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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 클라리넷 오중주
글 최상균 2013-10-01 |   지면 발행 ( 2013년 10월호 - 전체 보기 )

Born to be Blue…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 봤을 본질적인 의문이다. 보통은 잠시 고민하다가 '그냥…'이라던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의지(?) 덕에…'와 같은 단순한 답변을 내리며 그만두게 되지만, 심각하게 고민하다 보면 종교에 빠져들기도 하고 철학에 심취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 역시 어렸을 때 잠시 같은 고민에 빠져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철학자가 될 기질은 아예 없었나 보다. 아무리 생각해도 꼭 이렇다 할 대답을 찾을 수 없었고, 그저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고 행복하게 잘 먹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평범한 결론에 도달해 버렸으니 말이다.
우리가 즐겨듣는 음악들 중에도 이 질문에 대해 답해 놓은 것들이 많다. 팔자 좋은 베짱이들의 대답 같은 'Born to Boogie(T. Rex)', 열심히 일하던 70년대를 연상시키는 'Born to Run(Bruce Springsteen)', 조금 불쌍하게 여겨지는 'Born to Loose(Ray Charles)', 평생 사랑만 해야 할 것 같은 'Born to be with You(Dave Edmunds), 거친 남성들이나 마초들에게 어울리는 'Born to be Wild(Steppen Wolf)', 스테펜 울프보다는 소극적이지만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겠다는 'Wasn′t born to Follow(Byrds)' 등이 우선 떠오른다. 이외에 'Born to Move(CCR)'처럼 너무나 당연하거나, 'Born to be Alive(Patrick Hernandez)'처럼 선문답 같은 대답도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가을에는 재즈 스탠더드 넘버로 그랜트 그린, 엘라 피츠제럴드 외 여러 연주자가 연주했던 'Born to be Blue'라는 대답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구분되는 특징으로 두뇌가 발달하고 두 손을 사용하며, 기구나 언어를 사용하는 점들을 들 수 있겠지만, 'Blue'할 수 있다는 것도 분명히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자 권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시도 때도 없이 'Blue'해진다, 날씨가 좋아도 'Blue', 궂어도 'Blue', 혼자 있어도 'Blue', 연인과 함께 있어도 'Blue'하다. 특히 요즘처럼 아름다운 가을이 펼쳐지면 더욱더 'Blue'해지는 것이 우리 인간들이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날씨가 선선해서 두뇌 회전이 명석해지고 밤이 길어지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 하지만 가을은 똑같은 이유로 우리 애호가들에게 음악 감상의 계절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에도 가을이 되면 여름보다 더 많은 음반들을 듣게 되며 듣는 장르도 달라진다. 여름에는 뒤죽박죽 닥치는 대로 다양한 장르의 음반을 꺼내 듣게 되지만, 가을에는 찬바람과 비슷한 쌀쌀한 느낌을 주는 음악을 골라 듣게 되는 것이다.
가을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라면, 아마도 다른 많은 애호가들도 첫 손에 꼽겠지만, 브람스를 고르고 싶다. 새로운 시대를 거부하고 독일 고전 음악의 전통을 평생토록 고집스럽게 고수했던 브람스. 아마도 그는 항상 베토벤이라는 위대한 거인이 눈을 부릅뜨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개인의 행복이나 재미 같은 것은 사치에 속했을 것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음악적 사명을 완수하는 것만이 삶의 목표였을 터…. 클라라 슈만에 대한 흠모의 정을 평생 가슴 깊이 간직한 채 외롭고 고독한 삶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음악에는 항상 고독이 가득하고 쌀쌀한 바람과 잘 어울린다. 따듯한 양지보다는 서늘한 그늘이, 상쾌한 신록보다는 쓸쓸한 낙엽이, 그리고 활기찬 대낮보다는 사색적인 밤이 잘 어울리며 투명한 수채화보다는 짙고 두터운 유화가 연상된다. 관현악이나 실내악, 그의 어느 작품에서도 그의 고독을 느낄 수 있지만 여름의 기운이 막 가시는 초가을에 어울리는 곡을 고르자면 클라리넷 오중주 B단조 작품 115를 꼽고 싶다. 클라리넷의 미묘한 음색이 현악 사중주단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곡인데, 악기 하나하나, 선율 하나하나가 마치 똬리를 틀며 서로 엉켜 있는 뱀들처럼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감정이고 뭐고 다 타 버린 텅 빈 고독과는 분명히 다른 이 끈적거림은 어쩌면 브람스 내면에 꽁꽁 숨겨둔 격정과 정념일지도, 아니면 그가 고독한 일생을 살아가도록 조종한 비릿한 생명력일지도 모른다. 차분하게 전개되는 가을을 맞이하며 이 음악을 듣는 우리들에게 이 끈적거림은 곧 아련해질 지난여름의 활기와 추억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이 워낙 걸작이라 녹음도 무척 많은데, 예전부터 블라흐와 빈 콘체르트하우스 사중주단의 연주(Westminster)가 역사적인 명반으로 손꼽히고 있다. 클라리넷의 명인 칼 라이스터는 그의 명성과 어울리게 아마데우스 사중주단(DG), 베르메르 사중주단(Orfeo) 외 다양한 녹음을 남기고 있는데, 아마데우스 사중주단과의 녹음이 명반으로 꼽힌다. 개인적으로는 다비드 오펜하임과 부다페스트 현악 사중주단이 연주한 음반(CBS)이 브람스의 꿈틀거리는 정념을 표현하는 면에서 단연 최고라고 생각한다.
음질에서 으뜸인 것은 최근의 음반으로 레슬리 샤츠베르거(Lesley Schatzberger)의 클라리넷과 피즈윌리엄 현악 사중주단의 연주다. 오디오 메이커로도 유명한 LINN에서 SACD로 발매되었으며 인터넷에서 스튜디오 마스터 음원도 구입할 수 있다. 다만 음질이 너무 깨끗하기 때문인지 브람스답지 않게 지나치게 투명하게 들리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다. 

<Monthly A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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