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은 내 인생의 변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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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내 인생의 변주곡
  • 이종학(Johnny Lee)
  • 승인 2010.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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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륜동 윤미숙 씨

지난 번 애호가 탐방에서 참 좋은 말씀을 많이 들었는데, 그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공자의 가르침이었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한다’ 돌이켜 보면 음악이다, 오디오다,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 책도 읽고, 소리도 찾고 했지만, 과연 내 자신이 얼마나 이들을 즐겼는가 캐묻는다면 아직 자신이 없다. 오히려 공부할 시간을 줄이고 아무 음반이나 닥치는 대로 듣는 데에 더 몰두했다면, 그간의 시간이 더 유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런 차에 만난 윤미숙 씨는, 여류 음악 애호가이자 오디오파일이라는 흔치 않은 존재로 인상적이지만, 초두에 밝힌 ‘음악을 즐긴다’라는 차원에서는 여러모로 귀감이 될 만한 분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자신이 좋아한 음악에 대해 쓴 글을 담은 <클래식 인생 변주곡>이라는 책도 발간했으므로, 본 인터뷰를 읽은 후 관심이 간다면 구입해볼 만하다.
참고로 이 책을 보면, 홍콩에 발령이 난 남편을 만나기 위해 임신 상태로 비행기를 탔다가 유산한 대목이 나온다. 이런 충격 속에서 낯선 객지 생활을 하느라 방황하던 이 분을 구원한 것은 남편이 선물한 CD 카세트였다. 이 작은 기기로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면서 심신을 추스르고 생에 대한 의욕을 회복한 대목은 단순한 감동을 넘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음악 서적에 인생이라는 단어를 심은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은가?

" 제가 좋아하는 소리는 박력이 넘치고, 대편성을 잘 소화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말러를 좋아하니까요. 그래서 크렐, 다인오디오, 와디아 등 모두 남성적 스타일의 브랜드를 고른 것이죠. "

우선 어린 시절 음악에 얽힌 추억부터 듣고 싶습니다.
저는 농사짓는 시골에서 태어났어요. 당연히 음악을 들을 환경은 못 되었죠. 기껏해야 라디오나 전축을 가끔 접했나요? 그냥 저런 음악이 있구나 하는 정도였죠.

본격적으로 음악을 접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입니까?
여고에 진학해서 광주에 오게 되면서입니다. 이때 친구가 피아노를 전공했는데, 처음엔 잘 몰랐어요. 그런 어느 날, 여고 2학년 때라고 기억하는데, 학교 강당에서 작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제 친구가 무대에 올라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거예요. 그 모습에 완전히 매료되어 나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가난한 농사꾼의 딸 처지에 어떻게 정식으로 음악을 배우겠어요? 그래서 듣는 쪽으로 가게 된 거죠.

당시에는 음악을 어떻게 들었는지 궁금합니다.
특별난 기기를 소유할 수가 없었죠. 그냥 음악 숙제를 내주거나 하면 알아서 찾아 들어야 했습니다. 단, 방송반이 있어서 여기서 가끔씩 들었습니다. 당시 학교에서는 청소 시간만 되면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이 나왔어요. 음악 선생님이 무슨 생각으로 이 곡을 선곡했는지 모르지만,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 제 친구한테 방과후에 피아노 배운 일도 생각나는군요. 그때엔 악기로 음악 시험을 봤으므로, 그 애한테 바이엘을 배워서 시험도 봤죠. 별로 소질이 없는지, 진도는 잘 못 나갔어요(웃음).

그리고 대학 시절이 시작되죠?
네. 그 즈음엔 자취를 했는데, 작은 컴포넌트가 있었어요. 주로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애청했죠. 물론 팝이나 가요를 주로 틀어서 듣고 싶은 클래식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꽤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요?
결혼하면서입니다. 카라얀이 제 중매쟁이였어요.

예? 카라얀이요?
거기엔 사연이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85년도에 교직에 발령 받아 학교에 나갈 즈음이었습니다. 아는 분에게 소개를 받아 남자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카라얀이 내한 공연을 가졌는데, 아무리 싼 티켓이라고 해도 3만원이 넘었어요. 제 월급이 10만원쯤이었으니까 상당한 가격이었죠. 그리고 그마저도 매진이 되어 구할 수 없었어요. 소개받는 자리에서 아마 제가 그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에요. 얼마 후, 그 분에게 연락이 와서 나갔더니 떡 하니 봉투를 내밀더라고요. 안을 보니까 S석 티켓이 두 장 들어 있었습니다. 한 장에 12만원짜리 티켓이었어요! 그 분이 아예 월급이니 뭐니 다 털어서 사온 거였죠. 이에 감동을 받아 결국 결혼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럼 남편 분도 음악을 좋아하는 모양이죠?
속았어요. 전혀 무취미해요. 그때만 해도 잘 몰랐죠. 카라얀을 볼 때 브람스 교향곡 1번이 나오는데 1악장 내내 자는 거예요. 그냥 피곤한 모양이구나 생각했죠(웃음). 아무튼 만난 지 4개월만에 결혼했으니까 이런 부분을 알 도리가 있었겠어요?

오디오 시스템도 이즈음에 본격적으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까?
신혼 초 무렵이었는데, 남편이 회사 일로 쿠웨이트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결혼 선물로 무조건 마란츠 컴포넌트를 사와라. 제 태도가 워낙 강경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스피커며 턴테이블이 달린 세트를 구해왔는데, 당시 몇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고가였습니다. 어쨌든 이 제품으로 한동안 만족스럽게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일반적인 오디오 애호가들과 반대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군요. 이후 계속 기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결혼하고 3년이 지나서 홍콩 지사에 남편이 발령을 받았습니다. 이래서 처음으로 외국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이 시절부터 음악과 오디오에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완차이라는 지역에 오디오 숍과 음반점이 몰려 있었으므로, 틈만 나면 이 지역을 돌아다녔습니다. 하긴 친구도 별로 없고, 다른 취미도 없었으니 이쪽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죠. 그 당시 주재원들을 방문해보면 천편일률적으로 스피커는 탄노이 스털링, 앰프는 쿼드 6 시리즈, 턴테이블은 토렌스 320이라는 조합이었습니다. 막상 들어보면 뭔가 답답했어요. 저는 여성이지만 탁 트인 시원시원한 음을 좋아하거든요. 결국 앰프만 뮤지컬 피델리티 A100으로 했죠. 제 귀에는 이 앰프가 더 나았거든요.

스털링~A100~토렌스의 라인업이라. 당시만 해도 모두 부러워할 시스템이군요.
시스템이 갖춰졌으므로, 본격적으로 음반을 구하는 데에 몰두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홍콩의 물가가 우리보다 쌌던 것 같아요. CD만 해도 한국에서는 1만5천원 받을 때 홍콩에선 반값을 받았거든요.

그때만 해도 환율이 좋았죠. 약 1대 80정도 했으니까요. 지금은 150정도 하니까 거의 두 배가 오른 셈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에도 저는 무슨 곡을 찾아 들으면 됐지, 연주가 어떻고, 명반이 뭐고 하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어요. 당시 단골 레코드 숍이 있었는데, 좀 퉁퉁한 아줌마가 점원으로 있었죠. 그 분이 저에게 참 친절하게 잘 해주셨어요. 그래서 무슨 무슨 세일이다 하면 꼭 연락을 줬죠. 음반도 많이 추천해줬고요. 지금 와서 보니 LP 같은 경우 상당히 고가에 해당하는 초반도 꽤 있습니다. 모두 그 분 덕분이죠. 또 카라얀만 보이면 무조건 샀습니다. 제게 얽힌 추억도 있는 데다가, 눈을 감고 지휘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멋있어서 신보가 보이면 무조건 집었습니다. 솔티도 좋아했고요.

오디오 쪽도 재미있는 일이 많았을 텐데요.
뭔가 궁금한 게 많았습니다. 그래서 매달 <스테레오파일>을 구독해보고, 또 거기서 좋다고 하는 MC 카트리지나 케이블을 구하러 오디오 숍에 달려가곤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마크 레빈슨 하면 알아줄 때니까, 그냥 그림만 보고 반해서 매일 마크 레빈슨, 마크 레빈슨, 하고 마음 졸였던 기억이 납니다.

여성 혼자 오디오 숍을 방문하면 좀 이상하게 쳐다보지는 않았습니까?
다들 놀랬죠. 게다가 잡지까지 가져가서 짧은 영어로 이런 물건 구해달라고 하니 신기하지 않았겠어요? 그러다 바가지도 좀 썼던 것 같아요.

홍콩 생활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LD에 얽힌 기억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연주자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너무 좋았습니다. 또 홍콩에선 보통 CD 두 장 값이면 LD 한 장을 살 수 있어서 한동안 몰두했습니다. 번스타인이 말러 교향곡 2번을 지휘하는 모습이나 카레라스와 발차가 나왔던 <카르멘>을 보고는 넋을 잃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오디오다 CD다, LP다, 또 LD다, 이런 취미를 남편께서 이해해 주셨습니까?
처음에는 싸움도 많이 했죠. 하지만 저는 그밖에 다른 부분에선 일절 사치하지 않아요. 나중에는 남편도 이해를 하고 눈감아 줬습니다.

홍콩에서 몇 년 보내고, 그 다음에 필리핀에 가셨다고 했죠? 아무래도 음악이나 오디오를 즐기기엔 환경이 따라주지 않았을 텐데요….
아마 노후에 갔으면 참 좋은 곳이라고 생각해요. 인건비가 싸니까 집에는 늘 메이드며 운전사가 있고, 하는 일이라고는 수영이며 골프며… 하지만 당시에는 젊을 때였으니, 이런 환경이 맞을 리 없었죠. 마닐라에서 살았는데,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어요. 제가 사는 빌라 위층에 중년 여성이 한 분 살고 있었는데, 오다가다 친해지게 되었죠. 나중에 귀국해서 여성 잡지를 보니까 그 분이 나왔더라고요. 알고 보니, 라모스 대통령과 관련된 분이더라고요. 이른바 실세였던 거죠. 미리 알았더라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지 않았겠어요? (웃음) 아무튼 그 분이 주선해서 도밍고가 공연을 왔어요. 물론 저한테 티켓을 줘서 잘 감상할 수 있었지만요.

언제 귀국하셨죠?
94년에 귀국해서, 95년에 복직했어요. 다시 한국에 오니까 오디오에 대한 열기가 샘솟더군요. 결국 장기적인 계획을 짜고 적금을 들기 시작했어요. 드디어 2005년, 적금을 타고, 의기양양해져서 용산 전자랜드에 갔어요. 물론 처음에는 문전 박대 비슷한 것을 당했어요. 아무래도 여성 혼자 이런 숍을 와서 이것저것 캐물으니 반길 리 없었죠. 너무 속이 상해서 그날은 그냥 돌아왔던 기억이 나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평론가 한 분에게 전화를 했어요. 당시 오디오에 관한 단행본을 내서 서점가에 이목을 끌었던 분이거든요. 그랬더니 상담 중에 소스가 제일 중요하다는 말씀을 하더군요. 저는 스피커나 파워 앰프가 제일 중요한 줄 알았는데, 소스 이야기를 하니 처음엔 놀랐어요. 지금은 충분히 이해하지만요. 그래서 그분 추천으로 아큐페이즈 D75도 알게 되고, 매킨토시도 들어보게 되었어요. 하지만 제가 찾는 소리하고는 좀 거리가 있었어요.

본격적인 고행의 길에 들어선 셈이군요.
그렇죠. 그러다가 우연히 K전자에 들렀더니, 사장분께서 깜짝 놀라시더군요. 진짜 제가 혼자 오디오 사러 왔냐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다 잠시 생각하시더니 용산의 어느 오디오숍을 소개해줬어요. 그곳 K사장님이 여성분이니까요. 이래서 이 숍과 인연을 맺어 새로 개비하게 되었죠.

그때 라인업을 소개해주시죠.
우선 스피커는 다인오디오의 25주년 기념작이고요, 크렐 250을 파워로 했고, 와디아 16을 소스로 했죠. 프리는 당연히 마크 레빈슨이었죠. 아직도 홍콩에서 각인된 로망을 갖고 있으니까요. 바로 26S. 턴테이블은 몇 차례 교환 끝에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테크닉스 SP 10에 단단한 베이스를 짜서 모노와 스테레오용 암 두 개를 달아 쓰고 있습니다.

처음 들어왔을 때 당연히 감격했겠죠?
그럼요. 한데 제가 좋아하는 소리는 박력이 넘치고, 대편성을 잘 소화해야 합니다. 아무래도 말러를 좋아하니까요. 그래서 크렐, 다인오디오, 와디아 등 모두 남성적 스타일의 브랜드를 고른 것이죠. 하긴 이렇게 모아놓으니까 약간 금속성 소리도 나더군요. 이즈음 P이사라는 분을 알게 되요. 이 분이 워낙 튜닝을 잘하고 또 매칭에도 도사라서, 결국 제 사부가 되어 도움을 많이 줬습니다. 사실 다인오디오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2웨이 아닙니까? 제가 바라는 소리와는 약간 거리가 있었습니다. 결국 P이사의 소개로 지금의 PMC OB1이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매칭을 위해 패스 X250도 구입했고요.

주변에 노련한 오디오 전문가가 있다는 것은 상당히 축복 받은 환경입니다.
사실 전 지금 소리에 아무 불만이 없어요. OB1만 해도 상당히 울리기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금은 한참 길이 들어서 정말로 농익은 소리를 내주거든요.

그리고 보니 CD 플레이어가 소니의 SCD-1이군요.
와디아 16의 소리를 좋아했는데, 그만 SACD를 듣겠다는 욕심에 교체하고 말았죠. 아무래도 초기 버전이라 읽지 못하는 SACD가 좀 됩니다. 실은 와디아 16을 그대로 두고, SACD 전용 플레이어를 하나 더 구하는 편이 나을 뻔했어요. 다음에 업그레이드 하고 싶은 품목인데, 지금은 교직을 떠난 상태라 남편에게 의존해야 하잖아요. 좀 눈치가 보이는군요(웃음).

요 몇 년 정신없이 교체하셨는데, 그 때 느낀 소감이 궁금합니다.
패스로 바꿨을 때엔 결이 훨씬 고급스럽고, 섬세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단, 마크의 프리는 절대로 버리지 않을 기기입니다. 소리결이 예쁘고, 디테일도 좋으면서, 성악과 현에 강점이 있거든요. 스피커는 아무래도 대편성을 좋아하는 터라, 별 불만이 없고요.

특히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면?
말러와 오페라를 좋아해요. 단, 오페라는 꼭 LP로 듣습니다. 사람 목소리만큼은 아직도 LP가 생생하게 전달되니까요.

말러를 좋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처음 들었을 때엔 혼란스러웠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었죠. 하지만 아주 섬세하게 지휘자가 표현해내면 굉장히 슬픈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사는 건 다 혼자 아닌가요? 그 부분이 잘 담겨져 있어요. 내면의 고독을 극한으로 몰고 가는 음악이죠.

말러를 들을 때 추천할 음반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가리지 않고 듣지만, 개리 베르티니, 마이클 틸슨 토머스, 그리고 번스타인을 좋아해요. 번스타인은 19세기 낭만파의 황량하고 쓸쓸한 느낌을 잘 그려내고 있고, 반면에 틸슨 토머스는 상당히 도회적이고 깔끔해서 21세기의 말러라는 인상입니다. 베르티니는 이 중간쯤에 해당하죠.

오페라에서 특히 추천할 만한 작품이 있다면?
모차르트를 참 좋아합니다. 특히 <돈 지오바니>를 들으면, 이 안에 별의별 사람이 다 나옵니다. 심리학 교과서라고 해도 좋아요. 이렇게 다양한 인간의 심성을 잘 드러낸 작품이 또 있을까요? 그래서 지금도 <돈 지오바니>는 보이는 대로 다 사두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고교에서 오랜 기간 윤리를 가르치셨는데, 음악과 연결된 부분이 있을까요?
수업 중에 아이들이 졸면 저는 음악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음악가의 삶이나 오페라의 한 장면을 도입해서 결국 인생 전반에 관한 쪽으로 발전시키죠. 저는 결국 음악이나 삶이나 윤리나 모두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윤리 과목은 입시에서 다루지 않으니 참 아이들이나 저나 편한 마음으로 수업에 임했습니다. 또 오페라 감상회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 즐거움을 가르친 것도 지금 생각하면 보람된 일이었습니다.

참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이번에는 여기서 그쳐야 할 것 같군요.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윤선생님의 리스닝 룸은 다른 애호가들과 좀 다르다. 오디오와 CD와 LP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창가에 멋진 바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차도 마시고, 책도 읽고, 글도 쓴다. 손님이 오면 마주 보고 와인도 마신다. 작은 공간이지만, 이 바 하나로 리스닝 룸의 품격이나 재미가 훨씬 배가되었다. 필자 역시 꼭 이 부분은 그대로 따라하고 싶었다.
소리로 말하면, 정말로 잘 길들여진 시스템이 내는 소리가 어느 수준인가 탄복할 만큼 노련하고 또 아름다웠다. LP로 들은 카레라스의 <사랑의 묘약>을 들으면, 적절한 육질감에 사실적인 감성이 충만해서, 눈을 감으면 그가 표현해내는 뉘앙스나 감정이 그대로 이쪽에 전달되어 온다. 또 다른 가수들의 위치가 정확할 뿐 아니라, 연기하면서 움직이는 모습까지 뚜렷이 그려질 정도로 전망이 좋았다. 참, 오랜 기간 잘 다듬어서 누구나 좋아할 경지로 만든 소리라 하겠다.
CD로는 리카르도 샤이가 연주하는 말러의 교향곡 3번을 들었다. SACD인데, 이 포맷의 장점이 잘 드러난 재생이었다. 위풍당당하게 오케스트라가 등장하는 가운데, 고역을 한없이 치닫는 브라스군이라던가 비통한 현악기의 울림 등, 윤선생님이 말한 말러의 고독과 슬픔이 처절하게 와 닿았다. 결국 집에 와서 말러를 듣고 말았는데, 그만큼 침투력이 좋았다.
사실 좋은 오디오파일은 꼭 비싸고 유명한 상표만 쓰는 분은 아니라고 본다. 일단 손에 들어온 기기는 꼼꼼하게 만지고 또 다듬어서 결국 자기 소리로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본인은 값나가는 기기가 없다며 처음엔 인터뷰를 사양했지만, 이들이 내는 기기의 앙상블과 퀄러티는 여러모로 교훈적이다. 오랜 기간 꿈꿔온 마크 레빈슨을 손에 넣었을 때 과연 어떤 표정이었을까 상상해보면, 오디오파일이란 어떤 면에서 남들이 갖지 못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선택받은 존재라 생각한다.

▶▶ 사용하는 시스템
스피커 PMC OB1   프리앰프 마크 레빈슨 No.26S   파워 앰프 패스 X250
인티앰프 캔우드 L-01A   SACD 플레이어 소니 SCD-1   D/A 컨버터 : 스텔로 DA100
DVD 플레이어 캠브리지 오디오 DVD87   튜너 어큐페이즈 T-109
턴테이블 테크닉스 SP-10MK2   톤암 테크닉스 EPA-100 MK2, SME 3010R
카트리지 데논 DL-102, 오토폰 MC30 슈퍼   포노 앰프 아날로그 클리닉 액티브 승압 트랜스
전원장치 RGPC 440, 크리스털 오디오 차폐 트랜스   프로젝터 플러스 U3-810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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