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미뉴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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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미뉴에트
  • 신동헌
  • 승인 2012.01.01 00:00
  • 2012년 1월호 (474호)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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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동헌 | 글•그림 '정치가와 음악'이라고 하면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지 얼른 머리에 떠오르지 않지만, 그래도 우선은 간혹 국회의원의 타이틀을 갖고 있다는 사람이 가슴엔 금배지를 달고 TV의 '노래자랑' 같은 프로에 나와서 흘러간 옛 노래나 현재 널리 퍼져 있는 유행가 따위를 틀린 음정도 섞어 가면서 제스처만큼은 프로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멋지게 하는 자기도취에 빠진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다. 하기야 자나깨나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노라면 언제 음악을 공부할 틈이나 있겠는가? 더욱이나 클래식 음악 분야는 열정적인 관심과 끈질긴 집념이 필요하기에, 국회 토론장에서 '어떤 면상을 하면 진짜 애국자로 보일까?' 그런 데에만 골몰하고 있는 그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결부시킨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지 모른다. 그러나 서양의 사정은 좀 다르다. 지난 세기 후반 독일이 아직 동•서로 갈라져 있었을 때 서독 수상이었던 슈미트는 수상 직에서 물러난 후 피아니스트로 레코드 녹음도 했고, 또한 영국의 옛 수상이었던 히스는 피아노도 연주하고 지휘까지도 하는 정치가인지 음악가인지 얼른 분간이 안 가는 사람이었다. 그들처럼 유명하지는 않더라도 악기를 연주하고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정치가들이 그밖에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상술한 사람들을 전부 포함하고서도 우뚝 솟아 돋보이는 음악가 겸 정치가가 한 사람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폴란드 공화국이 생겼을 때와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파리에 폴란드 망명정부가 수립되었을 때, 두 번에 걸쳐서 대통령이 된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Ignacy Jan Paderewski, 1860-1941)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도 피아노를 쳤는데, 대통령이 그저 피아노를 칠 정도였다면 먼저 서술한 슈미트 씨와 다를 것이 없겠지만, 그의 경우는 좀 다르다. 그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 경이적인 테크닉과 화끈한 연주로 온 세계를 석권한 대 피아니스트였으니 말이다. 정치가라기보다는 원래 피아니스트였던 그가, 그의 세계적인 명성과 고결한 인격으로 말미암아 폴란드인들로부터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으리라. 그런 보기는 음악계가 넓다고 해도 그말고는 없다. 그의 경력을 훑어보자. 태생은 쿠릴쿠프카인데, 1794년 이래 러시아령이 된 곳이다. 부친은 광대한 토지의 관리인이며, 예술 애호가였다고 한다. 3세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해 12세 때에는 누이와 더불어 공개 연주회에 출연해 인정을 받고, 키예프에서 독주회를 열었다. 이어 바르샤바 음악원에 입학. 한때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충돌해 퇴교를 당했지만 곧 복귀, 졸업과 동시에 피아노과 교수가 되었다. 18세였다. 그 후 작곡에 깊은 관심을 품고 베를린에 나가 킬한테서 배우고, 루빈슈타인의 격려를 받고, 우르반한테서 관현악법을 배웠다. 그리고 폴란드의 여배우 모제스카와 알게 되어 그녀의 원조로 피아니스트로 성공하게끔 빈에 간다. 거기서 명교사 레셰티스키를 사사한 후, 1887년 27세 때 데뷔 콘서트를 열고 대성공을 거둔다. 다음 해 파리, 1890년 30세 때 런던, 베를린, 그리고 미국으로 연주 여행을 하고, 가는 곳마다 크게 성공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1909년 49세 때 모교 바르샤바 음악원의 원장이 되고, 4년 후 미국으로 건너가 1914-1918년의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조국 구제 콘서트를 자주 열고, 그런 공적에 의해 1918년에는 폴란드 외교 대표원이 된다. 다음 해 1919년에 공화국 최초의 대통령으로 선출되지만 1년 후엔 그 지위를 퇴위하여 다시 피아니스트로 자선 연주회 등을 자주 연다. 그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정부는 프랑스로 망명, 1940년 다시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리고 다음 해 미국 뉴욕에서 객사하기까지 그는 조국 폴란드를 위해 정력적인 연주 활동을 계속한 것이다.이와 같이 파데레프스키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20세기 전반을 장식한 대 피아니스트란 이미지가 우선 강하다. 그의 연주는 레코드로 들을 수 있고, 화려하고 섬세, 변화가 풍부하며 스케일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경력으로도 알 수 있듯이 작곡 면에서도 몇 작품 남겨 놓았지만 거의가 현재엔 매몰된 상태이다. 다만 한 곡, 누구한테서나 사랑을 받고 있는 명곡이 있다. '미뉴에트'란 곡목이 붙은 곡이다. G장조, 잘 모르는 사람도 멜로디를 들으면 '아, 그 곡이구나!' 할 만큼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며, 특히 피아노 학습자들에게 인기 있는 곡이다. 필자도 옛날에 피아노를 만졌을 때 자주 치면서 사랑했던 곡이고, 쇼팽의 작품과 함께 프로 피아니스트들도 연주 레퍼토리에 자주 올리는 곡이다. 정치가로서 최고의 지위에까지 올라간 사람과, 그의 이름을 후세에까지 전해 내려오게 하는 단 한 곡의 자그마한 미뉴에트와의 맞춤은 매우 흐뭇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 곡을 들을 때마다 사람들은 대 피아니스트 파데레프스키의 상냥한 인품을 상상하게 될 것이며, 적어도 험상궂은 얼굴로 주먹질을 하며 애국 애족을 외쳐 대는 어느 나라 국회의원들과는 사람됨이 다름을 쉽게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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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오디오 (2012년 1월호 - 4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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