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PI Traveler Turn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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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PI Traveler Turntable
  • 최윤욱
  • 승인 2014.03.01 00:00
  • 2014년 3월호 (500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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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 VPI 혈통의 눈부신 실력에 감탄하다
이런 저런 오디오를 듣다 보면 제작사에 따라서 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좀더 나아가면 나라별로도 소리가 달라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흔히 얘기하는 브리티시 사운드니 도이치 사운드니 하는 것이 빈티지의 세계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하이엔드 세계에서도 미국 회사 소리와 영국 회사 소리는 분명 서로 다르다. 브리티시 사운드를 대표하는 턴테이블로는 린과 레가를 들 수 있고, 도이치 사운드는 토렌스, EMT를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미국 사운드를 대표하는 턴테이블은 무엇일까? 오라클이나 소타가 있지만, 미국 사운드의 대표는 역시 VPI다.
아날로그가 정점을 찍고 CD가 대세를 이어받는 시점에 등장한 VPI의 기함급 턴테이블 TNT의 출시는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근육질의 바디빌더를 연상시키는 각진 외모에 엄청나게 무거운 플래터와 이를 돌리기 위한 대형 모터를 갖췄다. 근육질의 외모에 소리 또한 엄청나게 큰 사운드 스테이지와 강력한 저음을 내서 TNT하면 떠오르는 폭탄의 이미지에 걸맞았다. TNT 아래 모델들도 TNT 정도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큰 무대와 강력한 저음을 무기로 삼는 모델들이 주류를 이룬다.
여행자라는 의미의 트레블러는 심플한 외관을 하고 있다. 참고로 베이스는 빨강, 검정, 흰색, 그리고 청색이 있어서 기호에 따라서 선택을 해서 인테리어 효과를 높일 수도 있다. 슬림한 베이스에 원뿔 모양의 고무발을 달고 그 위에 플래터와 톤암 모터를 마운팅했다. 일단 리지드 타입을 선호하는 VPI지만 단단한 발이 아닌 신축성이 있는 고무발을 사용해서 바닥으로부터 전해오는 진동을 차단하기 어렵다는 리지드 방식의 단점을 어느 정도 완화하려고 했다. 플래터는 흔한 알루미늄 재질로 보이는데, 생각보다 무거워서 뒤집어 보니 플래터 안에 다른 물질이 채워져 있었다.



예전에는 기기의 구석구석을 열어보고 살펴보고 나서야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닥치고 음악부터 듣게 되었다. 일단 소리를 선입견 없이 들어보고 판단하는 것이 부품이나 구조를 따져서 소리를 추측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비교를 위해 형님뻘인 VPI 에리어스 턴테이블에 그래험 2.0 톤암, 고에츠 우루쉬 카트리지로 이온 보이쿠(Ion Voicu)가 연주하는 찌고이네르바이젠(Eterna)을 들었다. 큰 무대와 깊은 저음, 호방한 연주 스타일이 잘 표현된다. 카트리지를 그대로 트레블러에 옮겨서 세팅, 동일하게 코터 MK2L에 연결해서 들었다. 트레블러가 에리어스에 비해서 확실히 빈약해 보이는 데다, 가격도 엔트리급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참 떨어지는 소리가 날 것으로 예상을 했다. 그런데 소리가 약간 들뜨기는 하지만 무대 크기나 호방함에서 에리어스와 그래험 조합을 얼추 따라가는 것이었다. '어라!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스친다. 좋다, 그럼 좀더 박력 있는 곡을 걸어보자는 생각에 코간(Leonid Kogan)이 연주하는 랄로의 스페인 교향곡(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Heliodor)을 올렸다. 시작부의 저음이 생각보다 깊게 울리면서 퍼져 나온다. 엔트리급 턴테이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저음과 큰 무대를 보여준다.
이제는 엔트리급의 크지 않은 턴테이블인 트레블러가 호방한 소리를 내는 이유를 확인을 해봐야겠다. 톤암은 별로 특별해 보이지 않는데, 특이하게 스테인리스 재질의 추를 뒤쪽에 있는 노브를 돌려서 수평을 맞추게 했다. 이런 방식은 좀더 견고하게 추가 톤암 파이프에 고정되어야 카트리지의 진동에 의해 추가 떠는 것을 줄일 수 있다. VPI 톤암의 특징 중에 하나는 안티스케이팅을 맞추기 위한 별도의 기구가 없다는 것이다. 굳이 안티스케이팅을 맞추고 싶다면 톤암 위쪽에서 나온 톤암 케이블을 베이스에 단자로 끼우게 되어 있는데, 그 선을 이용해서 안티를 약간은 줄 수 있다. 여러 가닥인 그 선을 단자를 돌려서 선이 좀더 꼬여진 상태가 되게 하면 선 자체의 탄성이 커진다. 그런 상태로 베이스의 단자에 꽂으면 선에 생긴 탄성 때문에 안티스케이팅이 걸리게 되는 방식이다. 정밀하게 잘 만들어진 톤암이지만 톤암에서는 호방한 소리가 나는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이제 모터와 베이스, 그리고 플래터를 살펴볼 차례다. 우선 모터는 힘과 토크가 좋고 회전 안정성이 좋은 교류 싱크러너스 모터를 사용했다. 전원부의 어댑터에서 직류를 공급하면 모터 아래에 있는 전원부에서 교류를 새로이 만들어서 모터를 구동하는 방식이다. 가정용 전원의 노이즈나 교류 주파수 파형의 찌그러짐으로부터 자유롭게 모터가 안정적으로 돌게 하기 위한 구조다. 보통 직류 모터보다는 교류 모터가 토크가 커서 좀더 호방한 음을 낸다고 알려져 있다. 베이스의 재질을 살펴보니 나무가 아닌 알루미늄 계열에 두텁고 매끄러운 도장을 했다. 찾아보니 알루미늄과 델린(Delrin, POM)을 복합적으로 결합해서 충분히 댐핑이 되도록 한 것이다. 플래터는 알루미늄 아래 쪽을 파서 스테인리스 판을 끼우고 다시 댐프재를 붙인 것이 확인이 되었다. 두드려 보면 두텁지 않은데도 울림이 적고 알루미늄이 아닌 단단한 물체에서 나는 울림이 느껴진다. 플래터 재질에 관한 VPI의 오랜 노하우가 적용되었을 것이다.
VPI 턴테이블의 특징 중 하나는 스핀들 축과 플래터를 단단하게 결합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핀들 축에 플래터가 살짝 얹어져 있는 형태다. 이런 구조는 스핀들 축 아래에 있는 베어링에서 발생하는 마찰 진동이 플래터에 전달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진동에 강한 복합 재질의 베이스와 크진 않지만 스테인리스 원판을 뒷면에 붙여서 강성과 무게를 늘린 플래터, 그리고 적절히 단단한 고무 받침을 사용한 리지드 구조를 채택했다. 이런 이유로 간단해 보이는 엔트리급 턴테이블이지만 VPI 혈통의 호방한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레가 턴테이블처럼 깔끔한 음이 아니고, 엔트리급 턴테이블이지만 VPI답게 호방하게 큰 무대를 그려내는 턴테이블이다. 물론 린이나 오라클 턴테이블이 내는 실키한 느낌의 음색을 장점으로 하진 않지만, 비슷한 등급의 어떤 턴테이블과 비교해도 그려내는 무대나 저음의 양에서는 한발 앞서 있는 게 사실이다. 입문용 턴테이블을 찾는 마니아로 클래식 대편성 곡을 좋아하고 다양한 장르를 즐기는 마니아라면 안성맞춤의 턴테이블이 아닌가 싶다. 엔트리급의 자그마한 턴테이블이지만 그려내는 무대는 중급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역시 순종 VPI의 혈통을 확실히 물려받았다. 



수입원 우리오디오 (02)2246-0087
가격 26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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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4년 3월호 - 5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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