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 그 점잖은 매력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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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 그 점잖은 매력 속으로
  • 이창근
  • 승인 2012.07.01 00:00
  • 2012년 7월호 (480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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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런티 페이퍼, 동을 부식시킨 사각 명판과 곡면을 배제한 정직한 사각통, 삼베 혹은 양복 원단 느낌의 브라운 계열 그릴…. 오디오쟁이라면 누구라도 직감할 AR의 특징들이다. 여기에 +·-가 아닌 1과 2로 표기된 암호 같은 스피커 터미널까지, 처음 접하게 되는 AR 초보자들에겐 흡사 멤버십으로만 운영하는 비밀스런 클럽 같은 이미지마저 안겨준다. 빈티지 AR로 들어가게 되면 초기·중기·후기형에 따른 시기적 분류는 물론 우퍼, 트위터 등의 생김새에 따라 호박줄, 부엉이눈, 토끼눈 같은 별칭이 붙고, 네트워크 구성, 통의 재질, 그릴 컬러까지도 천차만별로 달라져 중독된 상태로 그 끝을 보려면 족히 20년은 걸린다. 이렇듯 취미성 만점에 크기나 가격 또한 접근 안정권이라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 힘든 묘한 마력 같은 게 있다. 그러나 반세기에 걸친 세월을 견뎌낸 물건들이라 밀폐도, 어테뉴에이터 등 몇 가지 보수 요인 또한 존재하여 이것을 개선해나가는 여정 또한 필수 코스로 받아들여야 한다. 대체로 한 두번 이상 병력을 가지고 치료를 받았던지라, 열이면 열, 모두 나오는 소리가 달라 정작 어느 것이 진짜 AR 사운드인지 분간이 안갈 때가 많다. 이 또한 재미라고 위안 삼을 수도 있겠으나 제대로 완치된 특품을 골라낼 수 있는 혜안마저 요구되니 진정 어렵고 까다롭다. 소리로 평가 받는 스피커지만, 서두에 나열한 것처럼 촌스러운 듯 투박한 AR표 비주얼이란 게 있다. 특별히 치장된 멋을 부리지 않았지만, 고급스럽게 다가오는 소박한 외관에 한 번 매료되면 비슷비슷하게 생긴 패밀리 라인을 3조 이상 들이는 기행마저 가능케 한다. 작고 평범해 보이지만 볼수록 곁에 두게 됨은 세월을 초월한 설계자의 디자인 감각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가 있다. 


 자, 그럼 AR의 사운드를 대충 정의해보자. 우선 중역대가 뜨겁고도 진하다. 그러나 어느 한 곳으로 편중되기 직전에 극적으로 중화된 듯한 느낌이다. 커피로 치면 영락없는 아메리카노 스타일일 것이다. 부드럽지만 크림을 섞지 않고, 달콤하지만 시럽이 배제된 걸쭉한 바탕 맛에 적절히 정제수로 완화시킨 듯한 담백함이 먼저 다가오기 때문이다. 구수한 향기를 동반한 마일드한 끝 맛은 무엇을 담아도 그럴듯하게 보여주는 AR만의 범용성을 대변해준다. 샤프란의 심오한 첼로를 불러오다가도, 이미자의 낭랑함이 어색하지 않을 수 있음은 AR이기에 가능한 대목이다. 레퀴엠의 진중한 분위기에서 쑥대머리 같은 흑백 톤의 우리 가락이 리믹스로 넘어와도 체증 없이 소화되는 능력은 참으로 압권이다. 이같이 'Made in Korea'가 아님에도 가장 한국적인 열기가 내재된 소리통이 가능해짐은 바로 이 중역대에서 만들어지는 매직이다. 벨벳 감촉의 결을 기본으로 현악이나 여성 보컬의 끝자락이 예쁘게 올라가는 고역대는 두터움이 입혀져 시리지 않은 청량함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슬픔이란 기조를 머금고 살짝 꺾어지는 점성질 또한 포함된다. 이 때문에 LP로 듣는 옛 가요들, 소위 뽕짝에 절묘한 매칭을 보여주는지도 모르겠다. 젓갈향이 진한 남도식 김치맛이 아메리카노 커피와 어우러지는 순간이다. 상극일 것 같은 이 둘은 묘한 친화력으로 한국식 애수를 유감없이 재현해내는데, 평범한 외모 속에 비범함이 발휘되는 퍼포먼스는 경험해보지 않고는 더 이상 표현이 어렵다.제대로 된 앰프로 울려주는 저역대는 속이 꽉 찬 밀도감으로 아래로 죽 흘러내리는 음장감을 만들어낸다. 밀폐형 인클로저에서 발휘되는 화학적 공기감으로 인해 몇 배 큰 스피커로 착각을 불러일으키면서 넉넉한 뒤 배경을 제공한다. 흔히 매칭 앰프로 피셔 리시버군과 동사의 인티·리시버가 제짝으로 거론된다. 전자에선 칼칼한 고역대가 추가되며 게인 값이 오른 재생음이 펼쳐져 귀에 쏙 들어오는 오디오적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 올라운드적으로 운용 시엔 단연 피셔가 우수하다. 그러나 고전음악만을 생각한다면 단정하게 채찍질하듯 조련하는 AR 인티·리시버가 고품위한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스테레오 초기 현악을 끈끈한 질감으로 듣고자 한다면 이쪽이 최고일 수밖에 없다. AR은 다양한 제품과 버전이 존재하는 만큼 나름의 족보와 공식이 난무하는 면 또한 크다. 그러나 값비싼 초기형에 대한 집착과 상인들이 만들어놓은 덫을 피해가야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례로 웃돈이 얹어지는 백통의 경우 절반 이상 오일과 칠이 강제로 벗겨져 백통 아닌 백통으로 거래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금전의 위력 앞에 AR마저 왜곡되고 있는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시기나 입소문보다는 현재의 상태에 주목하여 선택하고 열심히 쓸어주고 보듬어준다면 시간이 갈수록 더 좋은 소리로 보답해줄 것이다.숨 돌릴 틈조차 없는 일상 속에서 잠시 절제와 쉬어감이 필요하다면 AR 하나쯤 곁에 두고 들어볼 것을 권해본다. 인생을 악보로 생각했을 때 요소요소마다 필요한 '그러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Ma non troppo)'를 제대로 제시해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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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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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2년 7월호 - 4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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