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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음악가
글 신동헌 2012-02-01 |   지면 발행 ( 2012년 2월호 - 전체 보기 )


 '술과 음악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콤비네이션이라는 것이 우선 떠오르는 인식이겠는데, 사실 그렇다. 음악가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술과는 깊은 인연이 있으며, 특히 시인의 태반은 술독에서 빠져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술고래가 많음은 세인이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술의 세계적인 챔피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중국 당나라 중엽의 시인 이백(李白, 701-762)이라는 것이 정설이며, 그는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술고래로, 특히 말러의 독창·합창·관현악을 위한 대곡 <대지(大地)의 노래>는 이백의 시를 바탕으로 해서 작곡된 음악이기에 서양 음악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백은 자가 '태백(太白)'이기에 '이태백'이라고도 불리는데, 우리나라의 그 많은 '이태백'은 '20대 태반이 백수'는 패러디이며, 그들 역시 술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이백의 <술의 노래>라는 시의 일절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인생은 즐길 수 있는 동안에 실컷 즐겨 두는 것이 좋다. 황금의 술통을 허무하게 달빛 아래에 내버려둘 수는 없다. 하늘이 나에게 재능을 주신 것은 그것을 유효하게 사용하라고 한 것 때문이다. 돈은 돌고 도는 것이기에 아무리 낭비해도 다시 돌아오게 마련이다. 즐기는 술을 마시는 데에는 마구 돈을 뿌리고, 빈털터리가 되면 또 시를 써서 술값을 마련하면 될 것 아니야? 그것이 돈을 가장 유효하게 쓰는 방법이니라.' 그런 내용인데, 과연 천하의 호주(豪酒) 이백다운 시라고 할 수 있겠고, 그의 눈에는 술통도 황금으로 비쳤던 것 같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술과 음악가'의 사정은 어떤지 살펴보자. 작곡가 중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수없이 있지만 작곡가 몇 사람을 꼽자면, 우선 베토벤을 언급할 것이다. 그가 호언하기를 '나는 인류를 위해 향기 좋은 술을 만드는 바쿠스다!'라고 교향곡 제7번을 썼을 때 말했을 정도로 술, 특히 와인을 좋아했다. 그가 임종에 가까워졌을 때 지인이 라인산 와인을 갖고 왔는데, 그때는 이미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 없어 '유감천만, 너무 늦었어!'라고 내뱉었다는 유명한 에피소드가 있다. 브람도 당대의 작곡가들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헤비급 술고래였다.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옆에서 사람들이 보고 있건 말건 마시다가 술잔에서 술이 흘러서 옷이나 테이블에 떨어지면 아까워서 핥아 먹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부친은 술집의 소규모 오케스트라에서 하찮은 콘트라베이스 주자였고, 브람스도 소년 시대부터 술집에서 피아노 연주의 솜씨를 살려서 가계를 도왔다. 그 일한 술집의 주인은 인색한 사람이어서 월급을 주기를 꺼렸지만 대신 술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도 된다고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미성년자인 홍안의 소년에게 급료 대신 술을 줬다는 얘기는 어처구니없지만, 브람스의 음주 역사는 소년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람스의 경우 그저 술이 좋아서가 아니라 클라라와의 충족되지 않는 사랑의 고뇌, 좋은 반려가 는 가정생활의 쓸쓸함, 그런 것을 얼버무리기 위해 술잔을 기울였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특히 그의 교향곡 제4번, 즉 그가 쓴 심포니로는 마지막 것인데, 그런 느낌이 짙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다음은 지휘자 케이스. 20세기 전·후반에 이름을 날린 독일의 지휘자 콘비츄니, 역시 같은 시기에 명성을 떨친 독일의 지휘자 크나퍼츠부슈, 프랑스의 뮌쉬, 스위스의 앙세르메 등이 호주들이었다. 특히 뮌쉬는 리허설에도 술잔을 몇 잔 들이켜고 나서 '자, 연습을 시작하자' 그런 식이었고, 보면대 아래에는 항상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고 한다.가수 중 술고래는 베이스의 아르투르 에이젠이었다. 왕년의 볼쇼이 오페라 간판스타의 한 사람이었는데, 술을 하도 많이 마시기에 누가 걱정이 되어 물었다. '그렇게 많이 드셔도 혹시 목에 지장은 없으신지요?' 그의 대답이 '아니야, 지장은 무슨 지장? 도대체 술을 마셔서 목소리가 안 나온다고 하는 녀석들은 가수라는 직업을 집어치우라고 해!' 질문한 사람이 무색할 정도였다.


 끝으로 다시 작곡가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술을 먹은 것이 아니라 술에 먹힌 케이스다. 러시아의 국민악파(國民樂派) 5인조의 한 사람인 작곡가 무소르그스키(Modest P. Musorgsky, 1839-1881)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가 최초로 건강을 해 정도로 술을 마신 것은 26세 때였는데, 그 때는 어머니를 잃고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이후로 무슨 일이 생겼다 하면 마구 술을 마시게 되었고, 가장 즐겼던 술이 러시아의 보드카였다. 동양에서는 '화주(火酒)'라고 번역될 정도로 센 술이며, 알코올 도수가 40도에서 60도 정도나 되니까 주로 북쪽의 추운 나라에서 애음되는 술이다. 필자도 러시아, 핀란드 등의 나라를 여행했을 때는 즐겨 마셨는데, 워낙 도수가 높으니까 조심해서 마셨다. 무소르그스키가 35세 되었던 1874년 2월 8일 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가 초연되었는데, 지금은 그의 대표작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너무도 새롭고 시대를 뛰어넘은 것이었기에 대중의 인기도 얻지 못했고, 5인조의 동료들로부터도 이해를 얻지 못했다. 그리하여 무소르그스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곤경에 빠지게 되어 점차로 음주량이 늘면서 끝내는 밤뿐만 아니라 대낮에도 마구 마시면서 완전히 인생의 패전자가 되어 버렸다. 그의 좋은 이해자였고 협력자였던 5인조 작곡가들도 그를 멀리하게 되었으니 통탄할 일이었지만 그것이 시대를 못 만난 비범한 천재의 숙명이었다. 최만년에 5인조의 리더였던 발라키레프한테 쓴 편지에 '나는 이제 추레한 개처럼 싸돌아다니는 마치 산송장과도 같은 신세가 되었다!'라고 자탄했다. 술에 먹혀 42세에 생을 마친 한 음악가의 애처로운 유서라고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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