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sher Microceiver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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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sher Microceiver 100
  • 김기인
  • 승인 2015.12.01 00:00
  • 2015년 12월호 (521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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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피셔의 오디오 제품을 선호한다. 전반적으로 피셔의 제품 콘셉트는 실용적이면서도 내구성이 탄탄한 보급품 위주로 형성되었는데, 설립자인 독일계 미국인 에이버리 피셔의 신념이 속속들이 배어 있다. 그들의 제품에는 지나침이 없으며, 디자인도 독일계의 합리주의에 정제된 마감새를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실제 제품의 내부로 들어가 보아도 상당수의 독일 생산품이 곳곳에 박혀 있는데, 기본적인 진공관 제품류의 진공관도 텔레풍켄 오리지널로 독일제이며, 노브나 저항, 콘덴서류 등은 상당수가 독일산이다. 물론 이것은 전후 미국의 독일 지원 원조 정책 등에 힙입은 바 크지만, 설립자 스스로의 내구성과 실용주의 정신에 입각한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당시 독일의 전자 부품은 세계 최고였고, 그런 부품을 사용한다는 것은 또한 세계 최강의 제품 퀄러티를 유지하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50년 전 피셔 오디오 제품들은 아직도 그 놀랄 만한 내구성을 담고 있어 현역기로 사용되고 있으며, 소리도 좋지만 디자인도 깊이감이 있다. 물론 피셔의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리시버인데, 그중에서도 진공관 리시버인 500C, 500B 등이 톱으로 랭크되어 있지만, 그 후속으로 나온 220T, 220TX, 500T, 800T 등의 TR 리시버도 그 독특한 음색과 디자인으로 인기가 여전하다.

피셔의 진공관 리시버는 세계 모든 리시버 설계의 레퍼런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면 다이얼 창을 중앙에 두고, 좌에 스피커 실렉터, 우에 주파수 조정 노브를 둔 후 하단에 저역·고역 컨트롤 실렉터, 밸런스, 그리고 볼륨 노브를 대칭적으로 배치한 샴페인 골드 패널은 이후 모든 녹턴형 리시버의 본보기가 되었다. 피셔 진공관 리시버 전면 창 다이얼 판의 은은한 불빛은 마치 선창가 선술집 같아 밤에 보면 너무도 분위기 있어 한 때 피셔의 전 리시버 제품을 수집하려고까지 했었던 필자의 욕심이 떠오른다. 물론 10대 가량 수집하다가 현재는 4대 정도로 줄여 집의 장식장에 수납해 놓고 있지만 보아도 보아도 질리지 않은 깊이 있는 제품이라 생각한다.
진공관 피셔 리시버의 백미가 500C 대창(큰 글씨 다이얼 판)이라면, TR 피셔 리시버의 백미는 250TX라 말할 수 있다. 물론 TR로서 상급기인 500T, 800T 등이 있지만 내구성, 사운드, 디자인 측면에서 250TX가 앞선다. 피셔 TR 리시버 사운드는 전작 진공관 리시버 사운드를 답습하고 있다. 부피나 무게는 달라졌지만, 디자인 콘셉트나 내구성, 사운드는 놀랍게도 진공관 리시버의 그것을 닮아 있다. 이런 것을 보면 한 회사의 디자인 콘셉트나 사운드는 그 제작 정신에 기초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쉽사리 변화되는 항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필자도 어린 시절 한 때 250TX와 싸운 적이 있다. 250TX를 AR 3a와 4X에 물리고 들었을 때의 그 단호한 댐핑과 묵직한 저역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입력으로 들어간 신호가 단순히 증폭되어 아무런 가미 없이 튀겨져 나온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당시 유행했던 일제 파이오니아나 산수이 리시버에서 나오는 밋밋하게 가미된 사운드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FM은 약간 둔한 듯했지만 나름 남성미가 있었으며, 턴테이블의 아날로그 사운드는 그야말로 한 점의 불만이 없을 정도로 탁월했었다. 사이즈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다루기도 좋고, 무엇인가 탄탄한 이미지의 디자인은 내동댕이쳐도 고장 날 것 같지 않아 믿음직스러웠다.
지금도 가끔 250TX를 다시 들여 놓고 FM 수신용으로 사용할까 하는 욕심이 생기던 차에 청계8가 가로 좌판에 놓여 있는 피셔 마이크로시버 100, 즉 라디오를 발견했다. 한눈에도 피셔 250TX의 아류라는 느낌이 들어 호기심으로 소리를 들어 보았는데, 역시 실망을 주지 않고 마치 250TX와 AR 4X를 연결했을 때와 비슷한 음색으로 나의 심금을 울려 주었다. 당장 구매해 그날로 내부를 뜯어보았다. 사각 페라이트 자석의 5인치 픽스드 에지 풀레인지가 흡음재를 채운 베개형 면 보자기로 둘러져 있고, 250TX에서 보았던 부품들과 트랜스류들이 빼곡했다. 중형 캔 티알 출력석인 암페렉스 2N4077, 2N4078은 뒷면 히트 싱크에 노출되어 부착되어 있어 외부에서도 보인다. 간단하게 외부 스피커를 사용할 수 있도록 스피커 단자가 마련되어 있는데, 라디오 본체와 동일 크기의 자사 옵션 스피커도 판매되었다는 자료를 보았다.

피셔 마이크로시버 100은 탁상형 라디오로 사용하기에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전면 프리 세팅 튜닝으로 5개의 FM 방송국을 선국할 수 있고, 스위치만 누르면 해당 방송이 청취되어 편리했다. 소비 전력 약 10W로 하루 종일 틀어 놓아도 부담 없고, 정결한 사운드가 꽤 큰 음량으로 발산된다. 최근 신형 라디오들과는 만듦새나 사운드 면에서 월등하다. 비교적 전체 부피가 작고 세련되어 FM 청취용으로 권할 만하다. 물론 가격도 최근 제품보다는 월등히 저렴해 부담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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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5년 12월호 - 5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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