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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속에 노는 것으로 인격을 완성한다
제기동 조종섭 씨
글 이종학(Johnny Lee) 2010-03-01 |   지면 발행 ( 2010년 3월호 - 전체 보기 )




“가끔 집사람이 몸에 좋다는 음식을 권하지만, 저는 늘 사양합니다. 음악이 보약이니까요. 언젠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분이 쓴 글을 읽었는데, 행복의 조건을 이렇게 말하더군요. 구체적인 경험을 해야 하고 또 그 경험이 반복적이어야 한다. 제 경우, 음악이 그렇습니다.”

음악을 보약으로 알고, 평생을 즐기며 유유자적 살아오신 분이 계시다. 나이보다 10살쯤 젊어 보일 정도로 활기찬 모습을 보면, 확실히 음악이 보약이라는 그 분의 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워낙 음악뿐 아니라 철학이며 경제며 예술 전반에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분이라, 사실 이번 탐방은 오디오 이야기보다는, 음악 감상이라는 행위의 본질을 탐구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서예가로서 일가를 이룬 분답게 음악과 서예를 연결 짓는 부분에서, 우리의 삶에 참고가 될 만한 부분이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번 탐방의 주인공은 서예가 우원(釪源) 조종섭 씨로, 이 분의 음악과 인생과 오디오 이야기를 담아보기로 하겠다.


Q.우선 우원이라는 호에 쓰인 ‘우’자가 참 특이합니다.
A. 이 글자는 자주 접할 수 없었을 겁니다. 무당이 굿을 하거나, 혹은 스님이 법문을 할 때 흔드는 요령을 뜻하는 것으로, 요령 우자라고 읽습니다.

Q.요령의 근원이라, 뭔가 심오한 뜻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우선 연세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데, 그 비법이 음악이라고 들었습니다.
A. 맞습니다. 음악이 보약이죠. 별다른 기능 식품을 먹지 않아도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Q.음악을 좋아하고, 오디오에 관심이 많은 분들에겐 희소식이 아닐까 싶군요. 우선 간단하게 어린 시절부터 여쭙겠습니다.
A. 저는 동란 전에 경남 하동에서 출생했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까지 쭉 그곳에 있었죠. 그러므로 서울에 사신 분들처럼 음악 환경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부친께서 음악 애호가였으므로, 당시로서는 드물게 축음기를 갖고 계셨습니다. 거기서 나오는 판소리를 들으며 음악에 접근할 수 있었죠.

Q.당시 축음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선택받은 환경이라 여겨지는군요.
A. 지금으로 말하면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을 겁니다. 축음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신기해서 매번 쳐다봤는데, 하루는 부친께서 이러시더군요. 저 안에 작은 난쟁이가 숨어 있는데, 그가 노래하는 거라고요. 정말 저는 그 말을 믿었답니다(웃음). 이후, 50년대 초, 부친이 본격적인 장전축을 도입했으므로, 이때부터 음악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Q.서예가의 길을 걷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A. 원래 중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다 고교에 와서 유도를 배우게 되었죠. 소질이 있었는지, 이것을 갖고 서울에 있는 대학 특기생으로 뽑혔습니다. 졸업 후, 고향에 와서 도장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평범한 체육인의 길을 걸었죠. 그러다 80년대 후반에 커다란 갈림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당시 부산에 계신 서예가 한 분에게 서예를 배우게 되었는데, 여기에 상당히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했죠. 체육인의 길을 가느냐, 새롭게 서예가에 도전하느냐? 저는 개인적으로 체육인으로서 실패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물론 다시 그림을 그리는 일도 생각했지만, 서예 쪽에 더 끌렸습니다. 이래서 본거지를 부산으로 옮기고,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이죠.

Q.아, 그렇군요. 하지만 서예와 유도라?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법도 할 텐데요.
A. 서예를 하다 보니까 운동한 것과 음악이 큰 도움이 되더군요. 사실 서예만 해도 국악처럼 경쟁이 심하고, 족보도 많이 따지고, 입상자는 적은 분야입니다. 여기서 운동하며 익힌 승부 근성이 없었다면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을 겁니다. 하지만 대체로 체육인들을 보면 ‘강(强)’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를 다스리고 토닥거리는 것이 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Q.서예며 운동이며 바쁘게 시간을 사는 분이 언제 또 음악을 즐길 수 있었느냐, 라고 묻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A. 가끔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그럴 땐 논어에 나오는 공자 말씀을 인용합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또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실제로 악보를 읽을 수 있고, 두루두루 지식이 넘치는 분들 중에 음악을 즐겨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음악을 즐기는 길을 계속 추구해왔기 때문에,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벗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Q.어린 시절 이야기를 좀더 하겠습니다. 당시에 축음기를 갖고 있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 아닙니까?
A. 맞습니다. 실제로 동네 전체를 봐도 저희 집에만 축음기가 있었으니까요. 그때 부친께서 소장하고 있던 SP 음반은 아직도 제가 갖고 있답니다. 이후 장전축이 들어오고 나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고교 무렵에는 팝에 열중해서 당시 이른바 빽판이라는 것을 많이 모으기도 했죠. 클래식을 접한 것은 대학 관계로 서울에 오면서부터입니다. 당시 KBS FM의 <희망 음악>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매일 밤 9시에 방송되었죠. 저는 이것을 절대로 놓치지 않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곡명이 나오면 꼭 메모했다가 나중에 레코드점에서 구입했죠. 이런 식으로 지식을 쌓아가면서 음반을 모았습니다.


▲ 1 & 2 불을 꺼놓고 음악을 들으면 은은하게 불빛이 비치는 모습이 정말로 멋진 매킨토시 C46 프리앰프와 MC1201 파워 앰프. 3 부드럽고 뉘앙스가 좋아서 최근에 자주 듣고 있는 자디스 DA88S 인티앰프. 4 시스템의 중심이며, 클래식부터 모든 장르를 두루두루 잘 울려서 좋은 ATC SCM 100 애니버서리 스피커.

Q.본격적으로 오디오를 들인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A. 1973년도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20대 초 무렵인데, 하동에 체육관을 오픈하면서 함께 오디오를 설치한 것이죠. 비록 국산 제품이었지만, 아침마다 동네가 떠나갈 정도로 크게 클래식을 틀었습니다. 사실 하동만 해도 꽤 시골이었으므로, 오디오 관련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70년대 내내 국산 제품으로 업그레이드를 했죠. 에로이카, 인켈… 그래도 어떤 제품이든 최고만 샀습니다. 그러다 80년대에 부산에 오면서 수입 오디오에 눈을 뜬 것입니다. 그 결과 보스 901, 마란츠 2330B 리시버, 그리고 토렌스 턴테이블을 손에 넣게 됩니다.

Q.참 대단한 변화라고 보입니다. 이때 뭔가 음이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으셨나요?
A. 저는 흔히 오디오 애호가들이 이야기하는 음질에 그리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소리만 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부산 시절에 많은 분들이 오디오의 해악에 대해 경고한 바도 있어서 늘 조심한 탓도 있습니다(웃음).

Q.미리 예방 주사를 맞으셨군요.
A. 여담이지만, 서양 철학사를 보면 의외로 음악에 대해 이야기한 경우가 드뭅니다. 반면 공자는 음악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죠. 한때 소라는 음악을 듣고 3일간 식음을 전폐한 일도 있습니다. 그 음악이 어떤 건지 지금 전해지지는 않지만 궁금하지 않습니까? 그는 인간의 완성을 유예라고 해서, 예술 속에 노니는 것을 꼽았습니다. 즉, 음악으로 인격을 완성하는 것으로 본 것이죠. 사실 공자는 많은 나라를 다니면서, 그 나라의 음악을 듣고 그 미래를 짐작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음악이 심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본 것이죠.

Q.음악으로 그 나라의 미래를 짐작한다는 말에는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제 경우, 어느 나라를 가건 레코드점을 방문하고, FM 음악 프로를 들어봅니다. 그럼 그 나라의 수준이 자연스럽게 짐작이 가죠.
A. 예전에 진주에 있을 때 일인데, 도장 부근에 두 개의 음악 다방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전원 다방이라고 해서 주로 클래식을 틀었고, 또 하나는 곰 다방이라고 해서 주로 팝을 틀었습니다. 전자에 가보면 학생들이 많았는데, 남학생의 경우 80%가 안경을 썼습니다. 얼굴을 보면 모두 순했죠. 손으로 지휘를 하거나 음악에 몰두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여학생들은 모두 독서를 했고요. 반면 후자에 가면, 좀 껄렁껄렁한 친구들이 장발에다 담배 피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이 보였습니다.

Q.아무튼 보스와 마란츠 세트는 오랜 기간 벗이 되어주었군요.
A. 그렇죠. 이 세트는 지금도 부산에 있는 집에 보관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중간에 JBL L100을 들여서 바꿔가며 듣기도 했지만, 결국 901을 선택했죠. 한 20년 이상은 이 시스템으로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약 3년 전쯤에 우연한 계기로 결국 오디오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 1 금빛 찬란한 어큐페이즈 DP-100 & DC-101 SACD 플레이어. 2 자디스와 매킨토시 앰프를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게 도와주는 오디오랜드 PW-1550C 실렉터.

Q.피하려고 해도 결국 운명처럼 오디오 바꿈질에 이르게 되었군요.
A. 아는 검사장 한 분께서 제게 선물을 했습니다. 덴마크의 LC 오디오에서 나온 사파이어라는 승압 트랜스에다가 데논 103R이라는 카트리지를 준 겁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파고든 것이죠. 이 분의 가이드 덕분에 사실은 상당히 편하게 업그레이드를 했다고 봅니다. 처음에는 ATC 40 스피커에 매킨토시 MC500과 C40 세트를 들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CD 플레이어도 지금까지 쓰고 있는 아큐페이즈를 들였고요.

Q.상당한 변화군요.
A. 그렇죠. 특히 1년 사이에 교체가 심해서, 매킨토시의 경우, 파워 앰프만 MC500에서 MC501 이어서 MC1201로 바꿨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500과 501은 큰 차이가 없었던 것 같고, 1201에서 상당한 변화를 느꼈습니다. 그러다 보니 스피커가 상대적으로 약해서 결국 ATC 100 애니버서리로 올렸습니다.

Q.ATC와 매킨토시에 대한 충성도라고 할까, 믿음이 상당한 것 같습니다.
A. ATC는 클래식부터 모든 장르를 두루두루 잘 울려서 좋고, 매킨토시는 개인적으로 사연이 있어서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Q.그 사연이 궁금합니다.
A. 부산에서 지낼 무렵, 병원장 한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유도를 가르치는 대신, 그 분이 서예를 지도하는 만남이었죠. 그때 그 분이 쓰던 것이 매킨토시 제품이었습니다. 당시 상당한 바꿈질을 경험한 끝에, 그래도 매킨토시만한 게 없더라, 하는 말씀이 늘 뇌리에 남았습니다. 실제로 밤에 불을 꺼놓고 음악을 들으면 은은하게 불빛이 비치는 모습이 정말로 멋지지 않습니까.


▲ 1 소니 WV-H4 비디오카세트 레코더. 2 파이오니아 CLD-S260 CD & CDV & LD 플레이어. 3 파이오니아 DVL-919 DVD & LD 플레이어. 4 파이오니아 DV-AX10 DVD 플레이어. 5 파이오니아 PDR-D5 CD 레코더. 6 소니 JA33ES MD 레코더.

Q.자디스는 최근에 들인 모양이군요.
A. 네. 매킨토시의 대출력, 강한 소리에 젖어 있다가, 아는 숍의 충고로 한 번 들였습니다. 제 스피커를 구동하는 데에는 문제가 좀 있지만, 그런 대로 부드럽고 또 뉘앙스도 좋아서 최근에 자주 듣고 있습니다.

Q.그간 클래식을 주로 들었다고 해도 세월에 따라 듣는 취향이 좀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A. 20대 무렵에는 관현악을 즐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30대에는 오페라를 많이 들었고, 40대에는 바흐에 몰두했죠. 그리고 50대 이후에는 주로 실내악을 듣게 됩니다. 특히 작품 활동을 할 땐 현악 4중주나 피아노 트리오 등이 큰 도움이 되죠.

Q.그러고 보면 서예와 음악에는 뭔가 통하는 구석이 있을 듯싶군요.
A. 제가 서예하는 분들을 만나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명나라 시대 최고의 서예가였던 동기창에 따르면, 진정한 서예의 대가는 서(書) 밖에서 이뤄진다, 라고 합니다. 서예의 대가가 되려면, 서예뿐 아니라 철학, 음악 등에도 조예가 깊어야 하고 또 여행도 많이 다녀야 합니다. 이런 여러 경험을 하면서 자신을 풍성하게 가꿔야 하죠. 하지만 대개 서예면 서예, 학문이면 학문 모두 자기 분야밖에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 1 토렌스 TD520 턴테이블은 SME 3012R 톤암과 데논 DL-103R 카트리지를 매칭하고 있다. 2 클리어오디오 챔피언 2 턴테이블. 클리어오디오의 9인치 유니파이 톤암과 라이라 도리안 카트리지가 연결되어 있다.

Q.서가에 철학책이 많아서 좀 의아했는데, 이제 좀 이해가 되는군요.
A. 플라톤이 <국가>에서 전인(全人)이 되는 방법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첫째, 아이가 태어나면 음악을 가르쳐라. 정서가 안정되고,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단, 너무 부드러워지는 단점은 있다. 그러므로 둘째, 스포츠를 가르쳐라. 그럼 강과 유를 겸비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셋째, 학문과 철학을 가르쳐라. 건강한 신체와 유연한 사고를 갖춘 다음에야 공부를 하라는 이야기죠. 철학이란 학문은 처음 배우면 강아지가 이빨 날 때 아무 거나 마구 물듯이 논쟁을 좋아합니다. 그러다 대개 40대가 되면 현실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죠. 여기저기에서 깨지고, 다치고 합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이 한 말이 있습니다. 머리는 구름에, 발은 대지 위에. 이제 50대 정도가 되면 상처받은 부위에 새 살이 돋으면서 나름대로 자기 철학이 꽃피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정치를 맡기는 겁니다. 플라톤이 말한 철인 정치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Q.그 말씀을 들으니 우리 현실을 생각하게 되고, 제 자신도 많이 반성이 됩니다.
A. 사실 서예와 음악은 통하는 구석이 많습니다. 서예는 조금만 마음이 흐트러지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붓끝이 떨려서 도저히 쓸 수가 없습니다. 정서적으로 차분해야 가능한 것이죠. 서예를 할 때엔 강함과 부드러움이 교차하고, 깊이와 옅음을 이용합니다. 이 부분이 음악을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물론 차이도 있죠. 음악이란 음률을 들으며 침착해져서 스트레스를 푸는 장르입니다. 일종의 약리 효과가 있다고 하겠죠. 서예는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글 자체가 가진 의미가 역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여러 생각을 하게 합니다.

Q.직접 써보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겠군요.
A. 당연하죠. 약간이라도 쓸 수 있다면 정서적으로 상당한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예술 장르도 마찬가지지만, 서예 역시 일정한 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명필이라고 해서 글 잘 쓰는 단계를 칭하고, 이 단계가 높아지면 신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우필, 여기서 우는 바보 ‘우’를 말합니다. 그저 아무 거리낌 없이 손이 가는 대로 쓰는 경지를 뜻합니다. 베토벤을 보면, 말기 작품이 그랬습니다. 라주모프스키와 같은 음악을 들어보면 뭐랄까, 운명을 달관한 경지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이 우주 속에 동화되어 주어진 대로 사는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바흐의 푸가의 기법이나 음악의 헌정을 들어보면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 1 EAR 834P 포노 앰프. 2 LC 오디오의 사파이어 포노 앰프.


Q.하긴 엘 그레코나 미켈란젤로의 말기 작품을 보면 그런 느낌이 묻어납니다. 잘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일체 접고, 그저 붓이 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그린 듯한 그림 말이죠.
A.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보세요. 아무 꾸밈없이 그렸죠. 마치 아이가 그린 듯. 니체의 초인 사상이란 게 바로 이것입니다. 우필의 경지라 할까요? 초인이라고 해서 강한 것만 생각하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Q.앞으로 오디오 쪽에 업그레이드 계획이 있으면 알려주시죠.
A. 그렇잖아도 한 세트 정도 더 들여놓을 생각입니다. 벽에 있는 서가를 치워내서 공간을 만들면 탄노이 웨스트민스터 로열을 넣을 수 있습니다. 저는 현을 좋아하기에 탄노이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죠. 여기에 그리폰을 연결해서 들을 생각입니다. 물론 지금 시스템은 그대로 놔두고요.

Q.탄노이가 들어오면 한 번 더 방문해서 음악도 듣고, 귀한 말씀도 더 들어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시죠.
A. 피타고라스는 천재가 음악을 들을 땐, 천체 음악을 듣는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천체 음악이란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진리와 원리 같은 것과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즉, 최고 인격자는 제대로 된 음악을 즐기면서, 인생 전체를 하나의 예술품으로 가꿔나갑니다. 그러므로 오디오도 중요하지만, 음악에 좀더 몰두해서 인생을 풍부하게 했으면 싶군요.

Q.워낙 좋은 말씀을 많이 들어 이 짧은 지면에 모두 싣지 못한 점이 안타깝군요. 아무튼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합니다.
A. 감사합니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시스템 소개와는 차원이 다른, 훨씬 방대하고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한순간 방문 목적을 잃을 뻔도 했다. 처음에는 본 연재에 소개되기를 극구 사양했지만, 아무래도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음악에 대한 중요성이나 즐거움을 알리고자 나오셨다고 한다. 그 의도가 이 글에 충분히 담겨있을지 걱정스럽다.
한편 시스템을 살펴보면, ATC 100 애니버서리가 중심이 되어, 매킨토시와 자디스를 교대로 물려듣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실렉터를 도입했는데, 오디오랜드의 특주로, 일체 내부에 배선재를 쓰지 않은, 순전한 릴레이 방식의 제품이었다. 덕분에 진공관 앰프도 얼마든지 연결해서 들을 수 있다.
처음에는 매킨토시 세트로 토렌스 턴테이블을 이용, LP를 들었다. 그 중 카라얀이 연주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3, 4악장이 인상적이었는데, 1200W로 ATC를 완벽하게 움켜쥐고 대편성을 술술 풀어내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단, 절대로 우악스럽거나 거친 음이 아니었다. 과연 최신 ATC의 진화한 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점이 좋았다. 특히 현의 질감이 상당히 풍부해서 놀랐다. 운명이라는 괴물과 맞서는 인간의 처절한 투쟁이 낱낱이 재현된 음이 아니었나 싶다.
이어서 아큐페이즈 CD 플레이어를 이용해서 자디스와 ATC 세트를 들었는데, 저역의 구동에는 다소 무리가 따랐지만, 중고역의 풍부한 뉘앙스와 아름다움은 상당히 매료될 만한 부분이 있었다. 랑랑과 마이스키 등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의 엘레지 트리오는 개인적으로 리뷰용으로 쓰는 음반이라 유심히 들었는데, 첼로의 그윽한 향기나 피아노의 영롱한 울림 등, 이런 조합으로 상상하기 힘든 깊은 맛이 우러나왔다.
사실 음질에는 그리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좋아하는 제품을 골랐다고 하지만, 음을 들어보면 역시 오랫동안 클래식을 즐긴 분다운 내공이 있었다. 향후, 탄노이와 그리폰의 조합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적잖이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 사용하는 시스템
스피커 ATC SCM 100 애니버서리, B&W DM303   프리앰프 매킨토시 C46
파워 앰프 매킨토시 MC1201   인티앰프 자디스 DA88S   CD 리시버 마란츠 CR401
SACD 트랜스포트 어큐페이즈 DP-100   D/A 컨버터 어큐페이즈 DC-101
CD 레코더 파이오니아 PDR-D5   DVD 플레이어 파이오니아 DV-AX10
DVD & LD 플레이어 파이오니아 DVL-919   CD & CDV & LD 플레이어 파이오니아 CLD-S260
MD 레코더 소니 JA33ES   카세트 데크 티악 V-1050   비디오카세트 레코더 소니 WV-H4
턴테이블 클리어오디오 챔피언 2, 토렌스 TD520   톤암 클리어오디오 유니파이 9인치, SME 3012R
카트리지 데논 DL-103R, 라이라 도리안   포노 앰프 EAR 834P, LC 오디오 사파이어
액세서리 오디오랜드 PW-1550C 실렉터

<Monthly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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