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오 초보 인생으로 길어 올린 30년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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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초보 인생으로 길어 올린 30년의 행복
  • 월간오디오
  • 승인 2007.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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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과천시 맹길재 씨

다섯 살이었던 내 아들 녀석이 유치원 다닐 때의 일이니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유치원 소풍에서 있었던 노래자랑에 나간 우리 큰 아이의 입에서 ‘따따따따’하는 이상한 노래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무슨 노래였을까? 나중에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비제의 <카르멘>에 나오는 ‘투우사의 합창’이었다고 한다.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유치원 선생님과 친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던 것은 당연한 일!
아마 우리 집안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무렵 우리 아이가 바이올린 교습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을 것이라고 말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날 있었던 사건은 1970년대 후반 직장 생활을 시작하여 박봉을 쪼개서 모은 저금을 털어서 장만한 천일사의 전축을 집안의 가장 좋은 자리에 모셔놓았던 것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집사람이 그 녀석을 가졌을 때 태교 삼아 열심히 감상한 슈베르트의 ‘송어’ 덕분이라는 것을. 그리고 우리 아이의 노래자랑 사건이 있었을 무렵 식구들이 모여 앉아 가장 자주 감상하던 음악이 바로 ‘카르멘’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런데 내가 듣던 시스템이 무엇이었던가? 모델명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지만 마란츠의 아날로그 플레이어, 럭스만의 인티앰프, 인피니티의 스피커 등으로 구성된 시스템이었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음악 전문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반대이다. 오디오를 30년 가깝게 해왔어도 나는 여전히 음악의 문외한이요, 오디오의 초보자이기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가끔 하는 말이지만, 내가 속한 세대는 예술 환경을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한 문화 문맹자들이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선생님이 쳐주던 풍금을 듣는 것이 유년기의 유일한 음악 체험이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입시준비로 음악이며 미술이며 문화예술 체험은 거의 할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음악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지금도 체계적인 음악 감상을 안내해 주는 강좌가 주변에 있는지 살피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생활이 바쁘고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그런 기회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아무렴 어떨까! 알든 모르든, 이해하든 하지 못하든 나는 음악과 그림을 좋아하는 예술 애호가이다. 음악이 곁에 없는 삶을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예술 감상의 즐거움을 전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예를 들면 일 년에 한두 번씩 나는 내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8명의 여직원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곤 한다. 지난번에는 ‘42번가’와 ‘메노비타’라는 뮤지컬을 이들과 함께 관람하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7년 동안 음악에 대한 이러한 갈망을 풀어주었던 것이 바로 오디오이다. 그 세계에는 음악이 있었고 내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준 감동이 있었다. 그러나 나의 오디오 인생에서 남다른 점이 있다면 오디오 애호가들이 흔히 말하는 방황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리고 내게는 행운도 있었다. 그 행운이란 내 오디오의 문제를 하나부터 열까지 해결해 주는 전문가를 만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중반에 만난 오디오 엔지니어 현종한 사장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내가 만난 유일한 오디오 전문가는 아니지만, 내 오디오 인생 대부분을 돌보아 준 은인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내 오디오 인생에서 만난 또 하나의 행운은 바로 내 집사람이다. 주변에서 흔히 아내의 심기를 살펴가면서 오디오를 한다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만, 지금까지 집사람에게 그리 싸지 않은 오디오 기기의 값을 속이지 않고 밝혀 가면서 나는 당당하게 오디오 취미를 계속해 올 수 있었다. 이렇게 된 데는 ‘내가 호사를 부리는 유일한 것이 오디오이니, 이것만큼은 이해해 달라’는 나의 설득 작전이 주효했던 이유도 있겠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그럽게 내 요청을 받아들인 집사람의 배려가 없었다면, 나 자신이 편한 마음으로 이 취미를 지속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긴 지금 가지고 있는 오디오 시스템을 구입할 때는 집사람이 구입 자금 일부를 보태기까지 했으니 오디오 취미에 관한 한 나는 행운아임에 틀림없다.
돌이켜 보면 나의 첫 번째 오디오 경험은 1970년대 큰형님이 베트남에서 가져 온 소니 카세트 녹음기였지만, 나 자신의 힘으로 시작한 오디오 인생은 1970년대 후반 장만했던 천일사의 장전축과 함께 열렸다. 지금도 나는 그 전축을 집에 갖다 놓았던 날 처음으로 감상한 음반을 잊지 못한다. 테너 엄정행이 부른 ‘목련화’였다. 나 자신이 노력해서 번 돈으로 장만한 오디오 시스템으로 감상하는 ‘목련화’가 안겨 준 감동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후 나는 LP의 소리 골이 거의 닳을 때까지 그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그러나 나의 본격적인 오디오 생활은 80년대 초에 시작되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고 있던 직장에 출입하던 보따리 상인의 소개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거금이었던 100만원을 들여 마란츠의 컴포넌트 풀 세트를 남대문 시장에서 장만했던 것이다. 마란츠의 시스템 컴포넌트와 함께 찾아온 오디오 초년병 시대는 그 후로도 3·4년 정도 계속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에 오면서 나의 오디오 생활은 근본적인 전환기에 접어들었다. 바로 이 무렵 앞에서 언급한 현종한 사장을 만났던 것이다. 당시 그의 조언을 받아들여 장만한 시스템은 럭스만의 인티그레이티드 앰프·인피니티의 스피커였다. 플레이어는 이전부터 사용하던 마란츠의 제품을 그대로 들었다. 당시의 시스템이 들려 준 음향은 나를 완전히 다른 세계로 데려다 주었다. 완전히 차원을 달리하는 음향이 이 시스템에서 흘러나왔던 것이다. 이 시스템은 나와 10년을 함께하면서 바로 이 시절 태어난 우리 아이들의 유년기를 지켰다.
그 결과일까? 음악과 함께 자란 큰 아이는 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여 고등학교에서는 학교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지냈고, 음악 매니지먼트 분야의 일을 하겠다는 장래 희망을 가지고 있고,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공부하기 시작한 딸아이는 아예 음악을 전공하여 지금은 대학에서 재즈 피아노를 공부하고 있다. 음악의 문외한이자 오디오 초보자 아빠를 둔 음악인들이 이렇게 탄생했던 것이다.
1990년대 중반이 되면서 나의 오디오 인생은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다. 아날로그 플레이어는 SME 3010과 오토폰의 SPU 카트리지를 장착한 오라클의 알렉산드리아로, 앰프는 콘래드 존슨의 진공관 앰프 세트로, 스피커는 탄노이의 GRF 메모리로 바뀌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한 번 10년이 흐른 지난해에는 나의 오디오지기인 현종한 사장이 만든 앰프 세트가 내 시스템의 일부가 되면서, 나의 오디오 인생도 거의 종점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가 내게 안겨 준 앰프 세트는 AU7·EF86·12BH7 등의 진공관을 사용하고 있는 프리앰프, 그리고 6L6 푸시풀 파워 앰프이다. 그런데 간혹 이 시스템의 소리가 어떠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 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요.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요? 마땅한 대답을 찾을 수 없군요. 제가 별로 아는 게 없는 오디오 초보자라서요. 그렇지만 이런 대답을 할 수 있습니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시스템이지요. 이 시스템으로 나는 음악을 듣습니다.”
그렇다. 나는 음악을 분석하지 않고 감상하며, 오디오 음향 또한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내게 감동을 안겨 주는 생활의 반려자로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나는 아날로그 음향을 더 좋아한다. 워낙 생활이 분주한 까닭에 감상을 위한 준비 과정이 번거로운 LP를 감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날로그 음향에 담긴 음악 참맛을 느끼기 위하여, 마치 우리 식구들 모두 즐기는 뮤지컬 공연을 가는 듯한 마음가짐으로 나는 오늘도 판장에서 LP 한두 장을 꺼내서 정성스럽게 먼지를 닦고 플레이어에 올린다. 그리고 나면 언제나 내게 감동을 안겨 주는 생생한 감동의 시간이 나를 찾아온다. 지난 30년 세월 동안 지속되어 온,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그런 감동의 시간이 나를 찾아오는 것이다.

▶▶ 맹길재 씨 시스템
스피커 탄노이 GRF 메모리   프리앰프 은하오디오 프리앰프   파워 앰프 은하오디오 파워 앰프
CD 플레이어 프로시드 CDD·DAP   DVD 플레이어 삼성 DVD-P393
턴테이블 오라클 알렉산드리아 MK3   포노 EQ 은하오디오 HP1010   튜너 럭스만 T-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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