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학개론으로 되짚어 본 세월 롯데 파이오니아 SA-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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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개론으로 되짚어 본 세월 롯데 파이오니아 SA-710
  • 이창근
  • 승인 2013.03.01 00:00
  • 2013년 3월호 (488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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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이맘때 개봉하여 잔잔한 감동과 재미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던 이용주 감독의 연출작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를 다들 아실 것이다. 96학번 새내기들의 풋풋한 이미지와 그때만 볼 수 있었던 소품들이 어우러져 현 30-40대들의 향수를 절묘하게 자극해내면서 흥행 면에서도 좋은 성적을 얻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영화 속에는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음악들과 그것을 재생내는 장치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전람회의 '기억의 습작', 공일오비의 '신인류의 사랑', 마로니에의 '칵테일 사랑' 등이 배경에 깔리고, 여주인공의 소지품으로 소니 디스크맨 D-777 모델이 줄곧 함께 따라 다닌다. 또한 등장인물 가운데 부유한 선배의 자취방 한구석을 롯데전자 650 미니 컴포넌트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역시나 필자는 어쩔 수 없는 오디오쟁이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에 무스, 삐삐 같은 90년대의 아이콘까지 가미되니 추억은 가파르게 20여 년 전으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필자의 세대보다는 10여년 아래 친구들의 이야기지만 가슴 떨렸던 대학 신입생 때의 기억과 의욕은 앞서지만 숫기 없는 남자 주인공의 우유부단함, 그리고 한 명쯤 곁에 있을 법한 좀 노는 동네 친구의 익살스런 캐릭터에 녹아들며 지난날로 되돌아가는 시간여행엔 아무런 장애를 느낄 수가 없었다. 여기서 시간을 10여 년 더 뒤로 당겨보면, 또 하나의 롯데 오디오이자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롯데 파이오니아 SA-710 인티앰프를 떠올려 볼 수가 있다. 필자가 써본 가장 최초의 앰프다운 앰프로 성능과 스펙을 떠나 한동안 기준점이 되어주었던 첫사랑 같은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롯데의 자본과 파이오니아의 기술력이 합쳐져 1973년 설립된 롯데 파이오니아가 80년대 초반부터 내수 시장에 뛰어들면서 내놓았던 프리 메인 일체형 앰프로 롯데 앰프 라인 중엔 가장 많은 지지자를 보유하고 있고, 아직도 중고 시장에서 현역기로 당당하게 대접받는 중이다. 원 모델인 파이오니아 SA-7900과는 같은 모델이며, 레벨 미터의 색깔만 다를 뿐이다(SA-7900은 흰색 레벨 미터). 하지만 은색 패널에 푸른색 LED인 SA-710이 디자인적으로 훨씬 시원해 보인다. 뒷면을 살펴보면 '85W+85W'로 표기되어 있으나 정격 출력은 65W(채널당) 정도 나오는데, 청감상 힘은 그 이상으로 느껴진다.몇 해 전 인켈 BH-1000이라는 150cm가 넘는 거구를 SA-710에 별 기대 없이 물려 보았더니 충분하진 않지만 무리 없이 구동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어떤 음색을 좋아하느냐 하는 것만 다음 문제로 넘겨둔다면 잠재력이 대단한 앰프임엔 틀림없다. 중고품으로 이 앰프를 구입해 보면 가끔 산켄이나 도시바 출력석이 장착된 것을 보는데, 원래는 후지츠 제품이 오리지널 출력석이다. 이것이 들어 있어야 SA-710 고유의 음색을 맛볼 수 있으니 구입 시 유의할 필요가 있다. 노익장이란 말은 아마도 SA-710을 두고 한 말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투명한 선도를 자랑하는 고역은 4-5배 이상의 퀄러티를 보장한다. 다소 거친 듯 칼칼하게 뿜어내는 특유의 직진성은 생기발랄했던 과거의 20대 시절 모습을 보는 것처럼 스피커와 조화를 이루며 상큼하게 마무리된다. 꽃다운 청춘은 이제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그날의 시간과 내 곁을 함께 했던 물건들은 마음속 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음을 한편의 영화에서 발견케 된다. 서투르고 불완전했던 그날이 소중하듯 오래되고 초라해진 고물들이라도 너무 박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월이 지나 서연이 승민을 찾아오듯 부담 없이 음악만을 듣고자 할 때 롯데 파이오니아 SA-710을 옛 친구로 맞이해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추억으로 보듬은 친구는 무한 신뢰로 내 곁을 지켜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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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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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3년 3월호 - 4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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