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koon Products DAC-9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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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koon Products DAC-9730
  • 최상균
  • 승인 2014.07.01 00:00
  • 2014년 7월호 (504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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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창성이 듬뿍 담긴, 참으로 자연스러운 음

바쿤은 참으로 독특한 메이커다. 십년쯤 전,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다. 진공관이 아닌 반도체로 고작 10W 가량의 출력을 가진 앰프라니…. 회로를 포함한 모든 것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상식의 밖에 있었다. 크기도 작았고 만듦새도 매끄러워 보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볼 때(소리를 직접 접해본 애호가들 사이에서 그 작은 앰프의 음질이 매우 뛰어나다는 이야기가 들렸음에도) 이 새로운 메이커의 장래는 썩 밝아 보이지 않았다. 씁쓸한 이야기지만, 우리 오디오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독창적인 아이디어보다는 화려한 외관이나 메이커의 이름 값 같은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쿤은 살아남았다. 오히려 처음보다 훨씬 크게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이제는 일본과 우리나라를 넘어서 전 세계의 애호가들을 상대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지금의 바쿤 제품에도 그들이 초기에 보여주었던 지극히 독특한 개성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장에 영합하지 않고 그들의 방식을 고집하여 얻은 값진 승리인 셈이다. 바쿤이 이렇게 성공을 거두게 된 원동력을 찾는다면 두말할 것 없이 뛰어난 음질을 꼽을 수밖에 없다. 애호가들 사이에서 바쿤의 증폭 회로가 기술적으로 독특한 것은 특히 유명하다. 개발자인 나가이 씨는 오랜 아날로그 마니아로서 CDP의 소리를 개선하기 위해 DAC를 만들던 중, 네거티브 피드백이 음질에 미치는 악영향의 심각성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의 이론에 얽매이지 않은 새로운 앰프 회로, 피드백이 없는 회로를 창안해내게 된다.
나가이 씨의 아이디어는 전통적인 방식과는 근본부터 달랐다. 그의 회로는 일반적인 증폭 회로처럼 소스의 출력단에서 음악 신호, 즉 전압을 읽어내어 증폭하는 방식이 아니라, 신호의 전류를 말 그대로 ‘─’자 모양으로 후속 회로에 보내어 증폭한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기존의 방식과는 정 반대인, 즉 입력 임피던스가 낮고 출력 임피던스가 높은 독특한 회로가 개발되었다. 이 회로의 공식 명칭인 ‘사트리’는 ‘깨달음’을 의미하는 ‘사토리’에서 파생된 말인데, 나가이 씨가 바쿤의 앰프를 시연하며 증폭 회로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청중 속에 있던 한 애호가가 자신도 모르게 ‘그것은 깨달음이다!’라고 소리를 지른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기존에 널리 사용되던 증폭 회로를 OP 앰프라는 칩으로 만들어낸 것처럼, 바쿤 역시 사트리 회로를 하나의 칩으로 만들었는데, 대부분의 오디오 기기에서 OP 앰프가 범용으로 사용되는 것처럼 바쿤의 제품이라면 이 칩이 반드시 들어간다. OP 앰프가 매우 큰 증폭도(이론적으로 ∞의 증폭도를 갖는다)를 갖고, 연결하는 저항의 수치와 피드백을 통해 증폭도를 조정하는 것에 반해, 사트리 회로는 증폭을 하지 않고 일체의 피드백을 걸지 않는다. 다만 커런트 미러 회로처럼 입력 전류와 출력 전류를 일정하게 유지시켜줄 뿐이다.
한편 사트리 회로에서는 입력과 출력에 저항을 직렬로 연결하고 이 저항의 비율로 증폭도를 얻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출력에 연결되는 저항값을 변화시킴으로써 증폭도를 조절하는 점이다. 보통의 앰프라면 입력단의 저항으로 음량을 조절하므로, 볼륨 이후 증폭 회로에서 발생하는 노이즈는 (아무리 볼륨이 작더라도) 항상 우리 귀에 들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트리 회로라면 볼륨을 줄이면 노이즈의 크기도 함께 줄어들므로 S/N비의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한편, 피드백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 ‘─’자 구조이므로 피드백에 의한 왜곡이 존재하지 않고 광대역의 신호를 지연 없이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도 갖는다. 아마도 이 회로의 단점은 파워 앰프에 적용할 때 대출력을 얻기 어렵다는 점 외에는 찾기가 어려울 듯하다. 소스, 프리, 파워를 모두 전류 전송을 할 수 있는 제품을 써야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점에 있어서는 크렐의 캐스트(CAST)와 마찬가지다. 이후 바쿤에서는 사트리 회로를 활용하여 다양한 오디오 기기들을 꾸준히 생산해 왔다.

이번에 리뷰하는 제품은 DAC-9730이다. 나가이 씨가 오래 전 DAC를 만들 때, 당시의 다른 제품들과는 차원이 다른 저 지터의 디지털 회로를 성공적으로 완성한 상태에서 아날로그 회로에서 특히 네거티브 피드백 때문에 그 정밀도를 유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 고민의 결과로서 사트리 회로가 창안되었기 때문에 DAC는 바쿤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은 디지털 기술도 많이 발전했고, 사트리 회로도 몇 번의 개량을 거쳐서 더욱 더 진화했으므로 과연 9730이 내 방에서 어떤 소리를 들려줄지 몹시 궁금하다.
우선 외관을 본다. 풀 알루미늄 섀시. 하판은 튼튼한 스테인리스 스틸이다. 전면에는 노브 3개와 디스플레이 창이 자리 잡고 있다. 입력 선택, 게인 조정과 전원 On·Off 노브다. 9730 내부에서 게인의 가변·고정을 선택할 수 있는데, 게인을 고정시키는 쪽이 음질 면에서는 낫다고 한다. 노브의 재질이 독특한데 옛날에 기판 재료로 사용하던 베이클라이트와 유사한 느낌이다. 입력 선택 노브와 전원 스위치는 요즘은 보기 드문 완전 기계식. 가정용이라기보다는 프로용, 최신 제품이라기보다는 예전 제품으로 보인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필자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디자인은 개인 취향의 영역이므로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지만, 조금 더 세련되게 다듬어주었으면, 최소한 제품 간의 크기 정도는 맞춰주었으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입력 단자로는 USB 2.0과 광, 그리고 동축을 지원한다. 출력으로는 일반적인 ‘전압’ 언밸런스 출력이 한 조 제공되며 ‘전류’ 출력이 BNC 단자로 제공된다. 이는 ‘사트리 링크(SATRI-LINK)’라고 명명되어 있으며 바쿤의 앰프와 연결하여 전류 전송을 할 때 사용한다. 기본 모델에는 밸런스 출력이 장착되어 있지 않으나, 9730D 모델에는 밸런스 출력이 장착된다. 9730D는 단순히 언밸런스 출력을 밸런스 출력으로 전환하는 회로나 트랜스포머가 장착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출력 회로가 한 조 더 장착되어 완벽한 풀밸런스 방식이 된다. 이 경우 사트리 링크나 언밸런스 출력도 한 조 더 추가되는데, 핫(+)과 콜드(-) 신호를 별도로 뽑아낼 수 있게 된다.
소리를 들어본다. 사트리 링크를 통해 바쿤의 앰프와 연결하는 것이 이상적이겠으나 9730이 보통의 앰프들과 연결했을 때 어떤 음을 내는지 알아보는데 주력했다. 부드럽고 섬세하며 맑은 음. 게다가 배경이 매우 정숙하여 작은 음에서도 ‘기척’까지 훌륭하게 재생해준다. 그래서 여성 보컬은 더 ‘촉촉’하고 더 ‘매력적’이며 더 ‘속삭’거린다. 현의 합주도 뭉쳐버리는 일이 없고 섬세하게 하늘거리며 펼쳐진다. 요즘 유행처럼 되어버린, 해상도를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게인을 올려 팽팽하고 다이내믹하게 ‘조성’된 인공적인 느낌과는 가는 길이 아예 다르며, 흔히 우리가 음을 들을 때 ‘쏘는’ 것을 느끼는 대역인 중·고역 부분이 유연하고 자연스러워서 귀를 전혀 자극하지 않는다.

바쿤을 주재하는 나가이 씨는 지독한 아날로그 마니아라고 하는데, 그리고 그의 오디오 제작이 CDP의 좋지 않은 소리를 개선할 DAC를 만드는데서 비롯되었다는데, 9730은 이런 사실들을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아날로그적’ 음을 들려준다. 비슷한 회로에 비슷한 부품으로 포장만 달리하는 매너리즘에 빠진 오디오 시장에, 이토록 근본부터 독창적으로 제품 개발에 몰두하는 메이커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 소리를 듣고 보니 이 투박한 디자인마저도 독창성의 일환이라는 생각에 멋지게 보일 정도다.
이런 장르는 어떨까, 저런 악기는 어떨까…. 모처럼 9730을 통해 음악을 실컷 듣고 행복한 포만감을 만끽했다. 문득 며칠 전에 만난 친구가 생각났다. 고가의 하이엔드 DAC를 들인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후로 음악을 오래 들을 때마다 두통이 난다고 했다. 아마도 그의 DAC에는 9730에 비해 엄청난 물량과 기술이 투입되어 있을 텐데…. 오디오에서 좋은 음이라는 것은 단순히 최고급 부품이나 기술력만 갖추고서는 얻을 수 없다는 진실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오디오가 재미있는 것이 아닐까.

수입원 바쿤매니아
가격 430만원, 580만원(DAC-9730D, 주문 판매) 
아날로그 출력 XLR×1(DAC-9730D), RCA×1, SATRI-LINK×1 
디지털 입력 USB×1, Coaxial×1, Optical×1 
디지털 입력 지원 24비트/192kHz 
크기(WHD) 34.9×9.4×39.7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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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4년 7월호 - 5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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