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그 영원한 벗이여 내게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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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그 영원한 벗이여 내게로 오라
  • 월간오디오
  • 승인 2006.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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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산동 홍광일 씨

차분해지고 싶을 때는 하이든을, 밝고 맑은 음악을 듣고 싶을 때는 모차르트를, 여느 때는 오페라의 아리아 등을 짬짬이 듣곤 한다. 음악, 소리라는 것이 참 신기한 것이 무료하고 심심한 것을 없애 주기도 하고, 복잡한 현실로 어지럽혀진 마음을 맑고 평안하게 해주기도 한다.

고등학생 시절의 이야기다. 1970년대 초반, 그 당시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디오보다는 전축이라는 말이 더 친숙했을 것이다. 전축은 지금의 일체형 오디오로 생각하면 된다. 그래도 그때는 전축으로 라디오나 레코드 음악을 들으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리 가깝지도 않았던 친구 집에 들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그 집 거실에는 늘 보아오던 전축이 아닌 스피커, 앰프, 턴테이블이 분리되어 있는 분리형 오디오 시스템이 있었다. 그것이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소리를 들어 보는 것보다도 오디오를 구경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 강렬한 기억이다. 마란츠 앰프와 JBL 스피커가 왜 그리도 예뻐 보이는지…. 한참을 그렇게 오디오에 빠져 있을 때 친구가 클래식 음악을 틀어 주었다. ‘햐!’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소리가 나올 수 있는지. 음악을 알지도 못하는 내가 한참을 멍하게 서서 그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음악이고, 오디오구나’ 하는 생각을 마음 한 켠에 간직한 채.
그 날 이후, 오디오에 대한 나의 동경은 커져 갔다. 음악이 주는 마음의 풍요로움을 알게 된 것이다. 그 후 여러 해에 걸쳐 몇 번쯤 오디오를 구입해보자고 마음먹었지만,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오디오 구입 자금은 번번이 다른 곳에 쓰이기 일쑤였다. 그렇게 좌절의 시간은 흘러가고, 오디오에 대한 꿈도 커져 갔다.

같은 음반의 음악이라도 기기에 따라 그 느낌이 무한히 달라질 수 있음을 실감해 버린 내 귀는 이미 이전의 것이 아니었나보다. 그 때의 감흥을 잊지 못해, 전자회로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귀동냥으로 모은 오디오 지식으로 진공관 앰프를 스스로 만들어보기까지 했으니까 말이다. 대학에 진학하면서는 본격적으로 오디오 시스템을 만들어 보고 싶어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 돈으로 청계천 전자상가를 이리저리 발품팔아 부품을 구입했고, 오디오에 대한 공부도 더하여 프리앰프도 직접 PCB를 설계, 제작, 그리고 조립까지 하여 구동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스피커, 스피커 네트워크, 스피커 케이스 등을 구하여 스피커도 제작했다. 튜너도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기술 부족으로 실패했다. 그래서 튜너 모듈을 구입해 케이스만 가공하여 사용했다. 아마 음질 특성은 엉망이었을 것이다. 음질 특성을 제대로 측정해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오로지 내 귀에 부드럽고 즐겁게 들리도록 제작했으니까. 그래도 여기저기에 부탁, 또 직접 가공·제작했던 오디오를 딴에는 예쁘다고 무척 즐겁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소리가 참 맑고 좋았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덧 자작이 취미가 되었다. 그 후 여러 번 이리 붙이고 저리 붙이고 새로운 것을 구해서 또 붙여보고 나만의 업그레이드는 계속 진행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머니한테서 늘 고물상 차릴 거냐는 핀잔과 정리 안 한다고 꾸중을 듣곤 했다.
오디오를 살 수 있게 된 것은 자작 오디오를 완성하고 7~8년 뒤의 일이다. 결혼을 하고 집을 이사하면서 큰맘 먹고 오라 앰프와 보스 스피커, 하만 카든 CD 플레이어를 장만했다. 푼푼히 절약해가면서 구입한 이 기기들은 그 당시 가장 보편적이고 무난하다고 할 수 있는 사양이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선택의 폭은 그리 넓지 않았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자작한 앰프를 창고에 처박아 버리기에 충분했다. 반짝거리는 오라 앰프, 생김만큼이나 적당히 여유 있는 소리를 들려주는 보스 스피커에 한동안 심취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란 역시 끝이 없는 것 같다. 어느 날부터인가 좀더 부드러운 소리가 듣고 싶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스피커를 바꿔야 할 텐데…. 한참을 고민하다가 탄노이 스피커에 눈이 갔다. 우연히 탄노이 스피커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노이 스피커가 보스 스피커를 밀어내고 집안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DVD와 돌비 5.1채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나도 그 유행 속에 빠져들어 홈시어터 시스템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원래 있던 탄노이 스피커에 폴크 오디오 스피커를 추가하고, 앰프를 홈시어터용 야마하 앰프로 바꾸고, DVD 플레이어를 새로 장만했다. 이 시스템으로 한동안 영화와 음악에 푹 빠져 살았던 것 같다.

음악의 취향도 세월을 따라가나 보다. 젊었을 때는 가사가 있는 밥 딜런, 폴 사이먼, 호세 펠리치아노와 같은 음반들을 즐겨들었지만, 요즘은 차분하게 들을 수 있고 혼탁한 머리를 식혀 주는 클래식에 귀가 간다. 차분해지고 싶을 때는 하이든을, 밝고 맑은 음악을 듣고 싶을 때는 모차르트를, 여느 때는 오페라의 아리아 등을 짬짬이 듣곤 한다. 음악, 소리라는 것이 참 신기한 것이 무료하고 심심한 것을 없애 주기도 하고, 복잡한 현실로 어지럽혀진 마음을 맑고 평안하게 해주기도 한다.
그렇다보니 홈시어터가 아닌 음색이 맑고 부드러운 소리의 스테레오 시스템을 갖추고 싶어 졌다. 그래서 집 안에 있던 홈시어터 시스템은 사무실로 옮겨 회사 동료들과 함께 사용하기로 하고, 집에는 내 취향에 너무나도 잘 맞는 새로운 시스템을 들여 놓게 된다.
dCS의 P8i CD 플레이어가 들려주는 파스텔톤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음향을 나그라의 PMA 파워 앰프가 음과 양으로 충실히 받아주고 표현한다. 그리고 윌슨 베네시의 아크 스피커가 당당하게 뿜어내는 소리는 다이내믹하면서도 도도하거나 넘치지 않는 절제의 미를 보여준다. 이 시스템은 내가 좋아하는 맑고 웅장한 음악들을 너무나도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또한 나그라의 PMA 앰프는 TR 방식이라는데 그 회사의 기반이 진공관이어서인지 나름대로 진공관의 음과 양 표현에 충실한 편이다. 모양도 참 예쁘다. 특히 나중에 추가로 구입한 윌슨 베네시의 서클 턴테이블은 요즘 내 손을 가장 많이 타는 기기다. 카트리지는 벤츠 마이크로의 에이스를 쓰고 있다. 투명한 아크릴 바디만큼이나 시원하고 경쾌한 재생음이 참 매혹적이다.
아날로그는 CD 시스템이 주는 편리함과는 또 다른 기쁨을 준다. 예전에 어렵사리 한두 장씩 모았던 판들을 지금 시스템에 시간 날 때마다 돌려 보는 재미는, 바늘을 내리기 전 기대감만으로도 그 값어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예전엔 소리를 내기 위한 단순 액세서리 정도로만 여겼던 케이블도 요즘은 소리를 가꾸어 내는 하나의 기기로서 중요성이 많이 부각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주위에서 케이블만 바꾸어도 소리가 훨씬 좋아진다고 하기에 반신반의하면서 파워 앰프와 프리앰프를 연결하는 케이블을 카다스 것으로 구입하여 설치를 해보고 나니 이전의 몇몇 케이블을 바꾸었을 때와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가족들도 오디오 기기들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아내가 특히 좋아하는 나나 무스꾸리의 부드러운 음성이 거실을 채우는 오후가 지나고 나면, 어느덧 다 자란 세 딸들이 앞 다투어 CD를 고르고 있다. 가족들과 시원한 거실에 앉아 풍부한 사운드가 곁들여진 음악을 들으며 차 한 잔을 하고 있으면, 바쁜 일상에 쫓겨 거의 찾지 못하는 콘서트홀이 아쉽지 않을 정도다.
내게 오디오는 괴로울 때 마시고 즐거워서 마시는 술과 같다, 기쁠 때 뛰노는 내 마음을 더욱 기쁘게 해주고, 생각이 필요할 때는 깊은 고독의 공간을 만들어 주곤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오디오 기기의 선별도 중요하겠지만, 그 기기 앞에서 들을 준비가 된 청취자의 그날그날의 마음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다 보니, 오디오라는 작은 기쁨을 선사해준 고등학교 시절의 친구가 다시 생각이 난다. 지금은 연락이 안 되지만, 그 예전 오디오에 눈뜨게 해준 그 친구를 만나 소주라도 한잔 나누면서 그간 살아온 이야기에 취하는 날을 상상해 본다. 담소 가운데에는 그의 부친께서 매우 비싸게 구입하고 들으시던 그 오디오도 담아 봐야겠다. 머지않은 때에 그 날이 올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 홍광일 씨의 시스템
스피커 윌슨 베네시 아크, 앙상블 Figura   프리앰프 나그라 PL-L   파워 앰프 나그라 PMA
CD 플레이어 dCS P8i   턴테이블 윌슨 베네시 서클   톤암 윌슨 베네시 액트 0.5
카트리지 벤즈 마이크로 ACE-L   포노EQ 트라이코드 리서치 디아블로
인터 케이블 퓨어소닉 PR-7744   스피커 케이블 퓨어소닉 PR-7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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