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의 제왕, JBL LE-8(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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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일의 제왕, JBL LE-8(T)
  • 이창근
  • 승인 2013.01.01 00:00
  • 2013년 1월호 (486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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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년대 후반 에어 서스펜션 기술로 무장한 AR의 도전은 당시 가정용 오디오 시장을 석권했던 JBL에게도 위협적인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대항키 위해 'Low Efficiency Driver Project'라는 저 능률 드라이버 개발 계획에 착수하였고, 이후 JBL에서 개발된 유닛들 앞엔 LE라는 모델명이 붙여지게 된다. 이 LE란 명칭은 훗날 AR 이미지 도용 문제가 대두되어 'Linear Efficiency'로 변경을 겪기도 하였는데, 유닛의 콘지 두께 증가, 그리고 고무 재질의 에지와 강력한 자석을 채용한다는 점이 계획의 주요 내용이었다. 이로 인해 능률은 90-95dB로 낮아졌지만 대신 더 아래로 내려가는 저역대를 실현하였고, LE-8, LE-10, LE-15 같은 일련의 시리즈로 꽃을 피우게 된다. 이중 LE-8은 1959년 개발과 함께 LE 시리즈 최초 시스템이자 JBL 북셀프 1호기로 기록되는 랜서 33에 채용되면서, 지금껏 그 높은 완성도를 기반으로 풀레인지 계의 절대강자로 회자되고 있다. 통상 8인치 구경의 흰색 콘지와 고무 에지를 바탕으로 육중한 다이캐스팅 프레임과 약 3kg에 달하는 알니코 자석으로 완성된 화려한 물량적 스펙을 자랑한다. 모델의 변화는 크게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다(LE8 - LE8T - LE8TH). 초기형일수록 더블 콘지가 사용되지만, 후기로 갈수록 싱글 콘지로 교체되고, 에지 재질도 고무(엄밀히 따져 우레탄 재질)에서 스펀지 재질로, 임피던스 또한 16Ω에서 8Ω으로 변경됨을 볼 수 있다. 이후 LE-8을 베이스로 하여 프로용 버전 2115A 후신으로 1962년 콘의 재질 변경과 내입력의 증가, 그리고 알루미늄 센터 돔을 채용하여 LE-8T로 모델 체인지가 이루어진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제품이 바로 LE-8T로 이 또한 에지 재질 특성상 경화되기 쉬워서 오리지널 상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에지 교체로 인한 사운드 변화는 분명 큰 차이가 있다. 에지가 교체되지 않은 경우 저역 재생 능률이 떨어지지만, 에지가 교체되고 나면 다른 JBL 유닛과는 달리 음색 변화가 너무도 확연해져 버린다. 


 제품화된 LE-8T는 보통 패시브 우퍼인 PR8과 함께 인클로저에 수납되었고, 1970년대 후반 페라이트 자석이 채용된 LE-8TH로 모델 체인지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이스 코일과 댐퍼의 개발로 내입력이 50W로 늘어난 LE-8TH는 더 호방해진 이탈감을 자랑하지만 알니코 계열인 전작들에 비해 포커싱이 다소 흐릿해진 아쉬움이 있다. LE-8T 또한 명료해진 음색과 JBL다운 강렬함이 추가되었으나, 음장의 심도면이나 자연스런 질감에서 초기 LE-8에는 미치지 못한다. 전체적인 사운드의 특성은 고역보다는 저역대에서 장기를 보이는 스타일로 통 설계에 따라 30Hz까지 평탄하게 내려가는 풀레인지답지 않은 스케일이 돋보인다. 그러나 고역대 재생 한계가 10kHz 언저리에서 감도는 수준이라, 초고역대가 잘린 부족한 지향성이 최대 단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한정된 고역대 안에서 솜씨 있는 밸런스를 설정해 두어 청감상 훨씬 더 위로 치솟는 에너지감을 맛볼 수가 있다. 이는 알루미늄 리본 보이스코일과 연결된 반짝이는 센터 돔에서 만들어지는 매직으로, 여기서 비롯된 광채감이 LE-8T만의 악센트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폄하의 칼날을 좀더 깊숙이 휘두른다면 독일계 고급형 풀레인지들에서 재생되는 우수 어린 심오함이나 텐션을 동반한 예리함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해 볼 수가 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고급형 로더 등과는 가는 길이 다른 PA용 내지는 근접 모니터용임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수용 가능한 부분일 것이다. 풀레인지로서는 꽤 낮은 89dB이라는 능률로 인해 3극관 싱글로는 역부족인 면 또한 크게 다가오지만 6L6PP나 ST관일 경우 6V6PP 정도와 매칭 시 꽤 괜찮은 조합을 이끌어낼 수가 있다. 여기서 독자 제현께 부탁 한 가지를 드리고자 한다. 우선 LE-8T로 구성된 시스템을 각자 머리 속에 새겨보시길 권한다. 두터운 초저역과 고운 입자감으로 흩뿌려지는 고역의 향연에 몰입된 자신이 그려지는가? 마지막으로 몰입된 자신이 그려진다면 콤콤한 고물 쿵짝 사운드로 각자 내면의 그늘을 훑어내셨으면 좋겠다. 음악으로 쓸어대는 빗자루질 주변엔 바흐가 있어도 좋고, 이미자도 상관없을 것 같다. 한바탕 대청소의 중심에 JBL LE-8(T)이 놓여질 수만 있다면 더 이상의 조건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낙담과 절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도 있는 2012년 끝자락이지만 과거의 천재들이 완성해낸 작은 알맹이 하나가 자신의 심연 속을 다스려줄 것이라 확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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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3년 1월호 - 4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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