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kel PR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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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kel PRO-8
  • 이창근
  • 승인 2013.05.01 00:00
  • 2013년 5월호 (490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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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켈이라 쓰고 또 다른 AR이라 읽는다
 과거 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들이라면 레코드 가게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에 홀려 테이프나 LP판 한 장쯤 구입해본 기억들이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내 귀를 매료시켰던 여러 음악들은 어김없이 출입구 양 옆이나 쇼 윈도우 구석 처마 끝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곤 했는데, 그곳에는 어김없이 뚱뚱하고 못생긴 직사각 형태의 인켈 스피커가 많이들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대형 매장이나 번화가의 길목 좋은 상권에 위치한 가게라면 동경에 마지않은 고급 수입 스피커가 걸려 있었겠지만 지방이거나 동네 후줄근한 위치에 자리한 레코드점에선 대체로 인켈 프로 시리즈들이 꽤나 많이 지역 문화의 산 증거물로 걸려 있었다. 인켈 프로 시리즈! 이제 이름만으로도 골동품 냄새가 진동하는 듯 낡고 초라함이 먼저 다가오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오디오 전성기 시절을 수놓은 역작임엔 분명하며 사용자가 저렴한 가격에 AR 소리를 욕심낸다면 국산 중엔 유일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인켈에서 발매했던 프로 시리즈는 초기의 8·9·10·12 모델과 후기의 85·105·125·165 모델로 나눌 수가 있고, 앞의 숫자는 우퍼의 구경과 밀접한 관련을 보인다. 그러나 끝에 5가 추가된 후기형에 와서는 초기의 구수한 사운드가 많이 희석되어 지향하는 바가 많이 다른 스피커가 되버렸다. 초기에 발표된 일련의 시리즈들은 AR의 수석 엔지니어 출신인 윈슬로 버러우 씨를 초빙하여 감수를 맡겼는데, 90년대 중반 테마 세트와 함께 의욕적으로 출시된 BH 시리즈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윈슬로 버러우는 원래 음악과 공학을 동시에 전공한 사람으로 1960년대 AR을 시작으로, KLH를 거쳐 60년대 말에 자신의 회사인 EPI를 설립, 성공적인 브랜드로 성장시킨 뒤 75년엔 회사 매각 후, 다시 버러우 어쿠스틱스를 설립하게 된다. 이때 인켈을 만나 프로 시리즈에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AR에서 남긴 그의 족적으로 전설적인 AR4를 꼽을 수가 있을 만큼 그의 사운드 철학이 AR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장선상에 있어 프로 시리즈는 외관이나 소리에서 AR 후기형의 성격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업적 중 하나로 프로 시리즈에 채용된 역돔형 트위터를 들 수 있는데, 흔히 전통적인 돔형에 비해 더 나은 다이내믹과 독특한 음장감 재현을 가능케 하여 현재까지 인켈 프로의 명성을 이어나가게 한 핵심기술이라 할 수 있다. 이것저것 신경 안 쓰게 해주는 무난한 프로 10도 좋고, 유일한 밀폐형 프로 9도 나쁘지 않지만, 전체적인 밸런스감이나 완성도면에서 일감은 프로 8이라 할 수 있다. 프로 8을 자세히 살펴보면 29×47×25cm 크기(WHD)에 임피던스 8Ω, 1.5인치 역돔형의 트위터와 8인치 평면 센터캡 우퍼를 가지는 2웨이 형태의 전면 포트를 둔 베이스 리플렉스형 스피커이다. 3웨이 이상 상위 모델에서 보이는 고역 조정 볼륨이나 토글스위치는 생략되어 있다. 비닐 시트지 마감의 인클로저와 프레임도 없는 전면 그릴이 초라함을 부각시키지만 어쿠스틱스라 찍혀 있는 명판 아래로 보이는 동원전자 시절 구형 인켈 로고가 당시의 의욕과 위상을 조금이나마 대변해준다. 1980년에 발매된 CS1234란 컴포넌트 구성의 일부로 채용되기도 했는데, 이때 매칭된 인켈 AD2 인티앰프와는 좋은 궁합을 보여준다. 마땅한 간판 토종 스피커 모델이 없는 한국 시장에서 입소문으로만 알려지다가, 90년대 초반 오디오 전문 통신 동호회 모임에 의해 다시금 주목 받았던 것이 인켈 프로 시리즈 인기의 시발점이었을 것이다. 특히 주머니 사정이 얄팍한 오디오 마니아들에게는 AR과 동급의 소리를 내어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품귀 현상까지 일어나 한때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스피커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역시나 그 한계점이 더 많이 알려져 가격이나 선호도면에서 예전만큼의 영광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이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처음 하이파이를 접했을 법한 30·40대의 오디오 애호가들의 뇌리엔 아름다운 추억의 이름으로 남아 있고 AR 사운드를 사랑하는 애호가들의 서브 용도만으로도 그 가치는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거래가를 불문하고 인클로저와 네트워크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는 분이라면 기대 밖의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가장 저렴한 스피커임을 첨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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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3년 5월호 - 4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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