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오디오, 길고도 험난한 길로 나를 인도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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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오디오, 길고도 험난한 길로 나를 인도하리니
  • 월간오디오
  • 승인 2009.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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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이우형 씨

나에게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길을 걷다가 눈에 띄는 집이나 건물을 보면 거의 본능적으로 ‘저곳에 오디오를 설치하면 어떤 소리가 날까?’하는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이사할 때 가장 중요시한 부분이 일반적인 삶의 질보다는 최적의 오디오 환경과 최고의 방음이 우선이었다. 그러다보니 이사하는 곳마다 내 가족과 주변 분들은 탐탁하지 않게 생각했고, 이젠 내가 이사한다고 해도 별로 궁금해 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나이가 들어, 사운드에도 대역 밸런스가 중요하듯, 삶에도 모든 환경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음악의 열정이 줄어든 것은 아닌데 말이다.
이리 된 것은 어릴 때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귀를 가까이 대고 들어야 잠이 오던 시절 때문일 것이다. 그 시절 레드 제플린과 비틀즈를 알았고, 밥 딜런과 에릭 클랩튼에 열광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트랜지스터 라디오의 사운드는 요즘 몇 천원이면 구할 수 있는 컴퓨터용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만도 못한 사운드임에도 불구하고, 듣는 내 가슴속에는 수만 명의 관중이 열광하는 가운데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퀸의 모습이 그려졌고, 나중에 보게 된 그들의 공연 사진은 내 상상과 거의 일치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아마 본격적으로 오디오의 세계에 빠져든 것은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선물로 부모님이 사주신 인켈 오디오 세트가 내방에 들어오면서부터일 것이다. 거실의 오디오 기기는 가족들의 눈치를 보느라 듣고 싶은 시간에 들을 수 없었으나, 내 방에 오디오가 생긴 후에는 늦은 밤에도 적당한 볼륨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더욱 큰 즐거움이 된 것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좋은 음악을 바로 녹음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LP 시절이라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던 명곡들이 많았고, 그런 음악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서나 가끔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런 곡이 나오면 바로 녹음할 수 있도록 항상 카세트테이프를 준비해 놓았고 녹음 레벨도 조정해 놓은 습관이 생길 정도였다. 그래서 음악을 중간에 끊거나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면 멘트를 하는 DJ가 제일 싫었다.
당시 일반 음반 가게에서는 라이선스 LP만 구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되거나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금지된 곡이 들어 있다는 것 때문에 라이선스로 출시되지 않는 명반들을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외국에 다녀오는 분들에게 부탁하거나, 소위 말하는 ‘빽판’을 구입하는 것이 그 방법인데, 그때 자주 갔던 곳이 황학동이었다. 그 시절 그곳은 나에게 성지나 다름없었다. 가끔 라디오로만 들을 수 있거나 전설로 알려졌던 음반들이 수두룩했고, 항상 용돈이 부족한 학생 신분으로도 가끔 몇 장 정도는 부담 없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은 음악을 향한 갈증을 해소해 주는데 충분했다. 가끔은 원하는 음반이 아닌 라벨을 잘못 붙인 다른 음반이 있어 약간의 위험부담을 수반해야 했지만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 자주 갔던 곳은 황학동 모 아파트에서 파는 집이었는데, 한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되었던 그곳은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주인아저씨와 친해지다 보니 가끔가다 다른 방으로 불러서 장롱 속의 보자기를 꺼내 그 속에 있던 보석 같은 중고 원판을 꺼내어 보여주곤 했고, 가끔은 큰맘 먹고 구입해 몇 일간 듣지도 않고 껴안고 잔 적도 있다. 그중 지금도 기억나는 음반이 있는데, 국내에는 라이선스로는 출시가 안 되었던 제스로 툴의 희귀 음반으로 재킷 그림이 아주 특이했다.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 당시 친구들과 소주 한 잔을 기울이다가 갑자기 일어나 ‘세상에 록은 1968년에 태어나 1980년에 죽었다’라고 외친 적이 있다. 68년은 전설의 록 밴드인 크림의 ‘Wheels of Fire’가 발표된 해였고, 80년은 레드 제플린이 해체한 해였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 한 말이지만 지금도 그 당시 생각과 많이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 시점부터 나의 음악은 장르를 넓혀가기 시작했고, 거의 매달 오디오 관련 잡지를 사서 보기 시작했다. 국악부터 클래식과 현대 음악까지, 그리고 록부터 포크 음악에 이어 저항가요까지 가리지 않고 들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CD 시대가 되면서 수입 음반 시장이 더욱 활성화되어 예전에 라디오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음악 중 일부를 CD로 구입할 수 있었고, 디지털 음원 시대가 나를 위해 열린 것이 아닐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도 하게 되었다(그 고마운 디지털이 음악에 있어서 무조건 최상의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니 디지털은 나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던 셈이다).

나에게 있어 음악이란 깊이를 알 수 없는 행복이다. 지금 나의 삶이 최고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음악과 오디오가 있어 나는 행복하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동안 내 가슴 속에 흐르는 노래가 있다. 비틀즈의 ‘The Long and Winding Road’란 노래다. 오디오와 함께한 지난 시간이, 아니 앞으로 이어질 그 시간들이 이 노래 제목으로 정의되는 것 같다. ‘The Long and Winding Road~’

지금 생각하면 무척이나 엉성한 시스템이었지만 오디오 기기를 어떻게 세팅하면 좀더 나은 소리가 들릴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가지고 있던 싸구려 턴테이블의 하울링 테스트를 하며 진동이 잡는 것이 소리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주는지 알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동안 쓰던 구형인 저가의 JBL 북셀프 스피커에서 다인오디오의 입문용 스피커를 호기심으로 구입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무심코 자주 듣던 음반을 들으면서 두 스피커 간의 미묘한 고역의 뉘앙스 차이에 놀라 집중하여 들어보니 저역 특성도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고, 비슷한 체구의 두 스피커 사이에서 음질 및 음색 차이를 느끼게 되었다.
이때부터 내 두뇌의 생각 분포도에서 ‘오디오’란 단어가 ‘음악’이란 단어보다 더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고, 무한 반복되는 시행착오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원하는 소리를 찾기보다는 오디오 기기를 바꿔 변화되는 소리를 즐겼고, 따라서 바꿈의 원인도 업그레이드보다는 고만고만한 시스템으로 교체해 다른 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기준이 없었던 것은 아닌 것이 그 당시 PC 통신이 유행하고 있었고, 나우누리나 하이텔 등의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재즈에 빠져 있던 시기여서 가장 좋아하던 비밥 계열의 음악을 잘 표현해 주는 시스템을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때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한 때였고, 음악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던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좋은 공연은 빠지지 않고 봤으며 음악에 관련된 모임에는 열일을 제쳐두고 참석했고, 좋은 음반은 어떻게든 구입했다. 보사노바의 리드미컬한 달콤함과 빅밴드의 화려한 관악기 연주도 좋았고, 때로는 부드럽고 때로는 격정적이면서 그 연주 속에 삶의 애환이 녹아 있는 비밥은 타임머신이 되어 나를 존 콜트레인 곁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동안 오디오와 음악에서 멀어지는 사건이 생기게 되었다. 음악을 너무 좋아하다보니 작은 재즈 바를 열게 되었는데, 낮에 직장생활을 하고 저녁에 가게를 운영하는 형식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약간 피곤하기도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기쁨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고, 가지고 있던 JBL 스피커와 마란츠 앰프, 그리고 CD 플레이어를 가지고 왔고, 가끔 집에서 들으려고 남겨둔 일부 음반을 제외하고 모두 가게로 가져왔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오픈한 지 두 달 후 우리나라는 IMF 사태를 맞았다. 가게 매상은 엉망이 되어 임대료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결국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시기에 가게를 선뜻 인수할 사람이 없었고, 결국 한 사람에게 가게의 오디오 시스템과 음반을 모두 놔두고 보증금만 받는 조건으로 넘기게 되었다. 일순간 많은 빚과 함께 일부 저자에게 직접 사인 받은 재즈에 관련된 책자 여러 권, 내 오디오 시스템, 그리고 그동안 모아왔던 CD를 모두 잃게 되었다. 몇 년에 걸쳐 빚은 어느 정도 갚았지만, 오디오와 음반을 잃은 상처는 치유되지 않아 음반가게 근처도 가지 않았고, 그나마 남아 있던 몇 십 장의 음반도 듣지 않았다.

다시 몇 년 동안 망각이라는 좋은(?) 약을 먹으니 다시 음악이 듣고 싶어졌고, 오디오 기기에도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IMF 이전에는 오디오 잡지를 보면서 돈이 생기면 이 기기들로 내 음악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전부 지우고 산수이 빈티지 앰프와 인켈 CD 플레이어, 그리고 KEF의 엔트리급 스피커로 조촐하게 다시 시작했다. 이때가 마음 깊숙이 봉인되어 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 다시 타오르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수많은 북셀프 스피커와 인티앰프를 바꿔가며 제법 내가 원하는 소리를 찾기 시작했고, 스피커는 다인오디오 계열이 가장 내 취향에 맞는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전에 사용했던 엔트리급 스피커에서 많은 가능성을 보았고, 상위 모델은 단점이 보완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구입했던 모델이 다인오디오 컨투어 1 MK2였다. 이 스피커는 나중에 꽤나 유명했던 컨투어 1.1의 전작이라는 설명을 지인에게 듣게 되었다. 북셀프 스피커 중에서도 작은 사이즈인 이 스피커가 당시 꽤나 고가인 것에 놀랐지만, 제법 괜찮은 소리를 통해 놀라움을 선사한 스피커이기에 별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가지고 있던 마란츠 CD-63SE CD 플레이어와 오라 VA-50 인티앰프와 연결해 이젠 어느 정도 완성이라고 생각하며 오디오 기기의 욕심은 접고 음악만 듣겠노라고 지키지도 못할 다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때 새로운 것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그것은 DVD를 이용한 홈시어터 시스템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PC용 5.1채널 스피커로는 제대로 된 음장을 즐기지 못했을 때인데, 우연히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입한 생활용품에 DVD 한 장이 사은품으로 딸려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DVD는 톰 크루즈 주연의 비교적 오래된 영화인 <탑 건>이었지만 워낙 좋아했던 영화였고, 영화 중 공중 전투 장면을 5.1채널로 들으면 어떨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하지만 내게는 AV 리시버도 5.1 채널을 구연할 스피커도 DVD 플레이어도 없었다. 결국 그 DVD 한 장 때문에 소니 STR-DE 675라는 AV 앰프를 마련했고, 야마하의 저가 서브우퍼와 스피커로 TV에 연결해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 작은 TV 화면이라 화질에는 큰 감흥이 없었지만 사방에서 들려오는 입체적인 음장에 놀랐다. 그러나 하이파이에 관심이 더욱 많았던 나는 결국 AV를 소홀할 수밖에 없었지만 AV용 스피커는 ALR 조단 엔트리 M, KEF 크레스타 2, KEF Q1 등으로 여러 번 바꿨다. 이중에 ALR 조단 엔트리 M은 하이파이에서 좋은 느낌을 받았고, KEF Q1은 그 음장 특성 때문에 AV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하게 되어 후일 AV 프론트 스피커를 같은 회사의 Q5로 결정하게 되었고, 센터 스피커 역시 Q9c로 바꾸게 되었다.
이후 작은 원룸에서 오피스텔로 이사하게 되었다. 조금 넓어진 공간을 채우기 위해 (이전의 다짐은 깨끗이 잊고) 일단 맘에 드는 앰프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당시 눈에 든 인티앰프 2종이 로텔의 RA02와 마란츠 PM-7200이었는데, A급과 AB급 동작을 선택해 들을 수 있는 기능 때문에 PM-7200을 구입했다. 얼마 뒤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양새는 물론 그에 걸맞은 소리에 반해 지인이 가지고 있던 마이크로메가의 마이크로드라이브와 마이크로DAC라는 CD 트랜스포트와 D/A 컨버터 조합을 들여왔고, 비교적 오랜 시간 동안 듣게 되었다.
이후에 조금 더 큰 음량으로 들을 수 있는 곳을 물색하다가 조금 더 넓은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그토록 바라던 AV 전용 룸을 가지게 되었다. 그 당시 커다란 화면의 유혹 때문에 옵토마 737이란 모델의 프로젝터를 구입해 지금도 사용하고 있는데, 차후에 FULL-HD급으로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다. 현재 AV 앰프는 야마하 RX-V757이란 모델을 사용하고 있고, KEF의 Q5 프론트 스피커와 Q9c 센터 스피커, 그리고 리어와 리어 백 스피커는 그냥 편하게 스칸디나 마이크로포드 SE을 사용하고 있다. 주로 디빅스 플레이어인 Tvix M6510A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는데, 큰 욕심이 없어 업그레이드에 소홀했지만 HDMI 1.3A가 지원되는 AV 리시버와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구입할 예정이다.

첫 AV 전용 룸을 갖게 되자 오디오 인생에 한 획을 그은 스피커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 스피커가 다인오디오 컨투어 1.3 SE로 지금도 많은 사용자의 호평과 인기를 얻고 있는 모델이다. 그리고 이 스피커를 제대로 구동해줄 앰프를 찾던 중 당시 인기 있던 사이트에서 공구한 파워 앰프를 들이게 되었고, 프리앰프는 에이프릴뮤직의 DP300을 연결해 쓰게 되었는데, 쓸 만한 D/A 컨버터 기능을 가지고 있어 마침 고장이 나 있던 마이크로DAC를 대신해 한동안 아주 유용하게 사용했다. 얼마 후 파워 앰프의 한계를 느껴 더 나은 파워 앰프를 찾던 중 우연히 알게 된 덴마크의 어쿠스틱 리얼리티라는 오디오 제조사 홈페이지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 홈페이지에서 제품 홍보를 위한 이벤트를 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벤트 내용이 홍보 기간 중 제품을 구입하면 세계 어느 곳이라도 무료 배송해 주고, 많은 가격 할인 혜택까지 준다는 것이었다. 이미 덴마크라고 하면 미국이나 영국 못지않은 오디오의 강국임을 알고 있었고, 내가 아끼는 다인오디오 컨투어 1.3 SE의 고향이 아니었던가. 게다가 당시 많은 관심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뱅앤올룹슨 사의 아이스 파워 모듈을 적용한 앰프가 이 회사의 주력제품인 EAR 1001 모노블록 파워 앰프였기에 망설임 없이 이메일을 보냈고, 결국 직접 수입해 사용하게 되었다. 그 조합에서 들려주는 음악은 내가 이전에 사용했던 모든 시스템을 잊게 해줄 정도로 만족스러웠으며 특히 스피커는 앞으로 어떤 업그레이드를 하더라도 서브용으로 꼭 가지고 있고 싶을 정도의 아끼게 되었다.
비교적 여유 있는 전용 룸과 나름대로 메인 시스템이 완성되자 서브시스템에 눈길이 가게 되었는데, 마침 흔치않은 모델인 탄노이 SRM12B라는 레드 모니터 계열의 빈티지 스피커를 발견해 들여오게 되었다. 많은 기대와 함께 다인오디오와 잠시 임무 교대를 해 음악을 듣는 순간 놀라고 말았다. 그때까지 빈티지 스피커는 조금 해상력을 누그러뜨려 편안한 소리를 들려줄지 알았는데, 고역은 신경질적으로 쏘고, 저역은 벙벙거려 들어줄 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스피커에 달려 있는 어테뉴에이터를 아무리 조정해 봐도 내가 이것을 왜 그 먼 곳까지 가서 구입을 했을까 하는 후회만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본 끝에 오래전에 만들어진 스피커를 가장 최근에 개발된 디지털 계열의 앰프와 연결해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모순인 듯했다. 탄노이가 어떤 회사인데 이런 소리밖에 못 낼까 하는 생각에 평소 관심이 많던 진공관 앰프에 물려보기로 했고, 작고 아름다운 외관을 갖고 있는 신세시스 니미스 앰프를 들여오게 되었는데, 역시 이 진공관 앰프와 연결한 SRM12B는 정말 훌륭한 소리를 들려주게 되었고, 한동안 아끼는 조합으로 실내악 등을 중심으로 감상하는데 이용했다.


약 1년 뒤 직장 문제로 서울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리스닝 공간의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이사한 곳은 혼자 살기에는 꽤나 넓은 공간의 오피스텔이었는데, 전체 높이가 약 4미터에 가깝고, 위층도 상당히 넓어 복층이라기보다는 2층에 가까운 구조로 되어 있어서 오디오를 천장이 그대로 보이는 창문 쪽에 설치했다. 이곳으로 이사한 후 사운드 측면에서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었는데, 잃은 것은 이웃 때문에 큰 소리로 들을 수 없다는 것이고, 얻은 것은 일부의 곡에서 느꼈던 부밍이 자연스레 해결되었으며 사운드의 무대가 훨씬 넓고 깊어졌다. 소리를 크게 할 수 없었던 아쉬움은 후에 다시 서울의 새로운 집으로 갈 것이기에 참고 넘기기로 했고, 장점만 즐기기로 했다. 이때 공간이라는 것이 사운드에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주는가를 확실히 경험하는 계기가 되었다. 주변 환경 때문에 주로 듣는 음악 장르에도 변화가 왔는데, 결국 말러와 같은 대편성의 교향곡은 옆집 때문에 감상할 기회는 줄었고, 비교적 적은 음량에서도 즐길 수 있는 재즈 보컬이나 소편성 실내악을 듣는 횟수가 점점 늘어났다. 사실 그토록 아끼고 만족하며 듣던 다인오디오 컨투어 1.3 SE도 단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어서 피아노 사운드 표현에 약간의 아쉬움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낮에 눈치를 보며 용기를 내 소리를 조금 올리고 듣던 리히터의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은 이전 집에서 듣던 것에 비해 다른 피아노로 연주하는 것 같은 착각이 생길정도로 감동적이었다. 특히 여성 보컬에서 넓어진 무대감과 함께 농염함은 더욱 진해져 최고였던 기억이 있다.
이후 계획대로 다시 서울로 돌아와 마땅한 집을 찾았는데, 찾질 못해 다시 한동안 오피스텔 생활을 하다가 현재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 이 시기에 현재 시스템을 완성하게 되었다. 서울로 온 후 얻은 오피스텔은 비싼 임대료와 관리비를 각오하고 한 가지 커다란 장점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는데, 바로 특이한 환경 때문에 늦은 밤에도 커다란 음량으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방의 4면 중 2면은 이웃과 접하지 않는 복도였고, 나머지 2면은 건물 외부였기 때문에 적어도 같은 층에 있는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았다. 그리고 운 좋게도 위층과 아래층을 사무실 용도로 사용해 저녁에는 모두 퇴근해 그야말로 사운드 면에서는 완전하게 독립된 구조였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이웃의 눈치를 안 보고 큰 소리로 카라얀의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 2악장 알레그로와 같은 폭풍같이 몰아치는 곡도 부담 없이 제대로 감상할 수 있었고, 저역을 한계까지 몰아붙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차츰 다인오디오 컨투어 1.3 SE보다 대편성곡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스피커를 찾게 되었고, 서브시스템의 존재 가치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내 눈과 귀를 사로잡은 스피커를 만나게 되었다. 윌슨 베네시 디스커버리라는 모델로 그 특이한 외모와 외관을 무시한 강력한 저역에 매료되어 자금 확보를 이유로 그렇게 아끼던 대부분의 시스템을 내놓고 업그레이드를 단행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스템이 단순해져 공간적 여유가 생긴 점도 마음에 들었다. 디스커버리 스피커를 구입했을 때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시스템에 연결해서 들어본 첫 소감은 역시 명불허전이란 느낌이었다. 이전에 아꼈던 다인오디오도 북셀프 스피커치고는 저역이 약하지 않았지만, 역시 스케일의 차이는 비교 대상이 아니었고, 그 생김새 또한 적어도 내게는 대단한 만족을 줬다. 윌슨 베네시 디스커버리를 시스템에 연결하고 그 외모 때문에 제일 처음으로 들어본 것이 류스케 누마지리와 일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스타워즈 새로운 희망 : 쓰론 룸 & 엔드 타이틀(존 윌리엄스)’로 섬세하면서도 드라마틱하고 박력 있는 스케일을 보여줘 앞으로 나에게 새로운 오디오의 세계가 열림을 암시하는 느낌을 받았고, 이후 시스템은 급격히 변화하게 되었다.

이 스피커의 소리를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 전제적인 업그레이드를 계획하게 되었다. 그 변화의 시작은 CD 플레이어와 프리앰프였다. 국내에 소량이 들어와 있던 MC RCD1이란 CD 플레이어는 mbl의 1431과 외관만 조금 다른 제품으로, 더욱 두터워지고 힘이 붙은 소리를 들려주었는데, CD 플레이어 교체로 인한 소리의 차이가 너무 커서 조금 놀랐다. 이후 아이스 파워의 다소 차가운 음색에 온기를 주기 위해 프리앰프를 찾던 중 예전에 지인에게 잠시 빌려서 들어 보았던 BAT VK-30의 좋은 소리가 기억이나 오디오 리서치의 LS16 MK2를 들여왔다. 하지만 디스커버리의 성능을 모두 끌어내지 못한 느낌에 결국 파워 앰프를 교체하게 되었고,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오푸스 파워 앰프를 들여오게 되었다. 소리는 역시 예상했던 대로 대단한 느낌을 받기에 충분했지만, 프리앰프와의 매칭이 아쉽다는 생각에 다시 업그레이드를 단행하게 되었다. 마침 지인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던 어쿠스틱 아츠의 프리1 MK3라는 제품을 구입했는데, 오푸스 파워 앰프와 최고의 매칭을 보여줬다. 스피커의 스케일은 더욱 커졌고, 저역은 더욱 아래로 떨어져서 소리를 온몸으로 느낀다는 어느 카피 문구가 떠올랐다.
당시 하이엔드 유저인 몇몇 지인의 오디오 시스템 소리를 내 시스템과 비교해 가며 전반적으로 오디오 세팅을 하기 시작했고, 전원장치 및 케이블의 중요성을 점점 크게 느껴 업그레이드를 하게 되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2008년 후반에 구입한 킴버 케이블의 12TC다. 동사의 상급 케이블을 무시하는 음질 특성으로, 한마디로 하극상의 극치를 달리는 케이블이라는 느낌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고, 당시 같이 구입한 모든 분들 역시 상당히 만족했다. 당분간 업그레이드란 단어를 적어도 스피커 케이블에서는 안 해도 됐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그동안 크게 투자하지 않았던 오디오 랙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결국 쿼드라스파이어의 Q4L이란 4단짜리 랙을 구입했고,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시스템으로 한동안 많은 음악을 들어보며 한계점과 가능성을 체크했다. 전반적인 소리의 문제점이 역시 다소 날카로운 고역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문제점은 스피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때는 예전 사용했던 다인오디오의 농염하고 아름답게 착색된 소리가 그리웠는데, 결국 그 그리움과 디스커버리 스피커의 장점을 모두 들려줄 스피커를 찾게 되었다. 하지만 높은 기대치를 만족시켜줄 스피커는 내 주머니 사정을 조롱하는 듯했고, 많은 방황을 하다가 결국 지인의 도움으로 찾게 된 것이 지금도 만족하며 듣고 있는 어센도 C7이란 특이한 스피커다. 이 스피커는 플로어 스탠딩 타입으로 전면에 동축 구조의 고음과 중음용 유닛이 있고, 켜고 끌 수 있는 슈퍼 트위터가 하나 더 경사진 뒷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내부에 케블라 콘 유닛을 장착한 스피커로 초저역 재생과 음장 표현에 특히 강점이 있다.
이 스피커에 만족할 때쯤 지인의 집에서 오디아의 순 A급으로 동작하는 파워 앰프를 듣게 되었는데, 그 매력에 빠져 오디아 플라이트 50이라는 파워 앰프를 구입했다. 이 파워 앰프와 궁합을 맞추기 위해 얼마 후 오디아의 플라이트 프리앰프로 짝을 맞추게 되었고, 결국에는 CD 플레이어도 오디아 플라이트 CD2로 바꾸게 되었다. 일단 오디아의 제품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장점은 우선 아름다운 외관과 그에 맞는 화려한 음색인데, 이 정도는 이탈리아 제품이라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진짜 놀랐던 것은 막강한 힘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장점들은 동일한 브랜드로 구성된 조합에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최근에 좋은 기회가 있어 들이게 된 틸의 CS3.7 스피커와 패토스의 엔도르핀이라는 CD 플레이어와 비교해도 그 장점이 줄어들지 않는다.
최근에 들여온 틸 CS3.7은 뛰어난 중·고역 표현력과 해상도가 높은 저역 특성을 보여준다. 음질 특성은 광대역의 사운드를 폭발적으로 표현하는 스피커라기보다는 각 악기의 특성을 정확히 표현하며 군더더기가 없는 깨끗한 사운드로 들려주는데, 특히 피아노 소리는 얼마 전에 들어 보았던 이소폰 뉴 카시아노에 못지않은 발군의 표현력을 자랑했고, 어센도 C7과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이 다른 성격의 스피커들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어느 방향으로든) 나만의 사운드를 만들어 가는 가늠쇠 역할을 할 중요한 모델이 될 것 같다. 아마도 최후에 남은 스피커와 비슷한 소리를 재생하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CD 플레이어의 경우는 2조의 스피커들처럼 경합하는 관계는 아니다. 패토스 엔도르핀은 그 사운드와 디자인이 아주 맘에 들었고,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겨 무리해 결심하게 된 경우이다. 그리고 파워 앰프, 프리앰프, 그리고 CD 플레이어를 모두 같은 브랜드로 사용해 좋은 시너지 효과를 경험했지만 너무 일률적인 디자인 때문에 CD 플레이어를 같은 듯 다른 이탈리아 브랜드의 제품을 사용해 미묘한 사운드의 조화도 느껴보고 싶었다. 패토스 엔도르핀은 진공관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대단히 음악성이 있는 소리를 들려주는데, 같은 곡을 들어보면 더 뛰어난 연주자가 연주하는 듯한 착각을 할 정도였다.

요즘 세계적인 불황이 결국 오디오와 음반 업계까지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특히 해외 음반업계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고음질 음반을 없애고 그냥 들어줄 만한 제작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음반만 생산하는 추세로, 이미 절판되었거나 그런 절차에 들어간 데카 레전드 시리즈처럼 재생산을 하지 않는 진짜 전설이 되어버릴 명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오디오 기기보다는 이런 귀한 음반들을 모으는데 주력하고 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음악에 대해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삶이며, 피곤한 삶이며, 유배당한 삶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니체가 음악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생각은 니체가 글로 옮겼을 뿐이지 누구나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음악을 접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는 어머니의 심장 박동 소리로 어머니를 느끼고 교감했다. 세상 밖으로 나와 어른이 되어서 자신을 다스리고 표현하며 사람들과 교감하는데 음악이 차지하는 부분은 (누구에게나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 음악이란 깊이를 알 수 없는 행복이다. 언젠가 음악을 들을 수 없는 날이 오게 되면 그때서야 그 행복 깊이를 알 수 있을까? 음악을 들을 때 나는 이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함을 느끼며 겸손해진다. 음악을 감상하며 그 속에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 인간의 특권이라면 수많은 생명체 중에서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음악을 듣고 있는 지금 그렇게 고마울 수 없다. 지금 나의 삶이 최고가 아닐지 모르겠지만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음악과 오디오가 있어 나는 행복하다. 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동안 내 가슴 속에 흐르는 노래가 있다. 비틀즈의 ‘The Long and Winding Road’란 노래다. 오디오와 함께한 지난 시간이, 아니 앞으로 이어질 그 시간들이 이 노래 제목으로 정의되는 것 같다. ‘The Long and Winding Road~’


▶▶ 사용하는 시스템

스피커 틸 CS3.7, 어센도 C7   프리앰프 오디아 플라이트 프리   파워 앰프 오디아 플라이트 50
CD 플레이어 패토스 엔도르핀, 오디아 플라이트 CD2   트랜스포트 : 마이크로메가 마이크로드라이브
D/A 컨버터 캠브리지 오디오 DacMagic   프론트 스피커 KEF Q5
리어 스피커 스칸디나 마이크로포드 SE   센터 스피커 KEF Q9c   서브우퍼 야마하 YST-SW315
AV 리시버 야마하 RX-V757   프로젝터 옵토마 737
인터커넥터 케이블 PAD 에퀴어스 애니버서리 XLR, 리버맨 바이칼(보치노 XLR 단자 적용), 와이어월드 에퀴녹스 5 XLR, 아틀라스 타이탄 RCA
스피커 케이블 킴버 12TC   전원 케이블 노도스트 시바, PS 오디오 프렐류드 SC
액세서리 HRS 댐핑 플레이트, PS 오디오 주스 바2, 쿼드라스파이어 Q4L 오디오 랙, 필립스 SRU-9600 학습 리모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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