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카트리지 때려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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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카트리지 때려잡기
  • 김기인
  • 승인 2017.09.01 00:00
  • 2017년 9월호 (542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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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마니아라면 그 누구라도 카트리지 스타일러스, 소위 바늘을 해먹어 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디오 부품 중 가장 허무한 실수를 많이 하는 것이 바로 바늘이기 때문이다. 물론 카트리지를 업그레이드하거나 톤암을 업그레이드했는데 잘 장착해 소리를 냈지만 반대로 청감상 다운그레이드된 느낌이 드는 허무는 그래도 낫다. 오디오에서 상위 버전이라 해서, 즉 업그레이드했다고 해서 좋은 소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익히 다른 파트, 예를 들어 전원 케이블, 앰프 및 인터 케이블, 스피커 및 스피커 케이블 등에서 누차 경험한 터라 이미 까짓것 하고 익숙해졌다. 그러나 카트리지의 경우는 그와는 양상이 다른 경우가 허다하다. 말하자면 들어 보기도 전에 장착하다가 망가뜨리는 경우도 많고, 에이징도 되기 전에 가족의 실수나 본인의 실수로 저세상으로 보내는 카트리지가 부지기수다. 특히 필자처럼 리뷰도 많고 새로운 제품에 대한 소리 호기심도 많은 사람은 아날로그 평지풍파가 가실 날이 없다.

<스가노 요시아키가 제작한 오닉스 플래티나>

약 30여 년 전의 일이다. 상당한 세월이 흘렀으니까 잊어 버릴 만한데도 잊어 버리지 못하는 치명적 실수가 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이마를 치면서 한탄한다. 그러니까 아날로그 오디오 열정이 한참이던 당시로는 세계 최고급 카트리지에 대한 호기심이 하늘을 찔러 3개월치 봉급에 해당하는 금액을 만고의 역경 끝에 결심에 이르러 일본이 아닌 미국 딜러에게 주문했다. 고에츠 마블이었다(현재 오닉스에 해당하는데 당시 미국에서는 마블이라 칭했다). 돌아가신 스가노 요시아키(현 스가노 후미코의 부친)가 만든 역작이었다. 고에츠 프리미엄 라인 중 최상급 레퍼런스 카트리지로 국내 사용자는 단 한 명뿐이었고 필자가 그 두 번째 사용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부러진 오토폰 SPU Royal>

집에 도착해 있다는 소식이 들어와 퇴근길에 가벼운 맥주를 기분 좋게 마시고 집에 들어 왔다. 삼나무 박스에 수납된 옥빛 카트리지는 보기만 해도 황홀했다. 마음이 급해졌다. 대충 씻고 턴테이블 앞으로 대들어 커버를 열고 카트리지를 꺼내어 조심스럽게 세팅을 시도했다. 당시 톤암은 리지드 타입인 SME 시리즈 V였는데 헤드셸이 빠지지 않아 카트리지 장착이 복잡하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카트리지를 톤암에 고정시키고 오버행을 맞추기 시작했다. V암의 오버행은 종이 모듈에 의해 실행되는데, 카트리지 세팅 부위에는 바늘구멍처럼 작은 구멍에 스타일러스를 올려놓게 되어 있다. ‘조심해야 한다. 조심해야 한다!’ 그곳에 카트리지를 조용히 내려놓고 오버행 조정을 시작했다. 그런데 손이 턴테이블 플래터를 툭 쳤던 모양이다. 살짝 플래터가 움직이는가 보다 했는데 아뿔싸 팁이 모듈 구멍에 끼어 있다 어디로 튀어 버린 것이다. 스타일러스만 어디로 날아가 버렸다. 아무리 찾아도 없고 찾아보았자 소용도 없지만…. 결국 소리도 들어 보지 못하고 오는 날 날려 버린 꼴이 되어 버렸다. 너무도 허탈했다. 한 잔의 맥주가 부른 통탄지사인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수리 비용이 카트리지 값의 70%로 결국 6개월치에 가까운 봉급을 날리고서야 세계 최고 카트리지의 음질을 들을 수 있었다. 그 쓰라린 경험 때문에 그 이후로 술 마시고는 턴테이블 카트리지 교환은 절대 하지 않는다.
수년 전에 또 한 번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바로 클리어 오디오의 골드 핑거 장착 시였다. 이 카트리지는 스타일러스와 캔틸레버가 카트리지 전면에 삐죽 튀어나와 있어 사용 중에도 잘 망가뜨린다. 그래서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아시다시피 1천만원을 육박하는 고가 카트리지이지 않는가. 그런데 이놈은 장착해 보지도 못하고 꺼내는 도중에 옷소매에 걸려 사망시켰다. 이제는 빨리 포기해 버린다. 아무리 땅을 치고 후회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그동안 경험에서 여러 번 느껴 보았기에 말이다. 그냥 케이스에 다시 넣고 커버를 덮고 다음날 본사로 직행시켰다. 물론 수리비 수백만원을 날린 것은 당연지사.


<토렌스 124 & SMG 212>

그런데 최근의 실수는 어이가 없다. 새롭게 들여온 탄노이 구형 스피커를 파워에 연결했다. 이놈은 단자가 일자 나사로 조이는 아주 원시적인 형태이다. 물론 귀찮지만 잘 조이면 결과는 좋다. 그래서 세팅을 잘하고 새롭게 구입한 오토폰 SPU Royal G 타입을 토렌스 124, SMG 212 암에 장착하고 소리를 체크한다. 좋은 소리가 나왔다. 만족하고 듣는데 가끔 바이올린 솔로의 강주 시 고역이 지저분하게 표현되면서 약한 노이즈가 묻어나왔다. 에이징 문제려니 하고 며칠을 들어 봐도 동일하다. 수입사에게 혹시 하여 카트리지 점검을 보내 봐도 이상이 없다는 것이다.
결국 필자가 카트리지를 분해해 단자 접촉부터 헤드셸 라인까지 모두 점검하고 청소하고 난리를 쳤다. 그런데 조립 과정에서 잘못해 캔틸레버를 압착시켜 버렸다. 바늘과 캔틸레버가 분리되고 바늘을 찾을 길이 없다.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새 카트리지가 이게 뭔가 본사에 항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위로하는 마음으로 CD(필자는 CD를 거의 안 듣는다)를 틀었는데 턴테이블을 틀 때와 비슷한 현상이 동일한 스피커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며 그쪽 스피커를 살펴보던 중 기겁을 하고 말았다. 스피커 단자를 꽉 조인다고 조였는데 한 선이 느슨하게 조여져 접속이 나빴던 것이다. 탄노이 구형 단자는 핀 가이드가 플라스틱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 때문에 U 플러그가 비스듬히 조여지고 스피커가 진동하면 살짝 접속 이상이 생겼던 모양이다. 결국 스피커 단자 하나 꽉 조이지 않아 카트리지를 날려 버린 격이 되었다. 너무도 큰 교훈이 스스로에게 밀려왔다. 비록 카트리지 하나를 버렸지만 오디오에서 나사나 단자 하나 조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교훈을 남겼다. 비록 카트리지 하나를 때려잡았지만 말이다. 그 교훈이 있어 막대한 손해를 달게 받은 날이었다. 그래 원칙을 저버리면 그 대가가 따라…. 암.

 

<클리어 오디오 골드 핑거 카트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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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7년 9월호 - 5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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