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안식처, 음악과 오디오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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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안식처, 음악과 오디오의 세계로
  • 월간오디오
  • 승인 2007.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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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원창석 씨

인생은 고해라고 했던가. 욕심이 인간의 삶에 원동력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끝없는 번민을 주기도 한다. 감성이 풍부한 어린 시절, 복잡한 일상을 탈출하는 방법으로 음악을 들으며 위안을 삼던 분이 나의 부친이셨다. 아바의 음악에 대한 찬사인 ‘Thank You for The Music’을 들으며 편안함을 가지고, 유라이어 힙의 ‘July Morning’을 들으며 때론 지치고 피곤했던 일상을 잠시라도 잊게 되고, 트레버 피녹이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들으며 품격 있는 곳에서의 연주회장의 분위기도 느껴보고, 레드 제플린의 ‘Baby I'm Gonna Leave You’를 들으며 록이 가진 젊음의 에너지를 누리게 된 것이 지금의 오디오 라이프를 시작하게 된 계기이다.
당시엔 오디오의 존재보다는 나를 자극해 줄 음악을 찾는 데 더 관심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관심사는 음반과 뮤지션에 대한 관심만 있고 오디오는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먼 세상의 일이었다. 학창 시절 빌보드 차트와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을 원소기호나 영어단어 외우는 것보다 더 잘 꿰고 다녔었던 기억과 대학시절 방송국에 들어가서 PD로 활동하며 접했던 스튜더, JBL, 토렌스가 오디오를 시작하게 된 밑바탕이 되었다.

오라 인티앰프에 롯데의 LP2000 턴테이블, 그리고 페이즈테크(Phasetech)의 북셀프 스피커가 나의 첫 오디오 시스템이었다. 당시는 소유감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했다. 물론 음악이 가진 메시지를 더 느낄 수 있는 것은 실황공연이지만 그렇다고 내 앞에 비틀즈나 미셸 폴나레프를 부를 수는 없지 않는가. 그렇게 거기에 대한 대안을 끊임없이 찾았고, 그 답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오디오였다. 음악적 감동과 메시지를 오디오를 통해 느껴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이는 인생을 골프에 비유하기도 하고 바둑에도 곧잘 비유하는데, 나는 오디오 라이프에 견주고 싶다. 조촐한 시스템으로 오디오 라이프를 시작한다. 차츰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자신의 소리를 좆다가 방황도 하고 좌절도 맛보고 그렇게 성장기를 겪는다. 어느덧 매칭 노하우도 생기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와의 조화도 꾀하고 리스닝룸의 환경변화로 소리를 완성시키는 성숙기를 완성한다. 이제는 어지간한 것에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자신의 길을 걷는 불혹, 지천명, 이순의 길을 가는 것이다.
지금의 시스템을 갖추게 된 데는 많은 조언과 의지를 주신 지인의 도움이 크다. 첼로 풀시스템을 사용하고 계시는 이 분의 오디오 편력이 아니었더라면, 아직도 나는 질풍노도의 방황을 겪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시스템을 갖추게 된 동기는 클래식, 팝, 록, 재즈 등 전 장르를 듣는 데 만족을 주었기 때문이다. 부메스터의 808 MK5 프리앰프는 섬세함과 유려함, 그리고 음악적인 에너지 전달에 만족을 가져다준다. 부메스터의 911 MK3 파워 앰프는 다부진 체구에 걸맞게 강력한 구동력으로 전 장르를 구사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메리디언의 800 CD 플레이어는 해상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움과 음악성을 표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겸비했는데, 7년여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음악적인 동반자 위치를 굳건히 지키는 애장기이기도 하다. LP로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를 느끼기 위해 클리어오디오의 마스터 솔루션 턴테이블과 마드리갈 카트리지를 안분지족의 심정으로 운용하고 있다. 웨스트레이크의 BBSM 12 VF 레퍼런스 모니터는 말 그대로 전 장르의 음악을 가감 없이 그대로 나타내주는 거울과도 같은 스피커다. 서브로 사용하고 있는 매킨토시의 MC275 신형 진공관 파워 앰프의 브리지 접속과 캐리의 SLP 05 프리앰프는 서브시스템이라기보다는 소편성이나 재즈, 보컬 재생 등에서 탁월한 성능을 보여주기에 제2의 메인 시스템이라 부르고 싶다. 케이블은 너바나의 SX 모델과 트랜스페어런트의 울트라 시리즈와 MIT의 오라클 V1.1 시리즈를 좋아해서 교체·사용하고 있다.

욕심이 있다면 최근에 구입한 이벤투스의 플래그십 모델인 네뷸러 스피커를 부메스터의 플래그십 파워 앰프인 909에 물려보는 호사를 누려보거나, 캐리의 진공관 모노블록 앰프을 소장 중인 캐리의 SLP 05와 순정 조합으로 구동하고 싶다.
10여년의 오디오 라이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스피커는 베리티 오디오의 파르시팔이다. 6년 동안 사용했는데 지금은 아끼는 후배의 리스닝룸에 들어가 있다. 파워 앰프로는 마크 레빈슨의 20.5L, 그리고 프리앰프로는 마크 레빈슨의 26SL, 그리고 오디오 리서치의 레퍼런스 2 MK2, CD 플레이어는 비맥의 트랜스포트와 D/A 컨버터가 기억에 남는다.
파르시팔은 지금의 리스닝룸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그 특유의 농밀하고 밀도감 있는 소리를 내주었는데, 아마 그 때 당시로는 필적할 만한 스피커가 없었던 것 같다. 현이나 보컬, 그리고 재즈 재생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피아노 재생에는 조금 아쉬웠다. 지극히 주관적인 사견이지만 스캐닝 유닛은 피아노 재생에서 아큐톤 유닛에 비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와 반대로 보컬이나 현의 재생에서는 밀도감과 질감이라는 부분에서 아주 탁월하다는 소견이다. 마크 레빈슨 20.5L과 26SL은 지금도 명기로 인구에 회자되듯이 딱히 단점을 찾아보기 어려운 기기였다. 음반에 담긴 제작자와 연주자의 예술성을 오디오 기기로 재생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단점이라고 느낄 정도로 인상 깊었다. 오디오 리서치 VT200 MK2와 레퍼런스 2 MK2의 조합에서는 진공관 앰프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구동력을 보여줬고, 프리앰프의 잘 정돈된 소리조율 능력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기기였다. 비맥의 CD 트랜스포트와 컨버터 조합은 사실 제작사의 도산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애장했을 정도로 그 기술력과 음악성의 조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명기가 아닌가 싶다. 아날로그 시대부터 음악을 들어온 내게 조금은 경질화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데, CD 소리를 가장 편안하게 재생한 기기가 아니었나 싶다. 대안으로 들여놓은 CD 플레이어가 바로 지금도 굳건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클래식 연주자 중에서는 바로크 음악을 가장 바로크 시대의 정서에 알맞게 연주하는 트레버 피녹을 좋아하고, 팝에서는 수십 년을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음악성으로 거장의 반열에 선 에릭 클랩튼을, 그리고 월드뮤직에서는 미셸 폴나레프의 삶과 음악을 좋아한다.

내게 오디오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한 도구의 일부이다. 물론 가족과 같이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바쁘고 지친 일상에서 아바의 ‘안단테 안단테’가 주는 평온함과 팻 메스니의 ‘Sueno Com Mexico’가 주는 이국적인 정서와 고독의 향수를 느끼기엔 한 사람만을 위한 오디오, 즉 하이엔드 오디오가 아닐는지.
가족과는 EAR 861 파워와 플리니우스 M16 프리, 이벤투스 오디오의 메티스 스피커, 데논의 DVD A-1를 매칭하여 클래식 실황공연이나 일본·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즐겨본다. 그리고 듣기 쉽고 편한 소품 위주의 곡들로 7살짜리 딸아이와 10여 년 이상의 오디오 라이프를 아무 말 없이 지켜봐주고 후원해 준 사랑하는 아내와 즐긴다.
음악실황 공연을 즐겨 찾는 편이지만 그 어느 오디오도 현장의 열기는 재생할 수 없다는 것이 지론이다. 그러나 바쁜 일상에서 내 디스코그래피의 연주자들을 어찌 다 만날 것이며 현존하지 않는 거장들의 체취를 어찌 느낄 것인가? 최근 아끼는 후배들과 동경하던 거장 트레버 피녹의 연주를 감상할 일이 있었는데, 가슴 벅참과 유려하고 격조 높은 앙상블에도 불구하고 감상 위치의 한계로 음반에서만 듣던 트레버 피녹의 쳄발로 연주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내한 공연을 가졌던 얀 가바렉과 힐리아드 앙상블의 ECM 음반에서 듣던 감동도 실연에서는 그 감동이 반감되었다. 그래서 조작의 미학인 오디오를 통해서 연주자와 제작자의 혼이 담긴 음반을 나만의 사운드로 재생하는 데 오디오 라이프의 매력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오디오 라이프는 단순히 기기의 재생을 떠나서 마치 피곤하고 지친 삶의 현장에서 사랑하는 가족이 숨쉬는 가정과 젖먹이 유아의 엄마품과도 같은 존재라고 본다.
아울러 스테레오 사운드에서 레코드 플레이어라는 표현을 쓰지만 리스닝룸은 단순히 오디오 기기와 디스코그래피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닌 자기의 인생과 이력이 담긴 자신을 표현하는 거울이라 본다. 40세가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영원한 안식을 가져다주는 리스닝룸은 자신의 표상이 아닐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리스닝룸의 조명과 소품에도 세심한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래서 영화와 오페라를 종합예술이라고 한다면 리스닝룸은 오디오파일의 종합예술이 담긴 공간이 아닐는지. 오디오적인 열기가 한창일 때는 중역의 밀도감이니 고역의 해상력이니 저역의 타이트함에 신경을 썼지만 이제는 그런 것들에 비교적 관대해지려 한다.
리스닝룸에서 조명에 의지한 채 오늘도 한 잔의 에스프레소와 알버트 하몬드의 ‘For The Peace of Allmankind’를 듣노라면 그 곳엔 오디오 기기와 세속적인 명반의 존재는 없다. 다만 영원한 안식을 가져다주는 음악만 있을 뿐이다.

▶▶ 사용하는 시스템
스피커 웨스트레이크 BBSM 12 VF 레퍼런스 모니터, 이벤투스 메티스, 이벤투스 네뷸러
프리앰프 부메스터 808 MK5, 플리니우스 M16, 캐리 SLP 05
파워 앰프 부메스터 911 MK3, EAR 861, 매킨토시 MC275
턴테이블 클리어오디오 마스터 솔루션   CD 플레이어 메리디언 800   DVD 플레이어 데논 DVD A-1
케이블 너바나 SX 모델, 트랜스페어런트 울트라 시리즈, MIT 오라클 V1.1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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