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koon Products PRE-5410 MK3·AMP-5521 Mo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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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koon Products PRE-5410 MK3·AMP-5521 Mono
  • 이종학(Johnny Lee)
  • 승인 2015.04.01 00:00
  • 2015년 4월호 (513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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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와 소재의 멋진 하모니

카산드라 윌슨의 ‘You Don't Know What Love Is’는 거의 주술적인 분위기. 오로지 어쿠스틱 기타 하나의 반주로 노래하는데, 그 깊은 감성과 카리스마가 완전히 시청실을 감싼다. 갑자기 그녀의 포로가 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음을 느낀다. 자세히 들어보면 베일을 벗긴 듯한 맑은 음에 적절한 뱃심이 가미되어,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의 표현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다. 스피커의 강점을 확실히 부각시키는 본 기의 역할이 매우 인상적이다.

바쿤의 설계자 아키라 나가이 씨가 최근에 이런 말을 했다. ‘초기에는 아직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에 재료에 많은 비용을 투입했다. 무엇이 소리의 정확도를 높이는지 분명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불안함을 비싼 재료를 사용하는 것으로 자신을 안심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정말 멋진 말이라 생각한다. 사실 우리는 그간 너무 소재나 재료에만 치중한 것은 아닐까 반성이 된다. 극단적인 예지만 약간의 지식을 갖고 DIY를 하는 분들을 만나 보면 내 기기에 100만원짜리 콘덴서가 들어가고, 50만원짜리 저항이 들어가고… 운운하면서 잘난 체 한다. 정작 소리를 들어보면 과연 기대한 만큼의 소리가 날까?
실제로 히트작인 7511을 보면 초기 버전엔 50여 개의 부품이 들어갔다. 그러나 최신작엔 무려 300개가 넘는다. 부품이 남아돌아서? 절대 아니다. 그만큼 설계 실력이 좋아진 것이다. 다시 말해 회로의 기술이 소재의 질에 너무 좌우되지 않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에 만난 PRE-5410 MK3 프리와 AMP-5521 모노럴 파워 세트는 실력과 재료가 잘 어우러진, 요리사로 치면 미슐랭 3스타의 반열에 오른 단계라 해도 좋다. 그간 여러 조합으로 바쿤을 들어왔지만 이런 만족감은 또 다른 차원이라 해도 좋다.
한데 취재 과정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나 들었다. 바쿤이 수출하는 나라 중 한국이 제일 물량이 많고 또 제일 까다롭다는 것이다. 그런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동사는 한국 수출용만은 따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다. 당연히 부품이며 배선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쓴다. 들어가는 부품도 좀더 고급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 애호가들조차 한국 수출품을 찾는 경우가 있단다. 실제로 내부 기판을 보면 ‘KR’이라고 해서 한국에 수출하는 제품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표기하고 있다.
사실 바쿤 제품을 쓰는 애호가들은 별로 내색을 하지 않는다. 남들에게 강요하는 법도 없고 자신의 시스템에 우쭐대는 법도 없다. 대신 일정 시간이 흐르면 바쿤에서 내놓은 개량작을 소리 소문 없이 구한다. 그만큼 브랜드 충성도가 높고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확실한 것이다. 이럴 경우 오히려 제작자가 더 신경을 써서 만들게 되어 있다. 참 보기 좋은 광경이라 생각한다.
본 세트의 경우도 약간의 설명은 필요할 것 같다. 우선 프리앰프인 PRE-5410 MK3로 말하면, 외관을 볼 때 그리 화려하거나 눈을 끌지 않는다. 또 사이즈가 하위 기종보다 대폭 큰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전원부 분리형 특주품인 PRE-5420 MK3을 제외할 때 과연 플래그십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볼륨단이다. 프리앰프의 성능 50% 이상을 좌우하는 존재로 메이커마다 심혈을 기울이는 분야이기도 하다. 동사의 경우 기본형인 알프스 볼륨을 제외하면 3가지의 23스텝 어테뉴에이터 옵션이 더 존재한다.  금속 피막 저항을 쓴 어테뉴에이터, 무유도 권선 저항을 쓴 어테뉴에이터가 있으며(2015년 이후 단종), 끝단을 추구하는 고객들을 위하여 초정밀 칩 저항을 쓴 어테뉴에이터 모델이 있는데, 이 칩 저항은 오차 0.1%의 정확도와 온도 특성 10ppm, 게인 오차 0.1dB 이내로서 측정기에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 정도로 정밀한 저항은 동일한 무게로 따져볼 때, 금 가격의 몇 배는 나간다고 한다. 이 초정밀 칩 저항을 사용한 어테뉴에이터만 따로 구입하면 120만원이라고 한다. 기존의 제품에 투입했을 때 그 효과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한데 본 기 PRE-5410 MK3은 이 어테뉴에이터를 기판에 회로 형태로 풀어 놓았다. 초정밀 칩 저항이 기판 상에 펼쳐지고 1억회의 내구성이 보장된 릴레이가 120스텝으로 작동시키는 것이다.

사트리 칩의 투입도 역시 물량 공세라 할 만하다. 바쿤의 특허인 사트리 회로를 수십 개의 TR로 구현하여 손가락 두 마디 정도 크기의 칩으로 모듈화한 것이 SATRI-IC이다. 그중에서도 72개의 TR을 집적하여 집적도가 가장 높은 최신형 SATRI-IC-UL(Ultimate) 칩을 채널당 2개씩 투입하여 모두 4개의 UL(Ultimate) 칩이 장착되었다.
그것에 더하여 Super Exact Current Mirror SATRI-92-N형 및 P형이라고 하는 모듈화된 칩도 8개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 또한 14개의 TR을 집적하여 커런트 미러 회로를 모듈화한 칩인데, 하나는 네거티브, 다른 하나는 포지티브를 담당한다. N형과 P형이 결합하여 한 쌍의 커런트 미러 회로가 완성이 되는 것이다. PRE-5410 MK3에는 커런트 미러를 위하여 채널당 4개의 칩으로 총 56개의 TR이 들어가는 것이다. TR이 집적되어 모듈화된 칩을 사용하면 기판의 공간을 최소화하면서도 안정성과 균일성이 확보된다고 보면 된다.
한편 오늘 리뷰 대상인 모노럴 파워 앰프인 AMP-5521(모노)을 보자. 스테레오 버전은 35W+35W이다. 그러므로 BTL 증폭 방식으로 모노가 되면 4배의 출력인 140W가 나와야 한다. 제작 과정에서 실험 시에 실제로 140W까지도 매우 낮은 왜곡으로 문제없이 출력이 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넉넉한 전원부가 받쳐주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구성을 좋게 하고 왜곡을 극도로 낮추기 위하여 97W로 줄였다. 하지만 이 정도면 차고도 남는다.
이 BTL 증폭 방식으로 출력을 키운 것은 바쿤이 최초는 아니다. 예전에 야마하에서 상업용 앰프로 개발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를 개량한 것이다. 바쿤의 BTL 증폭 방식의 모노 앰프는 1~2년쯤 전에 SCA-7511 MK3 모노에 적용하여 21W의 모노 앰프를 선보여 성능을 검증하고는 이번에 AMP-5521 회로 설계 단계에서 BTL 증폭을 적용하였다.

본 기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가동 시간의 혁신적인 감소다. MK3 버전의 경우 전원 스위치를 켜고 4~5분 동안은 기다려야 했다. 바쿤의 최신 기술이 총합된 AMP-5521은 그 시간이 20여 초로 현격하게 감소했다. 바이어스의 안정화 시간을 크게 줄인 기술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이를 바이어스 터보라고 부르는데 터보라는 말이 적합할 정도로 신속하게 동작에 들어간다.
사실 기술적인 내용을 쓰자면 한도 끝도 없을 만큼 본 기가 갖는 테크놀로지엔 특별한 게 있다. 그러나 너무 전문적으로 빠지는 것보다 이 정도에서 기술적인 내용을 마치는 것으로 한다.
본 기의 시청을 위해 스피커는 카스타라는 이탈리아 회사에서 나온 모델 C를 동원했다. 왜 이 모델을 골랐냐 하면, 개인적으로 다른 곳에서 리뷰를 위해 심층적으로 들어본 적이 있거니와, 기본적으로 혼 타입이라 무척 예민하기 때문이다. 이런 타입엔 진공관이 제격이라고 하지만, 역으로 본 기의 특성이나 퀄러티를 진단하기에 더없이 유용하다고 봤다. 참고로 소스기는 MSB에서 나온 프리미엄 레퍼런스 CDP를 사용했다.
첫 곡으로 정명훈 지휘의 말러 교향곡 2번 1악장을 듣는다. 초반에 등장하는 첼로 군의 움직임이 발군이다. 질질 끌지 않고 기민하게 반응한다. 그러면서 적절한 양감이 뒷받침되어 기분 좋은 음향이 나온다. 이어서 비통하게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군의 애절함이라니. 세기말의 우수와 퇴폐미가 서서히 시청실을 감싼다. 전체적으로 싱싱하고, 빠르며 또한 광대역하다. 투티에서 몰아치는 기세는 완전히 스피커를 움켜쥐고 뒤흔드는 모습이다. 혼 타입과 TR 앰프가 만났을 때 나올 수 있는 신경질적이거나 여윈 부분이 일체 없다.
이어서 파브리치오 치프리아니가 연주하는 비발디 바이올린 소나타 C단조를 듣는다. 바이올린과 첼로의 이색 편성인데, 두 악기의 음색미가 매우 농밀하게 전개된다. 혼 타입 특유의 개방감에 얹은 바이올린의 예민하면서 매혹적인 음을 느긋하게 첼로가 보좌하는 식이다. 이런 음을 듣고 있으면, 문득 바로크 시대의 베니스로 되돌아간 듯하다. 작은 운하를 가로지르는 다리와 골목길을 거닐면서 어떤 신비의 세계로 향하는 기분이 든다.
카산드라 윌슨의 ‘You Don't Know What Love Is’는 거의 주술적인 분위기. 오로지 어쿠스틱 기타 하나의 반주로 노래하는데, 그 깊은 감성과 카리스마가 완전히 시청실을 감싼다. 갑자기 그녀의 포로가 되어 옴짝달싹할 수 없음을 느낀다. 자세히 들어보면 베일을 벗긴 듯한 맑은 음에 적절한 뱃심이 가미되어,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의 표현이 제대로 드러나고 있다. 스피커의 강점을 확실히 부각시키는 본 기의 역할이 매우 인상적이다.

마지막으로 아트 블래키의 ‘Moanin'’. 오랜만에 들어보는 곡으로, 특유의 간결한 테마 후에 폭풍우가 몰아치듯 쏟아지는 음의 향연엔 그만 정신이 아득해진다. 모든 음이 사실적이고, 또렷하다. 과연 내가 여태 들어왔던 음악이 원래 이런 것이었나 계속 경탄하게 된다. 천장을 뚫을 듯한 트럼펫의 기세에 관능적인 테너 색소폰이 어우러지고, 배후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드럼의 돌격엔 심장이 마구 뛰게 된다. 바로 이게 모던 재즈의 정점. 한데 마치 어제 녹음한 듯한 이 싱싱함은 대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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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5년 4월호 - 5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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