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를 위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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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위한 기도
  • 김기인
  • 승인 2012.12.01 00:00
  • 2012년 12월호 (485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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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인의 아날로그 기행 71
 이번 가을은 비가 특히 많습니다. 낙엽처럼 내리는 가을비가 한줄기씩 바람에 날릴 때마다 쌓여 대지 위에 차곡히 흐릅니다. 낙엽은 빗물에 빠져 떨어져도 마지막 습기를 받아 호흡하며 바싹 메마른 입술을 적십니다. 이 늦가을 비가 그치면 떠나야 하기에 주위 친구들에게 할 말이 많지만 마지막 말만 겨우 합니다. 먼저 간다는 인사만 간신히… 아무도 눈길 주지 않지만 나름 담대합니다. 피곤한 몸을 편안히 대지에 눕힙니다. 영원함으로 눈을 감으며… 가을은 내 마음 가장 깊이 있는 존재의 비밀들을 밖으로 밖으로 드러내어 펼치려고 합니다. 그 서럽고 서러운 비밀들이 나 스스로를 다치지 않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이를 옆에 앉혀 두나 봅니다.가을이 되면 모든 물상들은 추위를 예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삶의 이불이 없어서 가을의 솔로들은 당겨 덮을 이불을 구하려 마음이 분주해지고, 다가올 추위에 시린 살림을 위해 김장을 담아 묻기도 합니다.이제 필자의 세월 나이도 가을이 되어 다가올 겨울을 예감하며 준비해야 할 목록들을 챙겨 봅니다. 그중 일 순위가 필자에게도 역시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럴 리가 없는데 하며 멍해집니다. 잠시 후 정신이 들자 부엌에서 일하느라 눈코 뜰 새 없던 아내가 '여보!'라고 부릅니다. '음악 줄여 아들 공부하잖아' 나에게 그렇게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음악이 아내의 귀에는 소음으로 들리는 것이지요. 나는 정신이 번쩍 들어 고3 아빠라는 현실이 눈앞에 버티고 서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고3 아빠입니다. 삶의 가을을 준비하기 전에 고3 아빠가 더욱 급합니다. 아내는 더 급합니다. 밥해 먹이고, 빨래하고, 학원 스케줄에 아침마다 피곤한 아들을 기상시키느라 악마가 되는 아내가 나의 사랑하는 사람입니다.참 가을이고 낙엽이고 음악이고 뭐고 순식간에 삼천리나 달아나 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저기 가을 낙엽처럼 삶에 찌들어 흰 머리칼이 듬성듬성한 아내가 나의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낭만이나 아름다움을 붙이고 챙길 틈도 없이 시끌벅적하니 얼굴을 찡그린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갑자기 눈물이 눈을 가득 채웁니다. 앞을 분주하게 오가다 설움을 눈치챌까봐 눈물을 눈 속에서 말려 버립니다. 그래서 이 가을은 내 생애 가장 잔인한 가을이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랑을 원합니다. 여신처럼 아름다운 가을의 사랑 말입니다. 그러나 아내가 여신인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흰 머리칼의 찬란함이 가꾸기만 한 탤런트들의 머리칼보다도 빛나며, 밥하느라 습진으로 트고 거친 손이 여류 피아니스트의 손보다도 부드러우며, 낡아 헤어진 행주치마가 천사의 날개옷보다 우아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이 이것입니다. 한 번도 아내의 사랑을, 존재를, 아름다움을 질문해 보지 않았기에 답을 모릅니다. 그 사랑이 바로 이 사람 아내라는 것을 말입니다. 이 가을은 브람스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려놓는 대신 아내를 내 영혼에 사랑으로 올려놓습니다. 내가 죽어서도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혼자만이라도 영원해져 남편의 영혼을 그 영원으로 끌고 올라가고 싶어 하는 유일한 존재, 가장 깊어 뜨거운 기도로 흐려진 눈물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이 가을 커다란 낙엽처럼 아내를 바라봅니다.   


  아내를 위한 기도
아내그대 영혼의 젖가슴은크고도 풍성하여사랑받는 남자에겐항상 부족함이 없습니다사람이 산다는 것이 뭐란데이리도 매 순간고독케 하나이까그 모든 고독사랑하는 이영혼의 젖가슴으로감싸 안아 품어서로가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소망의 기도로 기도하게 하시고그 기도로 내일을 새롭게 열게 하시고 오늘의 미진함을지난 과거의 시간으로 보내모두 내일의 거름이 되게 하옵소서그녀와 내가 미흡하고 미흡하나항상 신의 시선 앞에멋있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나이다내 사랑하는 이영혼이 건강한 것처럼몸도 건강하여충분했던 슬픔만큼앞으로 충분히 행복하게 하여 주십시오오늘 난너무도 내 삶에 부족하여내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였지만그녀를 보아 삶이 다시 충만되어 감사합니다이와 같이 그녀의 마음도충만으로 넘치길 빕니다태어남이 모든 축복의 시작임을그녀와 내가 섞이고 섞여결국은 하나가 되어영원하게 되길빕니다
   -김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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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2년 12월호 - 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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