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이촌동
상태바
동부이촌동
  • 월간오디오
  • 승인 2010.02.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병일 씨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깐의 휴식. 그것이 그리도 달콤할 수 없다.

맥주 한 캔을 따고, 한두 시간 남짓의 음악 감상. 짧은 듯하지만, 내게는 참으로 길고도 달콤한 시간. 귓가에 음악이 머무는 순간, 저 멀리 소리의 잔향들이 깊고 찰지게 아스라 진다. 나만을 위한 무대가 요란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심심하지 않게 펼쳐진다. 누군가에는 꿈의 소리를, 또 누군가에는 어딘가 부족한 소리가 매일 반복된다. 결말이 나지 않을 것 같은 음악의 세계, 또 오디오의 세계. 어느 순간부터 난 이 치명적인 세계에 빠져들었다.
오디오에 대한 이력은 사실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2007년. 사실 다른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짧은 이력이다. 하지만 하나만은 자신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구보다 치열했다는 것을…. 지금까지 내 시청실을 거쳐간 시스템만도 그야말로 엄청나다. 10년 이상 바꿔야할 것을 2년 사이에 모두 경험해버린 것 같다.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와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찾기에 정신이 없었던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득하고, 치열했던 기억들이다. 처음에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어느 순간 음악을 그리워 했고, 곧 하이파이 오디오라는 시스템을 들이게 된다. 하지만 누구나 그랬던가. 첫 시작부터 직감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소리에 대한 기준점도 없이, 숍에서 이야기하는 기기를 덜컥 구매해버린 것이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고행이 시작되었다. 늦었지만 부랴부랴 여러 시스템을 교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반복할 때마다, 손해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손해에 비례하여, 조금씩 소리에 대한 이해는 높아져만 갔다. 그나마 위안이다. 오디오 애호가들이 흔히 말하는 수업료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시청실에도 제대로 된 음악이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소리가 잡혀나갈 때마다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단순히 내가 듣고 싶은 소리가 아니라, 남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소리로 서서히 변해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런 것이 오디오의 재미일까. 한동안 듣지 않았던 음반도 꺼내들고, 음악 듣는 시간도 길어져 갔다. 일이 힘들어서 지쳐갈 때, 아늑한 휴식처였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이 곡이 끝나면 다음에는 이 음반을 걸어봐야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밤은 깊어가는데 이러다가는 내일의 일에 지장이 생길 것만 같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어떠랴. 음악이 이렇게 깊어가고, 내 시스템에서도 이렇게 무대가 펼쳐지는데, 좀 피곤하면 어떠랴. 첼로의 깊고, 진득한 여운이 그날따라 그렇게 날 붙잡았나 보다. 

많은 시스템이 내 시청실을 거쳐 갔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모델들이 있다. 다인오디오 스페셜 25주년 모델, 마크 레빈슨 26S 프리앰프, 플리니우스 SA-100 MK2 파워 앰프, 그리고 와디아 20/27 소스기기. 아마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처음으로 마음에 든 소리가 나와 준 시스템이었기에 더욱 기억에 남는다. 처음의 그 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아른거린다. 영원히 잡히지 않을 것만 같았던, 소리가 어느 정도 제 자리를 찾고, 호방하게 주인을 맞아주는 그런 느낌이랄까. 나도 이제 자신감이 붙었다. 그동안 거쳐 갔던 기나긴 악몽들이 서서히 잊혀 갔다. 피아노의 명징한 타건 뒤로 야릇하게 흩날리는 잔향의 여운을 남기듯, 그날의 추억도 잔향처럼 퍼져나갔다. 소리의 추억,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그것보다 소중한 것이 또 어디 있을까.
케이블에 대한 중요성은 짧은 오디오 이력이지만, 꽤 빨리 깨우친 것 같다. 물론 이런 결과를 얻어낸 데에도 수많은 바꿈질이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케이블에 많은 투자를 감행했다. 기억에 남는 케이블로는 단연 노도스트 발할라. 현재 파워 코드만 5개를 활용하고 있을 만큼 이 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높다. 이것 역시 여러 가지 비교 테스트를 거친 후에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나름 자신감도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전원 케이블에 대한 효과이다. 특이하게도 린 LP12에 연결되어 있는 링고(파워 서플라이)에 연결했을 때 가장 크게 체감했다는 것인데, 재미있어서 여러 후배들을 불러모아놓고 비교 테스트했을 정도다. 역시 모두들 가장 큰 변화에 이 링고를 지목했다. 이처럼 오디오는 참으로 재미있는 세계가 아닌가.

최근 아날로그 시스템에 푹 빠져 있다. 현재 린 LP12와 록산 적시스 20+를 함께 운용 중인데, 모양새는 비슷하지만 성향은 완전히 달라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다. 적시스는 보통 다이내믹하고 강렬하게 몰아붙이는 대편성 위주를, LP12는 조금은 예쁘고, 아담하게 들을 수 있는 소편성을 주로 선택한다. 사실 아날로그가 CD보다는 번거로움이 많지만, 같은 음원을 비교해서 듣는다면, 왜 많은 이들이 그렇게 아날로그를 찾는지 조금은 이해가 갈 것이다. 특히 초판의 강렬한 마법을 체험한다면, 그 욕망은 두 배가 될 것을 자신한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CD에 잘 손이 가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아날로그의 중독은 참으로 무섭다는 것을 비교적 빠르게 실감하고 있다. 사실 지금의 아날로그 시스템에도 만족하고는 있지만, 최근 스파이럴 그루브 제품들의 평이 좋아 이쪽에 관심이 잔뜩 쏠려 있다. 도입하기까지는 시간 문제일 것 같지만, 시스템을 들이기 전, 그 갖가지 생각들이 참 재미있다. 과연 어떤 성향일까. 어떤 것과 매칭해야 완벽한 성능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숙제라면 숙제지만, 즐거운 숙제다. 하긴 이런 설렘이 없다면, 오디오도 참 재미없을 것 아닌가.
사실 시청실이 아주 작은 편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소리를 만들기도 상당히 어려운 편. 덕분에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는지도 모른다. 케이블부터 시작해서 음향판 등 많은 연구를 거듭한 끝에야 지금의 소리를 만들 수 있었다. 현재 B&W 다이아몬드 시그너처를 사용하고 있는데, 정말 이 시청실에서는 다른 대안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좋은 소리를 들려준다. 해상력부터 시작해서, 단단한 저음까지, 2웨이 이상의 최상의 소리가 나오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덕분에 볼륨을 꽤 많이 올리는 편이다. 좁은 공간에서도 부밍을 전혀 느낄 수 없기 때문. 아파트 환경에서 이런 호사가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그래서인지 대형 스피커에 대한 꿈은 사실 그리 크지 않다. 작지만 이 정도로 소리를 뽑아내니, 그 어떤 것을 꿈꾼단 말인가. 재미있는 것은 더 큰 공간에서는 더욱 좋은 소리로 맞이한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다음 스피커를 선택하고자 하면, 아마 그리폰의 모조가 될 것 같다. 그리폰만의 그 중독적인 음에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다고 하는데, 그 중독에 한 번 푹 빠져 보고 싶은 바람이다. 특히 내 시청 공간에서의 그리폰 소리가 제법 잘 어울릴 것 같은 예감도 든다.

지금 현재의 다질 앰프는 한 번 방출했지만, 그 소리를 못 잊어 다시 들여온 경우이다. 특히 프리의 포노단이 뛰어난데, 그 다질 특유의 소리는 어떤 시스템도 구현하지 못한 것이 특이하다. 다질의 특색이라고 하면 단연 그 탄탄한 밀도감과 특유의 따스함이다. 자꾸만 생각나게 하는 그런 소리, 그러한 묘한 감흥을 그렇게나 잊을 수 없었나 보다. 현재 황금빛 등불로서의 역할을 묵묵히 소화하고 있는 앰프로서, 현 시스템에서 가장 만족하고 있는 것 중 하나이다. 들을 때마다 참 잘 만든 앰프라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그런 앰프, 그것이 바로 다질이다.
요즘에는 또 하나의 재미가 생겼다. PC 파이가 바로 그것인데, 역시 이 세계도 앞으로 주목할 만한 재미 중의 하나로 손꼽을 만하다. 사실 국내에 수입되고 있는 모든 USB D/A 컨버터들을 써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기에 대한 관심이 아주 큰 편이다. 지금은 dCS 푸치니 u클락을 통한 PC 음원을 듣고 있는데, 이 소리 또한 아주 훌륭하여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요즘에는 린 클라이맥스 DS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곧 LP, CD, PC음원 이 세 가지의 진검승부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여 라도 린 클라이맥스 DS를 통한 소리가 너무 좋으면, 어떤 포맷을 선택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질 것만 같은 막연한 불안감도 든다. 괜한 걱정이겠지 하며, 평소 자주 듣던 바렌보임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꺼내든다. 느릿하게 펼쳐지는 로맨틱한 절규. 오늘따라 옛 향수까지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음악이 음악을 부르고, 다음 소리를 기대하게 하는 묘한 감흥. 포맷 생각은 잠시 잊고, 다음에 걸 베토벤의 로망스를 생각한다. 이번에는 린 LP12에 걸어야겠다. 린만의 그 애절한 현의 촉감을 어떤 기기가 따라갈 수 있을까. 음악을 듣기 전 미소부터 나온다.

음악은 주로 소편성의 클래식을 즐겨 듣는다. 현악 4중주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최근에는 피아노 소나타에 미쳐 그것에만 열중한 적도 있다. 이상하게도 대편성보다는 소편성이 끌린다. 현의 그 야릇하게 흩날리는 마찰감이 좋고, 피아노의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잔향이 그렇게 좋다. 그리고 소편성을 들을 때, 휴식다운 휴식을 할 수 있어 좋다. 수십가지의 음색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몇 안 되는, 혹은 연주하는 연주자와 나만 남은, 그 분위기를 즐긴다. 세상에 당신과 나만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칠 정도로, 적막하지만 음악에 곧 그 분위기가 녹아 따스해지는 그런 낭만이 좋다. 현들이 귓가를 자극하며, 애절하게 노래한다. 다음에는 더 좋은 소리로 기약하자,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나의 오디오들도 거기에 질세라 오늘따라 힘차다. 전장 속의 달콤한 휴식이다.


▶▶ 사용하는 시스템

스피커 B&W 시그너처 다이아몬드   프리앰프 다질 NHB-18NS, 에어 KX-R
파워 앰프 다질 NHB-108 모델 1   SACD 플레이어 dCS 푸치니
D/D 컨버터 뮤텍 MC-1.1   턴테이블 록산 적시스 20+, 린 LP-12
톤암 록산 아르테미즈, 린 에코스   카트리지 록산 시라즈, 린 아키바
포노 앰프 다질 NHB-18NS 포노단, 린 린토   스피커 케이블 노도스트 발할라
인터커넥터 케이블 보복스 텍스추라, 오디오퀘스트 아마존, 크리스털 케이블 울트라
전원 케이블 노도스트 발할라, 보복스 텍스추라, 아르젠토 마스터 레퍼런스
전원장치 아이소텍 GII 미니 서브, HB 케이블 디자인 파워슬레이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