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랜 벗을 다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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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랜 벗을 다시 만나다
  • 월간오디오
  • 승인 2009.1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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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가산동 백철호 씨

학창시절부터 오디오 잡지를 항상 보아왔다. 그 속에서 미래의 내 시스템을 구상하기도 하고 어떤 소리가 나올지 상상해 보기도 하는 등 많은 즐거움을 그곳에서 누렸었다. 사실 이렇게 빨리 나에게 오디오 잡지의 지면을 빌려주는 일이 생길지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글을 조리 있게 쓸 능력도 부족하고 어디 남 앞에 나서기를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지만 하나의 추억거리를 만들어 놓자는 생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동안의 오디오 인생을 한 번 소개해 볼까 한다.

내가 어렸을 적 그러니까 유치원 다닐 때부터 우리집에는 작은 전축이 있었다. 강아지랑 축음기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 빅터인 것으로 기억이 된다. LP와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전축이었다. 아버지가 군대 시절에 사놓으셨다던 서너 장의 클래식 레코드판이 들을 수 있는 소스의 전부였다. 가끔 부모님이 극장에서 상영한 만화의 OST를 사주기도 하셔서 몇 번씩 들었던 기억도 난다. 그 레코드판들은 지금 어디 갔는지 행방이 모연하지만, 그것이 소스 구입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전축을 사주셨다. 스피커는 JBL L65, 인티앰프는 마란츠 1180, 턴테이블은 테크닉스 SL(정확히 기억은 안남), 그리고 마란츠 튜너(커다란 오실로스코프가 음악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멋진 튜너였다). 그 당시 예전에 들었던 빅터 전축과는 차원이 다른, 대형 스피커에서 나오는 맑고 고운 소리의 성우 목소리가 너무 큰 충격이었다.
‘a-ha’라는 팝 그룹의 레코드를 시작으로, 나의 용돈은 어느덧 모두 레코드판 사 모으는 데에 소비되고 있었다. 그 당시는 동네에도 서너군데의 레코드점이 있어서 쉽게 구매할 수 있었고, 청계천이라는 곳을 알게 되면서 동네보다 훨씬 싼 가격에 (만원짜리 한 장으로) 레코드판 몇 개를 사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었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 음악을 좋아하는 녀석들이 우리집에 자주 와서 음악을 듣곤 했다.

“야! 이 악기소리는 우리집에서 못 듣던 소리인데”

이렇게 소스라치게 놀라는 친구들을 보며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바로 해상력의 차이였던 것 같다. 그때부터 소리에 대한 분석과 학습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대학원에 입학하고, 또 조교가 되면서 나에게도 조그만 수입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동안 레코드판은 계속 사 모았으나 기기 변경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CD라는 소스가 새로 생기면서도, 소프트는 꾸준히 수집해나갔지만 우습게도 정작 CD 플레이어는 없었다. 얼마간의 돈이 모이면서 드디어 본격적인 기기 바꿈질이 시작되었다.
우선 쿼드 2라는 진공관 파워가 들어왔다. ‘이야!’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우선 생긴 것도 마음에 들지만 소리가 너무 좋았던 것. 지금까지 듣던 소리와는 달리 내가 좋아하던 현 소리를 제법 질감 있게 들려주니 놀랄 수밖에.
워낙 음악의 장르를 가리지 않고 듣기 때문에 나의 시스템은 클래식부터, 팝, 헤비메탈까지 두루두루 나의 귀를 만족시켜 주어야 했다. 쿼드 2는 그렇게 충실히 자기의 소임을 다했다. 그동안은 기존의 마란츠 인티앰프에 파워만 연결해서 썼었는데, 프리앰프도 매킨토시 C20으로 바꾸고, 소니 XA-5ES CD 플레이어도 새로 들이고, 본격적으로 오디오 마니아로서의 생활이 시작되어 갔다. 무엇보다 이 시기, 음악 듣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 기기 바꿈질은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스피커를 KEF 107/2로 바꾸게 되면서, 프리·파워도 모두 교체 대상에 오르게 되었다. 제프 롤랜드 모델 1, 오디오 리서치 SP14에서 마크 레빈슨 26S, 마크 레빈슨 23.5L 등 많은 제품을 바꾸어가면서 오디오 애호가들이라면 대부분 거쳐가는 매칭에 따른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던 것 같다.
모든 남자들이 그렇겠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점점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갔다. 설상가상으로 직장에서의 업무 강도도 나날이 더해져 갔다. 그야말로 오디오와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순간 오디오를 모두 정리해버리고, 오랜 벗을 잃은 채 10년을 살았다. 물론 그동안도 CD에 대한 욕망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꾸준히 사 모았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가 크고 조금씩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나의 마음속에 있는 ‘그것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누구나 그렇듯 ‘그것이’ 요동치면, 참을 수 없는 것이 또 우리네 마음 아닌가. 다시 나의 오랜 벗이 돌아왔다. 오디오 판을 새로이 짜기 시작한 것.
근 6개월간 스피커는 펜오디오 카라-카리스마, 펜오디오 세레나데, 윌슨 베네시 액트 원, 윌슨 오디오 와트퍼피 시스템 7, 시스템 8, 앰프는 그리폰 칼리스토 2200, 오디오 리서치 레퍼런스 110, 오디오 리서치 레퍼런스 3, CD 플레이어는 와디아 860, 오디아 플라이트 CD1 MK2 등 엄청난 바꿈질을 했다.
예전부터 음악을 많이 듣고, 오디오를 꽤 접했기 때문에 오디오 매칭을 그나마 제대로 할 수 있는 변별력이 생긴 것 같다. 오디오를 취미로 삼으며 음악을 듣는 이유가 스트레스도 풀고 음악으로서 행복해지고자 하는 갈망 때문인데, 오디오 바꿈질이라는 것은 때로는 이런 행복을 아주 방해하기도 한다. 바꿈질을 하면서 매칭에 실패할 수도 있고, 가장 큰 문제는 금전적인 손해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어느 날 한 번 끝까지 가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결행. 지금의 리스님룸 크기는 생각도 안하고, 일생일대 최대의 바꿈질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완성된 시스템이 지면에 소개하는 시스템이다.
카르마 익스퀴짓 익스텐디드 레퍼런스 1A 시그너처, 코드 CPA 5000 프리앰프, 코드 SPM 14000 파워 앰프, 코드 레드 레퍼런스 MK2. 이 녀석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오감을 300% 만족시켜 준다.

카르마는 소스에 담겨져 있는 아주 작은 신호까지도 그대로 들쳐 내서 매우 음악적으로 표현해준다. 아주 무시무시한 소리로 오디오적인 쾌감을 만족시켜줄 때도 있고, 나긋나긋한 소리로 나의 지친 일상을 달래줄 때도 있다. 물론 때로는 엄청난 해상도가 귀를 너무 피곤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느낌 또한 나에겐 좋은 피곤함(?)이니 감수하고 있다.
아직 젊은 나이이기 때문에 오디오적인 쾌감을 더 많이 느끼고 싶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면 좋아하는 소리의 경향이 바뀔 테니 지금의 선호하는 소리를 몇 배 즐기고 싶다. 지금의 시스템 이전에 CD 플레이어를 플레이백 디자인의 MPS-5를 사용했었다. 매우 아날로그적인 소리로 옛날에 사놓았던 음질이 그저 그런 수준의 CD까지도 제법 잘 울려주었다. 하지만 풀 코드로 가보자는 마음이 간절해서인지, 곧 레드 레퍼런스가 내 시청실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역시 디자인의 일체감이 마음에 들고, 올라운드의 음악을 듣는 나에게는 레드 레퍼런스가 좀더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다. 피아노의 명징한 터치나 첼로의 밑바닥에 떨어지는 송진가루가 눈에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시스템은 갖추어졌으니, 몇 개의 케이블을 보강하고, 특히 리스닝룸을 개선해야 할 것 같다. 워낙 작은 공간에서 카르마를 울리려니 조금 큰 볼륨에서는 저역이 뭉쳐서 여기저기 부딪치면서 날아가는 게 가장 큰 문제이다. 아무래도 조만간 룸을 어떻게 손봐야 할 것 같다.
남자들에게 오디오라는 취미는 큰 축복이라 생각한다. 비싼 장난감이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또 다른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있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매진할 것이다. 청력이 바쳐만 준다면 늙어서 레코드판을 한 장 한 장 꺼내서 먼지를 털고 있을 나의 미래가 그려지기도 한다.

▶▶ 사용하는 시스템
스피커 카르마 익스퀴짓 익스텐디드 레퍼런스 1A 시그너처   프리앰프 코드 CPA 5000
파워 앰프 코드 SPM 14000   CD 플레이어 코드 레드 레퍼런스 MK2
인터커넥트 케이블  아르젠토 플로우 마스터 레퍼런스   스피커 케이블 킴버 KS-3033
전원 케이블 HB 케이블 디자인 파워 드래곤   액세서리 HB 케이블 디자인 파워슬레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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