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anced Audio Technology VK-53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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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anced Audio Technology VK-53SE
  • 이종학(Johnny Lee)
  • 승인 2018.10.01 00:00
  • 2018년 10월호 (555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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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앰프의 새 지평을 열다

서사적으로 장엄하게 인트로가 펼쳐지는 가운데, 비장한 바이올린이 등장한다. 마치 감정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는 듯한 강력한 보잉이 처절하게 재현된다. 전체적으로 잘 정돈된 오케스트라 사이로 우뚝 선 연주자의 모습은 카리스마가 넘친다. 양질의 아날로그 프리앰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BAT(Balanced Audio Technology)의 설계자 빅토르 코멘코(Victor Khomenko)는 기본적으로 급수가 다른 엔지니어다. 원래 그는 구 소련에서 대 과학자로 경력을 쌓았다. 그러다 1979년 미국에 망명하면서, 군수라던가, 항공우주 또 IT 계통에서 활발하게 일했다. 이런 배경을 가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후 휴렛 패커드에 근무하던 중, 운명적으로 스티브 베드나르스키를 만나게 된다. 두 사람 모두 하이엔드 오디오가 취미였으므로, 이내 의기투합했다. 자연스럽게 BAT가 창업된 것이다.
한편 BAT에는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진공관이 두 개 있다. 모두 구 소련 시절에 군용으로 각광받던 것들이다. 특히 미그기가 일본에 추락하면서, 그 실체가 밝혀진 바 있다. 즉, 미그기에 탑재될 정도로 튼튼하고, 성능이 빼어난 진공관들인 셈이다. 그 하나가 출력관으로 쓰이는 6C33 계통이고, 또 하나는 주로 프리단에 쓰이는 6H30이다. 프리단의 설계에 많이 사용되는 관으로 6922가 있는데, 코멘코 씨는 이 두 개의 관을 이렇게 비교한다. 6922가 가정용 세단이라면, 6H30은 F1 그랑프리용이다. 레벨 자체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6H30은 고전류를 흘릴 수 있고, 로우 임피던스에 강하며, 레인지도 무척 넓다. 실은 VK-53SE라는 모델명이 붙은 본 기의 주파수 대역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무려 2Hz-200kHz에 달한다! 통상 TR의 경우, 이보다 넓게 잡지만, 진공관은 다르다. 관 자체가 커버하는 대역폭이 좁기 때문에, 20Hz-20kHz 정도만 되면 합격이다. 그런데 이런 광대역은 또 뭐란 말인가? 6H30이 슈퍼 튜브로 불리는 이유를 여기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대역이 넓어지면, 노이즈가 발생할 확률도 높아진다. 작은 유리창보다 큰 창에 먼지가 더 많이 끼는 것과 마찬가지. 특히 전기적인 안정도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본 기는 신호 경로를 최대한 단축하고(불과 하나의 게인 스테이지로 마무리 짓고, Unistage라 부른다), 트랜스포머라던가, 커패시터를 신중하게 처리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기존의 식스팩이라 불리는, 커패시터를 잔뜩 동원한 설계에서 벗어나, 본 기부터는 여러 개의 출력 트랜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이 방식이 더 낫다는 결론을 얻은 것이다. 대개 파워 앰프에서 쓰이는 수법을 과감하게 프리앰프에 도입했다고 봐도 좋다.
프리단에서 제일 중요한 볼륨단의 처리도 인상적이다. 왜 볼륨단이 중요한가는, 레벨에 따라 음이 바뀌거나, 밸런스가 무너지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20도짜리 소주에 물을 조금 타서 희석시키면 맛이 변한다. 물은 더 타면 더 맛이 바뀐다. 그런 이치다. 위상이 변하거나, 특정 대역이 돌출될 수도 있다.
따라서 본 기에는 특별한 볼륨단 처리가 되어 있다. 바로 션트 볼륨 어테뉴에이터 방식을 동원한 것이다. 이를 위해선 다량의 저항이 필요하다. 이 부분에선 최고로 인정을 받고 있는 비샤이의 포일 저항을 다수 동원했다. 그 결과 0.5dB 단위의 미세 조정이 가능한, 무려 140스텝짜리 볼륨단이 완성된 것이다. 당연히 풀 밸런스 타입이라, 입력단을 보면 밸런스단밖에 없다. 또 외부 전원부와 약간의 업그레이드를 하면 바로 최상급기 렉스(REX) Ⅱ로 만들 수도 있다.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는지 짐작이 되는 대목이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동사의 렉스 Ⅱ 파워, 소스기는 린데만의 820 SACD 플레이어, 그리고 스피커는 니트 어쿠스틱스의 얼티메이텀 XL6을 각각 동원했다.

첫 곡은 오이스트라흐가 연주하는 브루흐의 스코틀랜드 환상곡. 서사적으로 장엄하게 인트로가 펼쳐지는 가운데, 비장한 바이올린이 등장한다. 마치 감정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는 듯한 강력한 보잉이 처절하게 재현된다. 전체적으로 잘 정돈된 오케스트라 사이로 우뚝 선 연주자의 모습은 카리스마가 넘친다. 양질의 아날로그 프리앰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어서 앙세르메 지휘,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중 액트 2. 긴박한 바이올린군의 트레몰로와 함께 서정적인 멜로디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무희의 독무가 연상되는 순간이다. 이후 점차 편성이 거대해지고, 절정을 향해 치닫는 대목이 일목요연하다. 클라이맥스에서 터트리는 포효는 가히 환상적이다.
마지막으로 롤링 스톤즈의 ‘Wild Horses’. 어쿠스틱 라이브 버전으로, 두 대의 기타가 좌우에 포진한 가운데, 담담하면서 깊은 드럼과 베이스가 중앙을 자리한다. 호소력 강한 보컬의 음색이 무척 매력적이고, 전체적인 앙상블이 멋지다. 일체 흐트러짐이 없다. LP라든가, 여러 소스를 염두에 둔다면, 본 기와 같은 정통파 아날로그 프리앰프의 존재는 절대적. 그 위력을 강력하게 실감했다.

 

수입원 탑오디오 (070)7767-7021
가격 2,200만원   사용 진공관 6H30×8   아날로그 입력 XLR×5   아날로그 출력 XLR×2, XLR×1(Tape)   주파수 응답 2Hz-200kHz   입력 임피던스 100㏀   출력 임피던스 200Ω   노이즈 -110dB   디스토션 0.005%   게인 18dB   크기(WHD) 48.2×14.6×39.3cm   무게 20.4kg

555 표지이미지
월간 오디오 (2018년 10월호 - 5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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