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음을 정확히 재생하기 위한 긴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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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음을 정확히 재생하기 위한 긴 여정
  • 이종학(Johnny Lee)
  • 승인 2009.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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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훈 전무이사

조금씩 추색이 완연해지는 9월 중순, 일산 대화동쪽으로 향하는 필자의 마음은 마냥 설레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ATC로 꾸며진 본격 멀티채널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ATC. 그것도 프런트에 150 애니버서리에 센터는 C6. 거기에 거대한 서브우퍼 C6 SUB까지 장착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최첨단 스튜디오나 작은 홀 정도는 능히 꾸밀 수 있는 라인업이다. 그런데 이 제품들을 일반 가정에서 운용하고 계신 분이라 하니, 당연히 궁금증이 밀려왔다. 아마 자칫 잘못했다간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 싶을 만큼, 엄청난 괴물을 들인 셈인데, 다행히(?) 집도 무사하고, 이웃도 별 불만이 없다고 한다. 대체 무슨 조화란 말인가?

이번 방문의 주인공은 이주훈 전무이사. 오랫동안 외국계 회사를 다니면서, 숱하게 유럽이며 미국을 방문하면서 종교 음악에 관한 자료를 모으신 분이다. 종교 음악과 ATC, 그리고 멀티채널. 어딘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느끼겠지만, 세상 모든 이치가 그렇듯 만나보고 또 대화해봐야 알 일이다. 무엇보다 음이 말한다. 이번에 ATC는 어떤 마술을 부릴지 상당히 기대가 된다.
취재 장소인 애호가의 집은, 대화동의 빌라 단지에 있었다. 이런 취재를 하려면, 첫 대면이 중요하다. 다짜고짜 신상명세서를 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가롭게 날씨나 정치 이야기를 할 수도 없다. 그런데 전무님은 아무 거리낌 없이 음악 이야기부터 꺼냈다. 마치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라도 되듯, 일사천리로 인터뷰가 진행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기기 이력을 소개하기 전에, 잠시 그의 음악 사랑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만일 그에게 단 한 장르의 음악만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종교 음악이 될 것이다. 그레고리안 성가, 스타바트 마테르 등, 다양한 종교 음악을 섭렵하고 계신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그 분이 독실한 카톨릭 신자라는 점을 들 수 있겠고, 둘째는 이런 답변에서 찾을 수 있다.
“처음에 클래식을 듣는다면 17~19세기의 것을 많이 듣게 됩니다. 그러다 조금씩 파고 들어가 12~14세기로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종교 음악을 접하게 되죠. 서양 음악의 뿌리는 종교 음악이니까요.”
특히 그레고리안 성가를 자주 듣고, 대부분의 CD는 100번 이상 들어서 좀 상해버린 상태다. 그러나 의외로 이쪽 음반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원래 솔렘 수도원에서 녹음한 것이 정통입니다. 그레고리안 성가의 역사를 보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일종의 공백기가 있습니다. 이때 잊혀져버렸기 때문이죠. 그러다 장 클로드 신부가 다시 복원해서 현재 많은 자료가 쌓인 상태입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이런 음반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죠.”
아무튼 그런 이유로 국악도 즐기고 계시단다. 이 역시 무속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태백, 안숙선 등의 구음에 특히 매료된 상태. 구음이라고 하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으로 뱃속 깊은 곳부터 터져 나오는, 피를 토하는 듯한 목소리를 말한다. 요즘 젊은 국악인들에게선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경지다.
“한데 녹음이 잘된 국악 음반들을 보면 대부분 일본인들이 녹음한 것들입니다. 이럴 땐 속이 상하죠. 진짜 우리 것인데, 이렇게 남의 손을 빌린다는 게 좀 그렇지 않습니까?”
여기서 자연스럽게 그의 오디오관이 피력된다. 좋은 오디오란, 단순히 소스에 기록된 음을 과학적으로 또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연주자가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을 잘 드러내야 정말로 명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무님은 꼭 하이파이만 국한해서 음악을 즐기지 않는다. 최근에 블루레이 쪽에 빠져 있는데, 일단 스펙이 우수하고, 다양한 음악을 담고 있어서 그간 등한시했던 재즈나 팝도 흠뻑 빠져들 수 있게 되었다. 영화는 DTS HD 마스터 포맷이 좋고, 클래식은 PCM 5.1이 낫다는 지론을 갖고 계신데, 멀티채널을 운용하는 독자라면 한 번 참고할 만하다.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하신 듯합니다.
맞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던가요? 광석 라디오를 조립해서 이불 속에 숨어서 듣곤 했습니다. 공부 안하고 딴 짓 한다고 어머님한테 맞을 수 있으니까요. 이때 자주 듣던 프로그램의 시그널 음악이 드보르작의 아메리카였습니다. 이후, 음악은 제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죠.

본격적으로 오디오를 시작하게 된 것은 언제입니까?
제가 고등학교 입시에 합격했을 무렵입니다. 제게 10살 연상의 누님이 있었는데, 음악 좋아하는 저를 잘 안지라, 훌훌 적금을 털어 오디오를 사준 것입니다. 물론 직장인이라 좀 여유는 있었겠지만, 그래도 당시 오디오의 가격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탑골 공원 옆에 있는 대리점에 가서 별표 전축을 사던 장면이 눈에 선합니다. 이후 이른바 빽판을 사다가 대학에 다닐 때까지 하드록이며 클래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다 잠시 공백기가 찾아온 것이군요.

그렇죠. 아무래도 군대다 취업이다 뭐다 경황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1983년에 결혼을 하면서 혼수품으로 샤프에서 나온 뮤직 센터를 구하면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 무렵에 CD가 소개되었으므로, 그것도 조금씩 사 모으게 되었죠. 그렇게 한 10년쯤 지났을까요? 제 친구 중에 지독한 오디오파일이 한 명 있었습니다. 1990년대 말에 이미 한다하는 기기는 대부분 섭렵한 상태였으니까 대단한 광이었죠. 이 친구를 통해 본격적으로 하이엔드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1997년쯤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매킨토시 C34 및 MC7150을 중심으로 스피커는 인피니티의 시그마를 매칭하면서 고행길에 들어선 것이죠.

당시의 음을 회상하면 어떻습니까?
일단 기본적으로 튜닝이 같은 앰프와 스피커를 연결하니까 좀 문제가 되더군요. 말하자면 중저역 위주로 밸런스를 잡았으므로, 저역이 너무 쏟아졌습니다. 제동이 되지 않은 것이죠. 그러므로 한동안 불만에 잠겨 있다가 우연히 JBL의 S9500을 들었습니다. 천지가 개벽하는 것 같았습니다. 고역이 뻥 뚫려서 가슴이 다 후련했죠. 들은 지 10분만에 결정하고 집으로 배달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진짜 지옥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매킨토시 파워 갖고는 어림도 없었으니까요. 이 스피커는 15인치 우퍼를 무려 두 발이나 장착하고 있습니다. 그냥 대충 물려서 울릴 수 있는 스피커는 아닙니다. 그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국내외 잡지도 구하고, 전문 서적도 읽으면서 체계적으로 접근했죠. 그리고 당시 하이엔드 앰프 3총사인 마크·크렐·제프를 놓고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중고가 드물어 무조건 신품을 사서 박스를 뜯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만일 매칭이 안 되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는 거였죠. 결국 333L을 선택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지하게 쏘더군요. 정말이지 3일만에 내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꾹 참고 견디기로 했습니다. 오히려 CD 플레이어를 더 업그레이드하자는 심정으로 와디아 20·27 세트까지 들여놓고 들었습니다.

귀에 피가 나는 상황이었군요.
그러다 한 달 정도 되자 드디어 소리가 트이더군요. 고역 쏘는 게 없어지고, 서서히 밸런스가 잡혀갔습니다. 중저역도 어느 정도 내려오고요. 기본 성향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들을 만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오디오 하면서 자부심을 갖는 대목은, 일찍부터 전원이며 케이블에 신경을 썼다는 것입니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상당히 혁신적인 생각을 하셨군요.
최초의 호기심은 MIT에서 나온 750 샷건이라는 모델이었습니다. 무려 15kg짜리 알루미늄 절삭 가공한 박스가 붙어 있었는데, 대체 왜 이런 장치를 썼을까 궁금했습니다. 만드는 사람이 정신이상자는 아닐 테니까 한 번 써보자 해서 들였습니다. 그 효과가 너무 탁월해 결국 뱀 놀이에 빠지게 된 것이죠.

중간에 잠깐 휴지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IMF의 후유증으로, 갖고 있던 기기를 모두 내보내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날 밤, 혼자 울 정도로 허망했죠. 한 1년쯤 오디오를 듣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계속 CD를 구입했습니다(웃음). 그 후, E.A.R.의 V20에다가 소누스 파베르의 그랜드 피아노를 들이면서 새로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노틸러스 802와 801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을 했죠.

잠깐 802와 801의 차이를 설명해주시겠습니까?
802만 해도 나올 소리는 다 내줍니다. 그러나 그냥 모니터 스피커일 뿐입니다. 반면 801은 음악다운 음악을 내보내는 스피커입니다. 예를 들어 레닌그라드 필의 공연을 보고 와서 집에서 들어보면 801에서 내는 밸런스가 맞습니다. 다만 집사람이 이 모양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한동안 애를 먹었죠.

그러다 ATC의 150 시그너처가 들어온 거군요.
이 스피커를 들이는 데 참 많은 공을 들였습니다. 원래는 클래식 시리즈의 150을 구할까 하고 들어보니, 섬세한 소리는 곧잘 빠지는데 대편성에서 통울림이 감지되더군요. 그래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ATC에서 시그너처 시리즈를 낸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수입원 사장에게 부탁했더니, 그 분도 망설이더군요. 결국 ATC 본사에 가서 사장이 직접 듣고 제 취향에 맞겠다 싶어서 수입을 했습니다. 받고 보니 형번이 005·006이더군요. 첫 세트는 유럽에, 두 번째 세트는 미국에 가고, 제가 세 번째 유저가 된 것입니다.

지금 매칭하고 있는 앰프와는 상성이 어떻습니까?
파워 앰프인 안틸레온 시그너처는 발로 차도 끄덕이 없을 정도로 단단합니다. 내구성도 좋고, 음도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프리앰프는 소나타 알레그로를 쓰다가 미라지로 바꾼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현의 질감 표현이 현격하게 좋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바이패스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멀티채널과 연계성을 염두에 둔 것이군요.
맞습니다. 사실 이 정도 스피커와 앰프라면 굳이 더 욕심낼 필요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쯤에서 하이파이는 접어두고, 멀티채널 쪽에 신경을 써보자 싶었습니다. 마침 블루레이도 나왔고, 그쪽의 정보량이 너무나 엄청나서, 이 분야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지금은 블루레이에 빠져서 기존의 DVD를 모두 내놓고, 이것으로 교체 중입니다. 솔직히 처음 블루레이를 들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째는 이제 SACD는 죽었다, 둘째는 뮤직 타이틀이 너무나 훌륭하다. 그래서 ATC의 센터 스피커와 서브우퍼를 들인 겁니다.

서브우퍼가 엄청 크기는 하지만 생각처럼 우악스런 저음을 내지는 않더군요.
이 녀석을 들이고 나서 얼마쯤 있다가 아래층에 사는 분에게 슬쩍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요즘은 영화를 별로 보지 않는 모양이네요, 하더군요. 즉, 양으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적절하게 악센트를 준다고 할까요? 아무튼 컷 오프 포인트를 맞추느라 상당히 고생했습니다.

하이파이와 멀티채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정확하게 포획해서 완전한 자기 소리로 만든 부분에서 상당한 내공을 느꼈습니다.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내내 그의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경험에 필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술 담배를 일체 하지 않은 덕분에 오히려 오디오와 비주얼에 전력투구할 수 있었던 탓일까? 케이블이며 음향판 하나하나 꼼꼼하게 손을 대지 않은 부분이 없었고, 그런 정성과 노력이 당연히 음에 반영되었다. 역시 하이파이건 멀티채널이건 그냥 기기만 사서 연결한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다시금 확인하는 방문이었다. 무엇보다 블루레이라는 새 포맷에 적극 대응해서 새롭게 음악 생활을 전개하는 모습에서 큰 활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이 부분은 많은 분들이 새겨볼 만한 대목이라고 생각된다.

▶▶ 사용하는 시스템
프론트 스피커  ATC SCM 150 애니버서리  
리어 스피커 소누스 파베르 그랜드 피아노 홈, 소누스 파베르 도무스 월
센터 스피커 ATC C6(액티브)   서브우퍼 ATC C6 SUB(액티브)   프리앰프 그리폰 미라지
파워 앰프 그리폰 안틸레온 시그너처 스테레오   SACD 플레이어 린데만 820S
튜너 프라이메어 T20   AV 프로세서 데논 AVP-A1HD   멀티채널 파워 앰프 프라이메어 A30.5
블루레이 플레이어 소니 BDP-S350   전원장치 RGPC 440CE
인터커넥트 케이블 노도스트 발할라, 노도스트 오딘   스피커 케이블 리버맨 나이트, 실텍 G5 LS-188
전원 케이블 노도스트 발할라, 아르젠토 마스터 레퍼런스, JPS 랩스 알루미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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