠재적인 변화의 기미를 보인 것이 있다면 스틱스의 ‘Suite Madame Blue’라는 곡을 들었던 것이다. 이 곡은 기존에 들었던 단순한 리프의 반복이나 속도의 조절로 곡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닌 단 하나의 곡에서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가지고 올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처음 듣는 순간부터 상당히 충격적으로 뇌리에 남아 있었으며 나중에 대학에 진학하면서 새로운 음악 프로그레시브·아트록에 좀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빌미를 제공했던 음악이었던 것 같다.
이후 대학에 진학하면서 또 다른 음악 친구를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했던가? 아니면 ‘유유상종’이라는 표현이 더 맞는지 모르겠지만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주위에는 항상 음악에 대해 거침없이 조언해 주고 공감대를 나눌 수 있던 친구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친구를 통해 밤잠이 많았던 나에겐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법한 ‘새벽에 라디오 듣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고, 프로그레시브·아트록이나 퓨전 재즈와 같은 독특하면서도 다양한 음악들이 있다는 걸 알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취 생활로 인해 본가에 있던 오디오를 가지고 올 수 없었다. 그래서 용돈과 생활비를 아껴 작은 오디오를 장만했다. 태광에서 나온 에로이카라는 중형 컴포넌트 시스템이었는데, 비록 기존에 들어오던 그 넓은 음장감과 깊게 떨어지는 저역을 느낄 수는 없었지만 10평 남짓한 자취방을 소리로 가득 채우기에는 충분했으며 신들린 듯한 드럼 소리와 기타 소리에 열광했다. 그리고 그 대학 친구와 붙어 다니며 수많은 음악을 들었다. 그 당시 주로 들었던 음악을 지금 생각해 보면 프로그레시브·아트록과 여전히 얼터너티브 록과 메탈 계열이 많았는데, RDM, 클라투, 라테 에 미엘레, PFM, 훈카 문카, 데빌 돌, 드림 시어터 등이 금방 기억에 떠오른다.
이들의 음악을 들을 때 만해도 재즈나 클래식은 나에게 난해한 음악이나 이해하기 힘든 음악 정도로 비춰져 있었다. 기껏 아는 클래식 정도라고 해봤자 중학교 시절에 음악 감상 시간에 들었던 세미클래식 정도가 전부였으며 어떻게 보면 노후를 위한 대비 차원에서 듣기를 아껴 놓은 음악이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달리 말하면 당시에는 재즈나 클래식을 지금 다 들으면 나중에 뭘 듣지 라는 아주 거만한 생각을 가졌다고나 할까….

그렇게 시간은 흘러 대학 졸업 후 결혼 전까지 몇 년 동안은 컴퓨터에 관심을 가져 음악을 멀리하지는 않았지만 자연히 컴퓨터를 통해 음악을 듣는 시간이 많아졌고, 다양한 압축 방식의 음원을 접하면서 오디오보다는 MP3 플레이어와 같은 편리함과 효율을 강조하는 기기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더불어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접하면서 다양한 방식의 사운드 환경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5.1채널 방식이었다. 다양한 멀티미디어 환경, 특히 DVD와 게임 환경에서 5.1채널은 나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관심거리였다. 먼저 컴퓨터를 통한 멀티채널 사운드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소형 화면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결혼할 시점에는 혼수로 기본적인 홈시어터를 갖추기에 이르렀고, 그래서 구축한 첫 AV 시스템이 온쿄 5.1채널 스피커와 야마하의 RX-V450 리시버, 그리고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2를 DVD 플레이어로, 비록 엔트리 레벨의 저렴함에 끌려 구입한 홈시어터 시스템이지만 그 당시 처음 보았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 장면은 아직도 개인적인 레퍼런스로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다. 하지만 플레이스테이션 2는 콘솔 게임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에게 낭비에 지나지 않았고, 작게나마 들리던 펜 돌아가는 소리는 은근히 지속적으로 귀에 거슬렸으며 결국 전용 DVD 플레이어를 구입해 AV 생활을 하게 되었다. 견물생심이라고나 할까? DVD 플레이어로 AV 생활을 즐기다가 우연히 지난 세월 모아 놓았던 먼지 쌓인 CD들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결국 DVD 플레이어에 한 번 슬쩍 넣어 재생을 시켜 보게 되었다. 기대 이상의 좋은 소리에 결국 리시버를 통한 하이파이 생활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초기에 홈시어터를 구성할 즈음에는 기초적인 정보와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격대에 상대적으로 우수한 조합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금 더 나은 소리로 하이파이와 AV 생활을 즐길 수 없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아마도 이 시점부터 좀더 좋은 소리에 대해 갈증을 느끼는 ‘오디오 소갈증(消渴症)’이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먼저 시도한 것이 리시버를 야마하에서 AV나 하이파이를 둘 다 소화가 가능하다고 평판이 나있던 데논 AVR-2807 리시버로 교체했고, 결국 작은 그릇에 많은 물을 담을 수 없다는 판단에 스피커를 교체하기에 이른다. 수많은 고민과 기웃거림 속에서 허용치에 들어오는 스피커를 고르기 위해 헤매던 중 고른 스피커가 다인오디오의 포커스 제품군이었던 홈시어터 시스템이다. 일단 전체를 교체하기에는 금전적인 제약이 많았기에 먼저 프론트 스피커와 센터 스피커를 포커스 220과 200c으로 교체했고, 기존 스피커보다 선명해진 중고역과 가슴을 울리는 저역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이파이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들리는 것은 리시버의 멋없는 무미건조함이었고, 이에 여러 가지 개선이 가능한 방향을 찾던 중 리시버의 프리 아웃을 이용해 파워 앰프를 붙여 보기로 결심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하면서 힘이 좋은 것으로 평판이 나있던 로텔의 RB-1080 파워 앰프를 구입해 연결해 보았다. 결과는 기존 리시버만을 사용했을 때보다 개선이 된 것 같기는 했으나 투자 대비 그렇게 만족감을 주지 못했고 또 다시 고심 끝에 AV와 하이파이를 분리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일단 DVD 플레이어를 기존의 DVD 재생 전용에서 마란츠 DV-7001 유니버설 플레이어로 바꾸었다. 그리고 동시에 중고 시장에서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리며 구입한 것이 프라이메어의 D30.2 CD 플레이어, Pre30 프리앰프 및 A30.2 파워 앰프로 이루어진 분리형 제품이었다. 예전부터 중급 인티앰프 중에서 프라이메어의 제품이 좋다는 평판은 들어 익히 알고 있었으나 막연한 분리형과 인티앰프 사이에서 인티앰프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결국 분리형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또 다른 중요한 결정의 요소인 집사람을 설득하기 더 없이 좋은 디자인도 크게 한몫을 했다.
이렇게 AV와 하이파이를 분리하면서 또 다른 딜레마 중 하나가 스피커였는데, 나의 경우 오디오 생활이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 가족 공용의 공간인 거실이어서 두 가지 이상의 스피커를 병행해 사용하는 것에는 많은 무리가 따랐다. 따라서 실렉터를 사용해 두 가지를 운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디오에 대해 점점 많은 부분을 알아가고 느끼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바로 케이블과 단자였다. 이쯤에는 이미 파워 케이블을 국내업체인 JTA의 이니그마로 교체를 해보았는데, 뜻밖의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 작지 않은 변화는 이내 인터 케이블과 스피커 케이블의 교체를 가져왔고, 결국 실렉터를 이용하는 것의 한계를 절감하게 된 것이다. 이후 수차례 각종 케이블의 교체를 통해 하나의 시스템으로도 소리에 대한 다양한 접근법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케이블 역시 하나의 시스템을 구성하기 위한 중요한 축임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이 당시 정보를 축적하고 나름대로 경험을 쌓아 가던 중 나의 경제적 허용치 내에서 접근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접근법을 찾는 것이 필요했는데, 그중 찾아낸 방법의 하나가 인터넷 오디오 카페에 가입하는 것이었다. 이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사용자 집합으로 이루어진 하이엔드 오디오 자체에 대한 부정과 긍정이 뒤섞인 포털 사이트라는 공간에서는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기가 여의치 않음을 의미했고, 더 실질적이고 세부적인 접근법을 제시하는 인터넷 카페 문화가 가장 합당해 보였다. 이 인터넷 오디오 카페라는 동호회를 통해 공동구매에도 참여를 하며 나름대로 경제적이면서도 효율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터득할 수 있었고, 이는 다음 단계로 진전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에이프릴 뮤직의 CD10 CD 플레이어를 잠시 거쳐 다다른 MC(Musical Culture)의 RI 1 인티앰프와 RCD 1 CD 플레이어가 그것이다. MC라는 업체는 당시 나에게도 상당히 생소한 업체였지만 그 내막을 알고 보면 그리 생소하지만은 않은 업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MC는 고가의 독일 하이엔드 오디오 전문업체인 mbl의 베이직 라인업인 mbl 7006 인티앰프와 mbl 1431 CD 플레이어를 근간으로 기존 제품에 프론트 패널 디자인만 약간 변형해 mbl에서 OEM 제조 방식을 통해 공급받는 업체였던 것이다. 따라서 MC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생산 및 기술의 전 부분을 mbl에서 관리하고 사양 또한 같기에 그냥 mbl의 제품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이해하기 편할 것이다. 기존의 조합과 비교해 보면, 프라이메어 조합이 상당히 부드럽고 착색되어 있는 얇은 소리라면 MC의 조합은 더 두터운 음색에 좀더 많은 정보량을 들려주면서도 상당히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소리와 하이엔드적인 맛을 제대로 보여주는 기기였다. 또한 프라이메어에서는 듣기 힘들었던 풍부한 저역과 부드러운 고역을 다인오디오 포커스 220으로 들려주었다.
이즈음 홈시어터 멀티채널 리어 스피커로 다인오디오의 오디언스 42를 쓰고 있었는데, 한 번 불붙은 오디오에 대한 호기심은 결국 서브시스템에 대한 호기심으로 번져 여러 기기를 알아보던 중 리어 스피커로 스칸디나의 마이크로포드 SE를 구해 벽에 마운트했다. 그리고 소문에 매칭이 좋다던 덴센 비트 B-100을 구입해 다인오디오 오디언스 42와 더불어 서재에 설치하게 되었다. 서재에서 사용한 서브시스템의 주사용 목적은 D/A 컨버터를 통한 PC 파이와 라디오 및 CD 청취였고, 기대와 더불어 청음해본 결과는 의외의 실망감으로 다가왔다. 아마도 록음악이나 대편성에 익숙해져 있었고, 두툼하고 바닥에 깔리는 저역을 은연 중에 많이 기대했던지 이 조합은 상당히 음악적이기는 하나 너무 얇고 부드러우면서 현악기나 실내악에 많이 치중되어 있는 듯한 느낌에 바로 퇴출 대상이 되었다.
이후 인터넷 오디오 카페 활동과 더불어 음악을 즐기면서 여러 가지 안 보이던 문제점들이 노출되기 시작했는데, 그중 가장 골칫거리가 부밍과 공진이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공간의 제약상 많은 부분에서 개선의 한계가 보였는데, 스피커의 위치를 조정하고 여러 가지 액세서리를 사용하는 것으로는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난감한 문제들이었다. 그래서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바로 정들었던 기존 프론트 스피커를 교체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스피커를 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룰을 두 가지였다. 첫째 기존의 인티앰프로도 충분히 구동이 가능해야 할 것이며 둘째 부밍 및 공진 등 주변 환경에서 되도록 자유로울 수 있는 스피커를 찾는 것이었다. 그렇게 서두를 일은 아니었지만 한 번 기울어진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그렇게 기울어진 마음은 점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비로소 원하는 스피커를 찾기에 이르니 바로 석재로 만들어진 스피커다.
독일의 하이엔드 스피커 제조회사인 피셔&피셔 사에서 제작한 이 스피커는 SL450라는 모델로 한 스피커당 86kg에 육박하는 무게도 무게거니와 다인오디오의 에소타 트위터, 시어스 사의 엑셀 마그네슘 콘 및 스캔 스픽 카본 페이퍼 콘으로 구성된 유닛의 위용 자체도 화려하다. 그리고 그 만듦새를 살펴보면 더 상당한 물량이 투입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독특하게 문도르프 단자에 은선 점퍼로 트라이 와이어링을 지원하고 있으며 돌로 만든 인클로저에 물려 손실 없이 쏟아져 나오는 저역은 아주 일품이다.

하지만 기존 인티앰프와 CD 플레이어로 채울 수 없는 약해져 버린 중·저역과 해상도를 보충하기 위해서는 이미 허용치를 벗어나 버린 예산에서 중대한 결단을 해야 했다. 그 때쯤 인터넷 오디오 카페에서 연 청음회에서 듣게 된 크렐의 새로운 인티앰프인 S-300i의 소리는 나도 모르게 내 무릎을 탁 치게 만들었다. 작은 덩치의 이 인티앰프는 사이즈를 의식하지 않고 최고급 시스템인 에소테릭의 분리형 CD 트랜스포터 및 D/A 컨버터에서 기죽지 않으며 B&W의 800D를 울려대고 있었다.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과 R.스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등에서 쏟아져 나오는 저역과 무대감은 이 인티앰프의 두 배 이상이나 되는 가격대 인티앰프들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이것은 분명 기존의 크렐 인티앰프와는 차별되는 소리였으며 앞으로 어떻게 나의 시스템을 구성할지 알려주는 중요한 귀띔과 같은 기회였다.
그리고 최근에는 어떤 CD 플레이어 연결해도 고유의 힘과 하이엔드적인 특성은 유지하면서 CD 플레이어 특유의 음색을 가감 없이 들려주는 크렐의 S-300i 인티앰프를 축으로 여러 가지 CD 플레이어를 검토했다. 멋있는 디자인과 부드럽고 해상도가 일품인 하이브리드 CD 플레이어 패토스의 엔도르핀, 같은 이탈리아의 오디오 업체인 오디아 플라이트 CD1 사이에서 비교 끝에 디지털 입력 단자를 지원하고 소리의 성향 또한 나의 기대에 가장 부합하는 오디아 플라이트 CD1 CD 플레이어를 구입하기로 결정하면서 지금의 시스템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짧고 부족한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나름대로의 음악과 오디오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은 오디오란 취미는 절대 객관적인 잣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고, 개인의 음악적인 성향에 부합하는 그런 취미라는 것이다. 더 궁극적으로 보면 오디오는 자기가 원하는 음악을 가장 좋은 환경과 소리를 통해 듣고자 하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것이다. 나는 현재 내 시스템이 내가 원하는 이상형의 소리를 낸다고 믿지는 않는다. 아마도 모든 오디오파일들이 꿈꾸고 그리는, 노스탤지어와 같은 좋고 기억에 남는 소리에 대한 추억이 있듯 나 또한 과거 중학생 시절 그 커다란 스피커를 헤드폰처럼 양쪽에 세워 놓고 록을 듣던 그 시절의 소리를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은 그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난 지금 자력으로 이만한 오디오 시스템을 마련해 내가 원하던 음악을 마음껏 듣는 것에 만족해하고 있으며 개선되어 가는 시스템으로 인해 예전에는 등한시하고 어려워했던 음악 장르를 재발견해 예전에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음악에 대한 아름다움을 좋은 오디오를 통해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는 음악과 오디오 무엇이 먼저고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그 질문은 아마 지금의 나에겐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어린아이에게 던지는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 사용하는 시스템
스피커 피셔&피셔 SL450   인티앰프 크렐 S-300i   CD 플레이어 MC RCD1, 패토스 엔도르핀
유니버설 플레이어 마란츠 DV-7001   AV 리시버 데논 AVR-2807
리어 스피커 스칸디나 마이크로포드 SE   센터 스피커 다인오디오 포커스 200c
턴테이블 테크닉스 SL-1600 MK2   포노 앰프 그래험 스리 그래험 앰프 2 SE
카트리지 슈어 M44-7   인터커넥터 케이블 아르젠토 세레니티 시그너처
스피커 케이블 킴버 12TC   전원 케이블 PS 오디오 프렐류드 SC, 리버맨 바이칼, 와이어월드 일렉트라 5 2, 와이어월드 스트라투스 5 2   액세서리 PS 오디오 주스 바2, 타옥 오디오 랙, 타옥 인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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