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균의 음질 좋은 에세이 1
새벽부터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가 잠을 깨운다. 하지만 아직은 비몽사몽. 눈을 감은 채로 창가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차분하게 '감상'한다. 몇 해 전 후드득후드득 창가에 부딪히는 빗소리를 듣고서 델로니어스 몽크의 음악과 비슷하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생각할수록 빗소리는 음악과 참 많이 닮았다. 음악 중에서도 특히 오래 들어 '익숙한' 음악과 꼭 닮았다.익숙한 음악은 언제나 나를 그리운 시절로 돌려보낸다.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2악장을 들을 때마다 나는 늘 대학 시절 캠퍼스의 큰 길을 활기차게 걷고 있다. 드뷔시의 야상곡을 들을 때면 비가 막 그친 소나무 숲, 우연이 가득한 숲길에 혼자서 이어폰을 꼽고 산책하는 내 모습이 보이고, 그때 가슴을 텁텁하게 하던 숲 냄새와 축축한 감각까지 고스란히 살아난다. 벗님들이 불러 히트했던 '사랑의 슬픔'을 들으면 실연을 당해 축 처진 어깨로 버스 창밖을 바라보는 청년의 쓸쓸한 모습이 보인다. 모차르트 교향곡 39번 3악장, 또는 라흐마니노프의 저녁 기도를 들을 때면 항상 석양이 창밖으로 아름답게 비춘다. 이런 느낌 속에서 삶은 영화처럼 아름답게 보이고, 그리운 음악들은 주제곡들이 된다. 돌이켜보니 내 '삶'이라는, 짧지 않은 드라마에는 수없이 많은 음악들이 지독히도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 음악을 들으면서도 먼 훗날 이 곡을 다시 들을 때 어떤 추억으로 기억하게 될까 궁금하다. 기왕이면 좋은 추억이기를, 그리고 안온한 미소를 지을 수 있기를….오래된 음악처럼 빗소리도 우리의 마음을 동요시킨다. 오래된 음악이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소환하는 것처럼, 빗소리를 들어도 언젠가 내렸던 어떤 비를 연상하게 된다. 네 살 때이던가. 다섯 살 때이던가. 소꿉친구와 처마 아래에서 손을 내밀며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던 기억, 그리고 손끝에 느껴지던 차가운 감촉. 그 감촉은 내가 비에 대해 느낀 첫 번째 감촉으로 기억 속에 남았다. 비가 몹시도 많이 내리던 날 학교가 파하고 어떻게 하나 걱정할 때, 멀리서 웃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과 커다란 우산이 주던 행복. 중학교 때 친구들과 국립묘지에 동원되었다가 피할 곳 없이 비를 홀딱 맞고 거리를 활보하던 일. 어느 여고생 누나 역시 비를 피하지 못해 홀딱 젖어버린 모습을 보고 우리의 가슴은 얼마나 쿵쿵 뛰었던가! 이렇게 구체적인 기억은 평소에는 어디에 있었는지 꽁꽁 숨어 있다가 빗소리에 '점화'되어 문득문득 떠오른다.이렇게 비와 음악이 비슷하기 때문인지 비가 올 때 음악을 들으면 마음의 동요는 절정에 이른다. 비에 대한 추억과 음악에 대한 추억들이 마구마구 교차하면서 마음이 들뜨고 설렌다. 습도가 높아 공기가 무거워지기 때문인지 오디오조차 음질이 좋아지는 듯하다. 실제로 잔잔한 빗소리는 음악에서 거친 고음을 마스킹해서 음악이 더욱 매력적으로 들리게 한다. 음악이 소위 마음에 착착 '달라붙기' 때문에 비가 오면 더 많은 음악을 들을 수밖에 없다.나에게 있어서 비가 올 때 고르는 음악들은 무척이나 다양하지만 비가 어느 정도 내리는가, 계절은 어느 계절인가, 아침인가 저녁인가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가볍게는 샹송이나 칸초네를 가장 많이 듣는다. 질리오라 칭게티, 마리 라포레, 실비 바르탕, 프랑소와 아르디 등 그리운 가수들의 서정적인 노래들이다. 그리스의 국민 가수 하리스 알렉시우도 듣기 좋은데, 특히 'Patoma(비가 내리네)' 같은 곡은 빗소리가 아주 잘 녹음되어 있어서 맑은 날에 들어도 비가 내리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좋다. 다만 이런 음반들은 대개 구하기도 쉽지 않고 음질이 좋은 것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음질까지 좋은 것을 뽑으라면 아그네스 발차의
그런데 브루크너의 음악은 워낙 편성이 크고 복잡하기 때문에 판본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지휘자의 개성이 너무나 강하게 표출된다. 예컨대 오디오 애호가들의 필청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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